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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남원문화대전 > 남원의 마을 이야기

  • 대하 소설 혼불의 노봉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마을은 최명희 작가가 1980년부터 17년 동안 혼신을 다해 쓴 대하 예술소설 『혼불』 배경이 되는 마을이다. 『혼불』은 1930년대 후반을 전후로 무너져 가는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의 삶과 천민들의 생활상, 각종 민속놀이,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및 이 지역의 역사, 설화, 무가, 두레 풍습은 물론 민간신앙을 자세히 묘사한 민속백과사전격인 작품이다. 문단에서 한국 최...

  • 노봉마을 개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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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봉마을의 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남원시 사매면은 남원 시내에서 춘향터널을 통과하여 12㎞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계룡산을 경계로 보절면, 서쪽으로는 노적봉을 경계로 순창군 동계면, 임실군 삼계면과 오수면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춘향터널을 경계로 광치동, 대산면과 접하며, 북으로는 덕과면과 인접하고 있다. 국도 17호 4차선이 북에서 남으로 면 중심지를(6.3㎞) 통과하고 있으며, 전라선이 면의 서부인...

  • 노봉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사매면(巳梅面)은 사동방(巳洞坊)과 매내방(梅內坊) 또는 매안방(梅岸坊)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2개방(사동방, 매안방)이 면으로 바뀌어, 사매면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의 사동면과 매내면 또는 매안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매내(안)면의 상신(上新), 중신(中新), 하신(下新), 신촌(新村), 세촌(細村), 풍촌...

  • 노봉마을의 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마을의 총면적은 215.2㏊로써 사매면 전체면적의 6.4%을 차지하고, 가구는 47호로 사매면 전체의 5%이고 인구는 110명(남 55명, 여 55명)으로 사매면 전체의 6%이다. 노봉마을은 논농사가 주업이나 야산이 많아 구릉 지형이기 때문에 과수단지가 많은데, 과수(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 시설 채소(상추, 딸기, 오이), 인삼, 엽연초, 화훼, 축산(한우, 젖소,...

  • 노봉마을의 민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마을의 설날 풍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면 예전에는 동네 꼬마들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일일이 세배를 드렸지만 지금은 대충 일가들의 집만 다니면서 드리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음식도 떡국 끓이고, 시루떡 하고, 엿 만들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노봉마을은 설날 준비하는 음식 중 특별히 엿을 많이 만들어 먹...

  • 노봉마을의 전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마을에는 고려 초에 도선국사(道先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호성암(虎成菴)이 있다. 이 암자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느 도승이 이곳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도승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이었다. 도승은 깜짝 놀라며 호랑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이 나를 해치려 하는가?"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아니...

  • 노봉마을의 인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 마을에서는 삭녕 최씨가 가장 유명한 집안이다. 처음 마을을 세운 최수웅은 세조 때 명신 최항의 손자다. 삭녕 최씨는 대를 이으며 문과에 급제, "6대 등과"로 이름을 떨쳤다. 이 가문은 10현 8한림 5대 진사를 배출했다. 특히 그의 5대손 최온이 폄재라는 호를 사용하여 그의 집안은 세칭 폄재 집안으로 불렸다. 폄재 최온(崔薀)[1583~165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

  • 노봉마을의 명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마을에는 고려 초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호성암(虎成菴)이 있다. 이 암자는 남북의 분단 상황 속에 무장공비의 은신처가 된다 하여 철거되어, 지금은 석벽에 조각된 마애불상과 샘만 외롭게 남아 있고, 능선 넘어 둔터암이라는 암자터만이 남아 있다. 또한 사액서원인 노봉서원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대원군의 서원 철거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지금은 옛터에...

  • 최도범 할아버지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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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도범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최도범 할아버지의 연세는 74세로 계유생(1933년)이다. 태몽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탯자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태어날 때 목에 흰 줄(탯줄)을 감고 나오면 구육(狗肉, 구탕, 보신탕)을 안 먹으면 좋다는 말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최도범 할아버지 부친의 성명은 최성술(成述)[삭녕최씨]이고, 모친은 최수모(秀模)[경주최씨]이다. 부모가 같이 최씨이지만 본관이 서로 다르다...

  • 최도범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지금까지 노봉마을에서 줄곧 농업에 종사했는데 농사를 지어봐야 수입이 형편없단다. “농사를 지었어요. 논농사는 1,800평을 경작하고 있어요. 별 일 없으면 일년에 80㎏, 백미 30가마를 수확한다고 보면 돼죠. 3분의 1은 손자들까지 식량을 하라고 주고, 3분의 1은 농비로 쓰고, 3분의 1은 가용으로 쓰는데 오히려 당년 생산량으로는 많이 부족하죠.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보충을...

  • 최도범 할아버지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집안에 모시는 신의 여부/신주(神主)의 위치는 어디냐는 물음에 믿음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고 말씀하면서 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집안에 모시는 신 그런 모든 것은 다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헙니다. 나는 미신적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미신이란 것은 미혹할 미(迷)로 아득하다는 것이요. 그러개 내가 뭣을 믿고자도 안보일 정도로 아득해서...

  • 최도범 할아버지의 사람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마을의 유래, 형성 과정에 대해 최도범 할아버지는 노봉마을 뒤에 있는 노적봉에서 촌명이 유래하였다고 말해 주셨다. 노봉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노봉서원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향교가 있었을 것이니까 고려 말이나 중엽에도 마을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또 노봉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귀해서 메밀, 조, 서숙 등 밭작물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 최이순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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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이순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최이순 할머니의 친정은 임실군 강진면 백련리인데 지금은 전주로 이사를 가서 전주에서 살고 있다. 최이순 할머니가 시집은 20살 때 왔는데 당시 신랑인 할아버지(이영무, 현재 73세)는 19살이었다. 당시 결혼을 주선한 중신어미는 시댁인 노봉마을의 아랫몰에 살던 윤놀이어매인데 지금은 작고했다. 윤놀이어매는 그 할머니의 아들 이름이 김윤놀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윤놀어매는 평소에 할머...

  • 최이순 할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결혼하고 나서 시집은 아랫몰에 있었고 할머니는 중뜸에서 따로 살았다. 결혼해서 처음에는 남의 아래채에서 셋방살이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33살 먹을 때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결혼한 지 13년 지나서 집을 장만한 것이고 그런 후에 지금부터 6년 전인 69살 먹었을 때 그 집을 밀어버리고 양옥집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결혼 직후부터 분가해서 살았기 때문에 시부모님으로부터 살림을 물려받은...

  • 최이순 할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할머니는 남원에 있는 보문사에 다니면서 불교를 믿고 있다. 보문사는 남원의 시내버스 종점에서 보면 보인다고 한다. 절을 노상 다니면 돈이 드니까 정월에 신수 불공하러 가고, 동짓날 동지 불공 가고, 사월 초파일에 가고 하여, 일 년에 몇 번 간다. 그런데 가려면 시줏돈을 가지고 가야 하니까 생각처럼 많이 자주 다니지는 못한다. 시줏돈은 얼마씩 하느냐는 질문에 형편에 나름대로 돈 있...

  • 최이순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특별히 날 잡아서 놀거나 별식을 해서 먹고 하지를 못했다. “촌에서 그럴 새가 어디 있어요. 자석들허고 먹고 살기도 힘든디.”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쌀밥이 흔하니까 그렇지 전에는 식량이 귀해서 죽을 끓여서 먹었다. 일꾼들도 죽을 끓여서 좀 되죽한 것을 주고 나머지는 멀건 죽을 먹었다. 정지꾼들은 멀건 죽을 먹었다. 봄에는 쑥을 캐서 쑥죽을 끓이고 나물...

  • 김동호 아저씨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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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호 아저씨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동호 아저씨의 연세는 49세로, 태어나실 때 특별한 태몽은 없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본래 고향은 전남 구례군 영암인데 할아버지 때 남원 송동면에서 한때 거주하다 노봉마을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김동호 아저씨는 노봉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원래 저희 집은 전남 구례 영암이예요. 구례 영암은 곡성 지나서라고 하던데 가보지는 않았어요. 구례에서 살다가 송동면 신촌리...

  • 김동호 아저씨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동호 아저씨는 지금까지 노봉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노봉에서 농사를 짓고 있죠. 현재 짓고 있는 논농사는 70마지기, 밭은 2,000평 정도 돼요. 밭 중에 복숭아 과수원이 1,500평이죠. 아까 밤 7시부터 8시까지 어둡도록 약을 했죠. 우리 논은 한 20마지기 되고 나머지는 남의 논이죠. 우리 일은 틈나는 대로 하고 남의 일을 많이 하죠. 내 것만 하면 한가하게 하...

  • 김동호 아저씨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가정 신앙은 특별한 것이 없고 자녀들만 마을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 “우리 집은 특별한 종교는 없어요. 어머니와 우리들은 종교가 없는데 아이들은 교회를 다녀요. 우리 마을에 있는 새사도교회를 다니는데 어려서부터 다녔어요. 어려서부터 행사 있고 그럴 때 오라고 해싸니까 다니게 되었겠죠.” “집안에 모시는 신이나 신주는 특별한 것은 없어요. 할머니 때는 하셨는데 어머니 때는 신식이 됐...

  • 김동호 아저씨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노봉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지금은 마을의 이장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시다. “노봉에서 이장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 한 10년 전에 일 년간 이장을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하기 시작한 지가 올해가 4년째 되었어요. 요즘은 이장도 선거를 하고 치열한데, 우리 마을은 이장을 서로 하려고 해요. 이장은 임기가 2년이거든요. 예전에는 1년씩이었는디 단년으로 선거를 했었요...

  • 윤재선 아주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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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선 아주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윤재선 아주머니의 연세는 46세이고 친정은 남원 주생면 지당이다. “주생면 지당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노봉으로 시집을 왔죠. 노봉에서 결혼해서 22년을 살았어요. 남편은 김동섭(49세)이고, 1남 2녀를 뒀어요. 큰애가 딸인데 김미라(22세)이고, 둘째도 딸인데 영원(20살)이고 막내가 아들인데 영준(19살)이예요. 지금 남원고등학교 3학년인데 기숙사에서 다니고 있어요.” 아주머니...

  • 윤재선 아주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주일의 식단은 특별한 것이 없어요. 농촌에서 살고 있으니까 김치, 야채 종류를 많이 먹고 있죠. 식단 마련은 특별히 돈이 드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채소를 주로 해서 먹죠. 아이들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주로 먹어요. 잘 먹어요. 여기가 농촌이니까 통닭이나 이런 것은 시켜먹고 하지는 않고 우리 아이들은 토종닭을 주로 먹어요.”...

  • 전통 문화와 향교의 고장 향교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향교동에 위치한 주요 문화재로는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비롯하여 남원향교(지방유형문화재 49호), 남원향교 대성전(지방유형문화재 8호), 경주 김씨 보판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 교룡산성(지방기념물 9호) 그리고 남원 사직단(지방기념물 79호) 등이 있다. 교룡산성 안에는 685년에 창건한 선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는 대북(민속자료 5호),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11...

  • 향교동 개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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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교동의 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향교동은 남원시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88고속도로와 전주간 국도를 연결하는 남원시의 관문이며, 전라선 철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산성역, 광치 농공단지, 서남대학교가 있다. 동으로 도통동, 서로 왕정동, 남으로 동충동, 북으로 사매면이 인접하는 도·농 복합형의 다분화된 지역으로 남원시에서 대동(大洞)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 도시의 전형적인 도심 형태와 아파트 밀집 지역,...

  • 향교동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향교동은 원래 남원 서봉면(捿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서봉면 구암(九岩), 교촌(校村), 장승(長承), 정치(正峙)와 통한면(通汗面) 용정(龍井), 왕지전면(王之田面)[왕치면] 응곡(鷹谷) 일부를 병합하여 이곳에 향교(鄕校)가 있기에 향교리라 하고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리가 동으로 되었다. 용정(龍井)마을이란 이름의 유래는...

  • 향교동의 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향교동의 인구 구성은 2004년 12월 31일 현재, 3,761세대 10,090명이다. 주민 83.2%가 3차 산업에 종사하고 농업 위주 1차 산업 5.4%, 광공업 2차 산업 11.4%로 구성되어 있다. 광치 농공1,2단지에 28개 업체가 입주하여 가동중에 있으며 진상품인 산성 닭과 보성의 단감이 대표적 토산품이다. 향교동 구암마을에는 김해 김씨 집성촌이 있다. 김종한 할아버지...

  • 향교동의 민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옛날에 시골에서는 정월부터 12월까지 행사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설날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세배하고, 보름날엔 달집을 만들어서 태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경사든 애사든 가까운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무엇을 가져와서 이틀, 사흘씩 서로 도와줬다. 그리고 옛날에 결혼과 관련된 풍속으로는 식육점 운영하는 사람(백정)과 무당(당골) 등과는 절대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

  • 향교동의 전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49호인 남원향교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전국 향교 설치령에 따라 태종 10년(1410년)에 세워진 것으로 처음에는 남원부의 서쪽에 세워졌다. 그러나 매년 석전제를 드릴 때마다 호랑이의 훼방이 심해 세종 10년(1428년) 요천 위 현 덕음암(德蔭庵)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 뒤 남원향교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세종 25년(1443) 때의 일이며...

  • 향교동의 명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향교동에 위치한 주요 문화재로는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비롯하여 남원향교(지방유형문화재 49호), 남원향교 대성전(지방유형문화재 8호), 경주 김씨 보판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 교룡산성(지방기념물 9호) 그리고 남원 사직단(지방기념물 79호) 등이 있다. 교룡산성 안에는 685년에 창건한 선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는 대북(민속자료 5호),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11...

  • 김종한 할아버지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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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한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종한 할아버지는 1924년 갑자년 9월생으로 만 82세이다. 어머니는 그를 낳을 때 특별한 태몽을 꾸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김해 김씨인데, 성명은 김영곤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로 성명은 김순자다. 그의 아내는 경주 김씨로 금지 출신이다. "나는,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인 남원 용성보통학교를 다녔는데, 그 땐 왜정 때라 한국 사람은 다섯 양반인가 밖에 없고 전부 왜놈들...

  • 김종한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그는 남원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정읍(구 태인면 소재)에 있는 금융조합에 처음 취직하였다. 여기에서 약 2년간 근무하였다. 그리고 스무 살 때 결혼한 후 1년 남짓 더 근무하다가 8월, 군입대 4-5개월 전에 남원 집에 와서 숨어서 살았다. 이때부터는 아내와 남원 집에서 계속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해방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남원에 농촌지도소가 처음으로 생겨...

  • 김종한 할아버지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옛날에 김종한 할아버지의 할머니와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셨다. 그는 유교(향교)를 믿고 있으며 아내는 무교이고 자녀 중에는 큰 딸만 기독교인이며 나머지는 무교이다. 집안에 사당이 있거나 마을에 제를 모시는 것은 없다. "우리 집은 옛날에 제사로 12분을 모셨는데 지금은 동생들과 나누어 지내고, 일부는 4대 선조 이상은 산 현장에서 가을이나 봄에 제사를 지내는 시제로 지내고 4대 안에...

  • 김종한 할아버지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종한 할아버지는 농업기술자협회, 원지도자연합회, 시노인회, 향교 등등에 참여해서 대한민국 안 가본 데가 거의 없다. 또한 중국, 일본 등 해외에도 자주 다녀왔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 동아일보에서 독립 유공자들을 초청하여 중국의 독립투사들의 투쟁 장소에 현지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의 고숙이 독립투사셨기에 여기에 참여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나이...

  • 김종한 할아버지가 말하는 향교동 구암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원래 향교리는 4개의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을 비롯하여 우리 마을 위쪽 마을이 향교마을, 아래쪽 마을이 장승마을[장승백이], 그리고 그 아래 마을이 현재 사직단이 있는 곳인 용정마을이지요. 이것이 옛날로 말하면 소위 향교리, 지금의 향교동이에요. 다른 마을은 차치하고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이 왜 ‘구암’이냐 하면, 풍수지리학상 금구몰리 즉, 거북...

  • 김종한 할아버지 시대의 의식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옛날에 여름에는 삼베(삼), 겨울에는 명베(목화로 만든 무명)로 만든 옷을 주로 입었다. 이러한 옷은 자급자족하였다. 또한 어렸을 때는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고무신 신은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아주 부자 몇몇만 운동화를 신었다. 책가방도 없고 책보라고 해서 어깨 뒤로 둘러서 묶고 다녔다. 일할 때는 특별히 근무복이 별도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남자들은 단벌...

  • 김진자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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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자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나는 1940년 8월 21일 생으로 만 66세이고 경주 김씨이다. 친정 아버지께서 임실군 삼계면 면장을 12년 동안 하시다가 전남 광주 구청으로 근무지가 옮겨짐에 따라, 광주에서 중앙국민학교를 다녔다. 중앙국민학교를 다니던 중, 2학년 때 6·25가 발발하여 급히 고향인 임실로 피하게 되는 바람에 중앙국민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임실로 와서는 임실 삼계국민학교로 옮겨서 여기에서 3...

  • 김진자 할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주택의 형태는 지붕에 기와를 올린 한옥으로 자가 소유이다. 옛날 부대장이 살던 집을 구매해서 주변 집들과는 달리 집이 넓은 편이다. 대지는 80평, 건평은 30평으로 본채와 행낭, 그리고 간이 창고가 ‘ㄷ’자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그 중앙에는 정원이 있다. 본채에는 화장실, 주방, 그리고 몸채로 구성되어 있다. 난방은 석유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문제...

  • 김진자 할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종교는 기독교이다. 현재 동부교회에 다니고 있다. 큰딸, 둘째딸도 교회에 다니고 있다. 제사는 1년에 4번 지낸다. 제사상의 음식으로는 과일류, 채소류, 탕류, 육류 등을 준비하였다. 제사상의 맨 첫 번째 줄에는 과일류, 둘째 줄에 채소류, 셋째 줄에 탕류, 넷째 줄에 육·포·적류, 그리고 맨 안쪽에는 잔, 반, 갱을 진설하였다. 즉, 잔, 반, 갱을 비롯하여 수육, 육적, 어적,...

  • 김진자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재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꿈이 너무 많아 앞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집안 정원이 넓어서 각종 채소 등을 키우면서 상추, 호박, 고구마, 머욱(머위), 부추, 오이, 가지, 들깨, 방울토마토 등 30여 가지가 넘게 기른다. 마치 농장처럼 관리하면서 지낸다. 상추가 좋으니까 상추쌈을 자주 먹으며, 자녀들이 집에 오면 상추와 함께 삼겹살 파티를...

  • 최동렬 아저씨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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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렬 아저씨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나는 1956년 4월 1일 생으로 나이는 만 50세이다. 전주 최씨이고,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가 고향으로 1988년까지는 이곳에서 살다가 결혼 3년 후인 1988년에 남원시 쌍교동으로 분가한 후 1991년부터 이 곳 향교동에서 살고 있다.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초등학교는 남원시 주생면에 있는 주생초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는 남원 용성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다닐 때는 우...

  • 최동렬 아저씨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군제대 후 1년 동안 운수업에 종사하다가 1982년에 지방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의 처음 받았던 월급은 군제대 가산 경력 3호봉 포함해서 본봉이 약 89,000원으로 기억난다. 그 외 여비, 수당 등을 포함하면 약 120,000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현재의 연봉은 약 4,500-4,600만 원 정도이다. 한편 과거 박정희 정권 때부터 전두환 정권...

  • 최동렬 아저씨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가정 신앙은 없으며 신체도 모시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아내, 자녀들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외아들이셨고 아버지는 아들만 다섯을 두셨는데, 내가 우리 5형제들 중 장남이다. 우리 집에서 제사는 3대까지 지내고 있다. 아버지와 내가 제사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선산은 남원시 송동면에 있으며 내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제일(祭日)은...

  • 최동렬 아저씨의 사람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마을 일에는 잘 관여하지 않고 있다. 직장 생활에 충실해야 하니까 다른 공식적인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성격이 외향적이진 않아서 특별히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는 않다. 주변 동료들과 학교 동창 등을 가끔 만난다. 노래나 놀이 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노래방도 거의 가지 않는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책을 보면 많이 재미를 느끼고, 드라마나 영화도 역사적인 내용을 다룬 것을...

  • 최동렬 아저씨가 말하는 유명한 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향교동 마을에서 유명한 곳으로는 무엇보다도 남원향교를 들 수 있다. 향교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봐도 그렇다. 원래 향교가 있던 마을의 이름이 교동 등으로도 불리어지나 남원의 향교동은 직접 향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호남 지역에는 4대 향교가 있었는데 남원향교를 비롯하여 전주향교, 광주향교, 나주향교가 그것이다. 남원향교는 조선 시대 전체를 통해 12...

  • 김점순 아주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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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점순 아주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55년 5월 8일 생으로 만 52세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꾸신 특별한 태몽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내가 우리 아들들을 낳을 때 모두 냇가에서 대사리(다슬기) 잡는 꿈을 꾸었다. 친정 아버지는 광산 김씨로 장수 태생이시며, 어머니는 고씨로 원래 남원 태생이시다. 부모님은 3남 2녀를 두셨는데 위로 남자 셋이 모두 오빠고 나는 여자 중에서 장녀이다. 모두 결혼해서 주로 수원에...

  • 김점순 아주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가족의 수입은 내가 식당을 운영하면서 연간 약 1,000만원을 벌고 있다. 남편은 소를 키워 연간 약 10마리 정도를 내다 팔고 있는데 소 값이 변동이 심해 정확한 소득을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육소 600㎏당 400-5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연간 약 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가족의 지출규모는 월 약 150만 원 선이다. 옷은 주로 양품점에서 구매하며 구입비용은...

  • 김점순 아주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종교는 없다. 옛날에는 부엌(부뚜막)에 조그마한 종지 그릇에 깨끗한 물울 떠 놓고 매일 아침마다 새로 바꿔주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우리 시대에는 그런 것 없다. 시아버지의 제사상을 차릴 때 준비하는 음식으로는 조기, 꼬막, 탕(홍합, 명태, 새우 등), 부침개, 떡(시루떡), 과일(사과, 배, 계절에 따른 과일 등), 곶감, 알밤, 대추, 나물(콩나물, 시금치, 도라지,...

  • 김점순 아주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남편과 아이들의 식사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가생활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지는 못한다. 장수국민학교를 졸업하였는데, 그 때 생각나는 선생님으로는 체육 선생님이신 문홍기 선생님과 이정덕 선생님이 있다. 두 분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내가 장수초등학교 10회 졸업생인데, 그 때 우리 학년의 학급은 2학급이었고 학생 수는 한 학급당 약 60명...

  •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통팔달, 백일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백일리가 속한 산내면은 우리나라에서 첩첩산중의 오지 가운데 오지라고 할 수 있지만, 백일리는 남쪽은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가 꽤 넓고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장쾌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 백일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길목에 있으므로 사통팔달의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백일리는 남원과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

  • 백일마을의 개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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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마을의 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먼저 산내면은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삼국 시대에는 신라 모산현(母山縣)[운봉현]에 속해 있었으며, 940년(고려 태조 23년)에는 운봉현 산내방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는 운봉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1897년에 방(坊)이 면(面)으로 개칭되면서 운봉군 산내면이 백일(白日), 대정(大井), 입석(立石) 등 29개 리(里)를 관할했다. 1914년(순종 8년)...

  • 백일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본래 운봉의 산내면 지역으로 통내(通內) 또는 백일(白日)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수리, 서수리, 저전리, 하황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일리라고 했다. 마을 뒤에는 백운봉이 솟아 있고,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어 아침이면 백운봉과 천왕봉에 솟아오르는 태양이 깨끗하고 맑게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백일(白日)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는 동수, 서수, 백일,...

  • 백일마을의 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백일마을 총 면적은 백운봉 쪽 임야를 포함한 183.4㏊로 산내면 전체 면적의 7.09%를 점하고, 전답별 비율은 전이 농경지의 40.4%, 답은 36.2㏊로 농경지의 40.4%, 답은 36.2㏊로 농경지의 59.6%이며, 임야는 123㏊로 총면적의 67.0%이다. 전체 인구는 2006년 7월 현재, 916세대 2,157명이다. 남녀 비율이 거의 같은데, 남자가 1,079명이고...

  • 백일마을의 민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해마다 그 계절, 그 달, 그 시(時)가 될 때 반복해서 행하는 관습을 세시풍속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세시에 맞추어 하는 풍속이기에 세시풍속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세시 풍속으로는 ‘정월’, ‘입춘’, ‘대보름’ 등이 있다. 정월이 되면 설빔을 입고 윗어른들께 세배하고 성묘하여 사람된 도리를 다하였으며, 일가 친척을 찾아 혈연의 정을 두텁게 하였다. 또한 이웃과 교분을 깊게 해서...

  • 백일마을의 전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올해 84세인 서명문 할머니가 들려 준, 백일마을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금대암에 얽힌 전설이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 백일마을의 명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백일리는 남원과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년 고찰 실상사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의 형성과 발전 및 산업은 실상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백일리에 목기 산업이 발달한 까닭도 실상사 스님들이 필요로 하는 발우, 목탁 등 불교 용구를 공급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신라 헌덕왕 때 출생한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장에게 선법을 배운 뒤 귀국하여 지금의 지...

  • 김을생 할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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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을생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특별한 태몽은 없지만 본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했던 지라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에 매동 뒤의 서진암에서 부처님에게 자주 기도를 드리며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소망했으니, 내가 세상에 나온 뒤 어머니는 ‘너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낳은 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내가 성장하여 스님들이 쓰시는 발우(鉢盂)의 제작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은 것도 어머님의 말씀과 무관하다고...

  • 김을생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을생 할아버지는 1957년 간부 후보생이 되어 1년 동안 고된 훈련과 엄격한 교육을 마치고 난 뒤, 1958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9년 대위로 예편할 때까지 12년 동안 전후방의 여러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군문에서 장군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비육사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예편했다. "막상 예편하고 보니까 육군 대위 출신을 특별히 반겨주는 곳이 없었어....

  • 김을생 할아버지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 할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부처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한 분이다. 하시는 일이 주로 불교 용품을 제작하는 일이고, 하루 일과도 참선과 수양을 통해 시작하고 끝낼 정도로 전형적인 불제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실상사 앞마을에서 태어나고 한 평생 발우를 제작하게 것이 모두 부처님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전국에 산...

  • 김을생 할아버지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을생 할아버지는 고희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금호공예’를 운영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금호공예’ 사장이다. 그는 주로 자신이 경영하는 공방(工房)을 통해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실상사는 물론이고 전국의 명산대찰의 스님들과도 수시로 교류를 하고 있다. 마을의 대소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단다. 또 산내초...

  • 김을생 할아버지가 들려 준 백일리의 유래와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을생 할아버지는 백일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백일리의 유래는 실상사 창건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어. 원래 이곳은 전인미답의 산중이었는데, 통일신라 말기 대가람 실상사가 우리 마을 앞에 창건될 때, 스님을 따라 들어온 속세의 사람들이 최초로 우리 마을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어. 실상사의 번창과 쇠락이 마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 참고로 통일신라...

  • 배종수 할아버지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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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종수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올해로 일흔 일곱이므로 1930년 생이야. 본관은 김해 배씨(裵氏)이고 조상 대대로 경남 합천에서 살았어. 할아버지 때 백일리로 이주했다고 해. 할아버지께서 합천에 살 때 어떤 친척이 고조부 묘 옆에다 몰래 묘를 쓴 일이 있었대. 그 일로 고향에서 크게 싸우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들었어. 나는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내왔지. " "해방되기 바로 1년 전인가? 1944년에 산...

  • 배종수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57년 경 지리산 빨갱이들이 완전히 토벌되자 마을에도 평화가 찾아왔어. 나는 산내면사무소에 취직해 총무과에서 일했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5.16 혁명을 만났는데, 군대 안 간 사람을 잡아들이더군. 나는 가슴과 팔에 입은 총상으로 군대에 안 갔어. 하지만 나도 병역 기피자로 몰리고 말았어. 그때 군대 안 간 사람들을 잡아들여 건설대를 조직했어. 내가 들어간 건설대가 지금의...

  • 배종수 할아버지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불교 신자야. 백일리 주민들은 실상사를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으므로 대부분 불교 신자야. ‘6·25’ 때 공비 토벌을 목적으로 실상사를 불태우려고 했는데, 호국군 중위로 있었던 내 친형(배종석)이 극력 만류한 덕분에 화마를 면한 거야. 아마 우리 집안은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나봐. 내가 김제의 불교 학교인 금산중학교에 진학한 것도 실상사에서 학비를 대주었던 덕분이야. " 해마다 명...

  • 배종수 할아버지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재 배종수 할아버지는 '사단법인 6·25 참전 전우기념사업회 남원시 지회' 부회장과 '남향 쌈지돈 장학회' 부이사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 주로 '남원 행정동우회'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다. 흥이 나면 ‘두만강’, ‘처녀 뱃사공’ 등의 예전 노래를 즐겨 부르고 요즘 노래는 잘 모른다....

  • 배종수 할아버지가 들려 준 마을의 유래와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배종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마을의 유래와 역사는 다음과 같다. "실상사가 생기면서 마을도 생겼다고 해. 실상사는 참 사연이 많은 절이야. 왜정 때는 왜놈들 수비본부가 주둔했고, ‘여순반란’ 사건 때는 국군 본부, ‘6·25’ 때는 인민군 본부가 있었어. 지리산에 숨어 있는 반란군들을 토벌하려면 평지에 있는 실상사를 주둔군 본부로 활용하는 게 가장 유리했지 않았나 생각해. 나라에...

  • 배종수 할아버지가 들려 준 산내면 주민들의 곶감 만들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감을 곶감이라 한다. 곶감은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건시라고도 한다. 곶감은 제사를 모실 때 바치던 계절식품이기도 하며 간식용으로도 애용되었다. 수정과를 만들 때 넣어서 단 맛이 우러나게 하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곶감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때 중국에 보낸 예물 목록 중에 곶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

  • 서명분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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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명분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올해 84세인 서명분 할머니는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고 매일 마을 노인정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생활하고 계신다. 특히 할머니는 옛날 노래와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셨다. "마천 등구에서 태어났어. 아버지(서명수) 어머니(이수남) 사이에 아들 셋, 딸 셋을 두었는데 지금은 나만 남고 다 죽었어. 학교가면 시집 못 간다고 부모님이 공부를 안...

  • 서명분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남원 아들집과 백일리 집을 오가며 소일하고 있다. 백일리 할머니들과 함께 정자에 모여 술 한 잔씩 하며 옛날이야기하고 노는 게 즐겁다. 남원 아들집은 아파트라 떠들며 놀 수 없다. 흘러간 옛날 노래를 참으로 좋아한다. 지금도 흥이 나면 몇 십 곡 부르는 것은 기본이다. 백일리와 남원 하이츠 아파트 노인들이 다 친한 친구들이다. 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노래는 다음과 같다. 서마지기...

  • 서명분 할머니가 들려 준 옛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대. ‘부처님의 신통력이 있으면 이런 정도의 바위는...

  • 이정순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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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순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나는 산내면 매동에서 태어났는데 18세 때 김갑용과 혼인했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결혼했지. 그 때 신랑은 징용으로 끌려가서 소련에서 돌아 온 직후로 26세였어. 친정집 매동에서 구식 혼례를 올렸는데 시누 남편이 중매를 섰어. 내가 백일리에서 신접살림을 꾸리는 데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박오분)가 과부로 있었어. 참 말도 마! 얼마나 시집살이가 심했는지 시어머니가 돌아...

  • 이정순 할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어휴! 말도 마! 저기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어. 새마을운동 땐가, 초가집 헐어버리고 기와집을 지었지. 좁은 집에서 8남매 키우느라 참 고생 많았어. " "웬만한 반찬은 다 텃밭에서 해결했어. 장에 나가려면 인월장에 가야 했는데 옛날에 어디 장 한 번 나가기가 쉬웠어야지. 문슨 명절 때나 큰마음 먹고 인월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왔어. 산내는 산나물이 많이 나....

  • 이정순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매일 마을 정자에 나와 마을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노는 게 일이야. 피곤하면 그늘에서 잠자고, 배고프면 먹고 정말 신선이 부럽지 않아. 아이고! 도시에서는 살라고 해도 못 살아. 이곳의 공기가 얼마나 좋은데. 남원만 나가도 공기가 달라. 아픈 할머니 있으면 면에서 사람이 와서 돌봐주고 그래. 참 좋은 세상이야." "지금 여기 누워있는 할머니들이 다 내 친구들이야. 매일 한...

  • 이정순 할머니의 징용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이정순 할머니는 남편이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해방을 맞이하여 소련군에 잡혀 소련 땅에서 6년간 노동을 하고 돌아 온 아픈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정부에서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간 사람들을 파악하여 보상해 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께서 산내면사무소에 찾아가 남편의 과거 억울한 행적을 신고하고 보상을 받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면박을 당했다고 한다. 할머...

  • 장종구 아저씨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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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종구 아저씨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재 마을 이장직을 맡고 있는 장종구 이장님은 올해 67세이므로 통념상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나, 마을에서는 70세 이상이 되어야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또 중장년층에 속한 사람이 몇 명 안 되고 실제 마을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므로, 사실은 아저씨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1939년 10월 2일 생이므로 올해 만 67세이고 부모로부터 태몽 이야기는 특별히 들은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 장종구 아저씨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결혼 후 큰딸, 둘째딸을 연이어 낳자 농사만으로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힘들더라고. 그래서 일자리를 수소문해 본 끝에 산내면에 소재한 ‘봉황석재’에 취직할 수 있었어. 나로서는 정규직의 일자리를 얻은 셈이지. 원체 박봉이었던지라 첫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천9백원을 받았던가? 직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회사에서 ‘주동’을 많이 했어. 쟁의위원장을 맡아 사업주와...

  • 장종구 아저씨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시간 날 때 마다 실상사뿐만 아니라 양수암, 죽림원, 약수암 등지의 암자도 자주 찾아가 불공을 드린다고 한다. 설날,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조상께 정성껏 제사를 지낸다. 한식에는 직접 선산에 가서 벌초한다. 지금은 명절에 자식들이 집에 오면 함께 식사하고 노는 게 주요 세시 풍속이다. 옛날에 놀았던 것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그저 기억만 날 뿐이다. 그래도 명...

  • 장종구 아저씨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재 마을의 이장직을 맡고 있는 게 공식 조직의 전부라고 한다. 배점대, 박귀태 등의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서울 등 타지에서 살고 있어서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매동에 사는 곽종식과 장항리에 사는 정인철은 같은 산내면에 살고 있으므로 가끔 만난다. 예전에는 술도 많이 먹고 노래도 잘했으나 심장이 안 좋은 후부터는 술은 일체 금하고 있으며 노래도 안 부른다. 한가할 때 마을 회관에...

  • 장종구 아저씨가 말하는 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장종구 아저씨는 마을의 역사에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청도 김씨(金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후손들이 번성하지 못해 집성촌을 이루지 못했어. 우리 마을은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아니고 김씨, 이씨, 박씨, 장씨 등 각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의 유래는실상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 우리 마을이 실상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

  • 정영희 아주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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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희 아주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난리(한국전쟁)가 난 해의 이듬해(1951년)에 태어났으니 올해(2006년) 만으로 55세예요.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 손녀가 있으니 할머니 소리 들은 지도 오래 되었네. 내가 태어날 당시의 상황을 어찌 알겠냐만, 어린 시절에 참으로 배고프고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못 살았던지! 밥을 굶어 얼굴이 노랗게 뜬 사람이 부지기수였어요. 부모로부터 무슨 태몽 이...

  • 정영희 아주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재 집은 없고 지금 개업한 식당 건물은 1년에 2백만원에 세를 얻어 살고 있다. 원래 1년 세가 150만원이었는데 올해 주인이 50만원을 인상하여 타격이 크다고 한다. 그래도 음식 솜씨가 좋다고 해서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 덕택에 유지된다고 한다. "김치, 산나물, 멸치볶음, 추어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이야. 식당을 운영하므로 아무래도 반찬 종류가 많아요. 손님들 입맛에 맞추기...

  • 정영희 아주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독실한 불교 신자다. 실상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남편이 지금도 병석이 누워있으므로 제사는 잘 안 지내는 편이다. 특별한 게 없다. 명절 때도 자식들이 다 모이기가 쉽지 않다....

  • 정영희 아주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옛날에는 술 한 잔씩했으나 지금은 신경성 두통이 있어서 마시지 못 한다. 최근 머리가 아프고 토하고 해서 남원삼성병원에서 2주간 입원했다. 서울에 사는 친구 박점순하고는 사돈을 맺었다. 특별히 노는 일은 없고 다만 ‘사랑은 아무나 하나’, ‘미스고’, ‘있을 때 잘해’ 등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 정영희 아주머니가 말하는 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실상사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어. 처녀 때 닥종이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남편을 따라 보성, 임실에서 한 3년 살았어. 그때는 이곳만 벗어나면 잘 살 줄 알았지. 어려서 배고팠던 기억이 많이 생각나요. 그때는 어찌도 그리 못 먹고 못 살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참 세상 많이 좋아졌어. 요...

  • 정영희 아주머니가 말하는 한지 생산 과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정영희 아주머니를 통하여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대정리 일대가 예전에 유명한 한지 생산 지역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까지만 해도 겨울철에는 한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가동하였는데 지금은 한 두세 곳에서만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내 한지 생산지 마을 주민들은 보통 15살 전후부터 가사인 종이뜨는 일을 돌보았기 때문에 대부분 종이를 뜰 줄 안다. 그래서 나이 60...

  • 김영만씨가 말해주는 한지 만드는 과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 제보자: 김영만(61세)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1558번지 거주 조사자 - 여기가 목기도 있었고, 한지 문종이도 많이 만들었죠? - 문종이 보러 이거 원산지는 뭐, 타지방은 말헐 것도 없고, 요 산내로 가서는 이 중황, 상황, 하황, 이 우개 삼개 부락이 있잖아요. 젤로 우개가 상황, 중황, 하황인디, 그 다음에 백일리, 그 세 부락, 네 부락 다 만들어요. 그러고 인제 저 원...

  • 황산대첩비와 가왕 송흥록의 비전 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비전마을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209번지에 위치해 있다. 비전마을은 본래 운봉의 서면 전촌리(前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촌리(前村里), 옥계리(玉溪里), 소석리(小石里) 일부가 병합되어 화수리(花水里)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군화동(軍花洞)이 있다.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탯자리이다.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歌王) 송흥록 선생(1...

  • 비전마을 개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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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마을의 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화수리에 있는 비전마을은 운봉을 지나 인월 방향으로 조금 가면 왼쪽에 위치해 있다.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함양방면 4.5㎞ 지점에 있으며 국도 24호선이 마을 옆을 통과한다. 운봉읍내를 출발하여 함양으로 가는 도중에는 전촌 입구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에 반월형의 화수산 아래쪽으로 고송이 우거진 황산대첩비각(荒山大捷碑閣)가 있다. 그 동편에 비전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남원에...

  • 비전 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비전마을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209번지에 위치해 있다. 비전마을은 본래 운봉의 서면 전촌리(前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촌리(前村里), 옥계리(玉溪里), 소석리(小石里) 일부가 병합되어 화수리(花水里)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군화동(軍花洞)이 있다. 비전마을은 마을 앞에 비각(碑刻), 즉 황산대첩비각(荒山大捷碑閣)이 있어서 비전(碑前)마을이...

  • 비전 마을의 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97년 6월말 현재 비전 마을의 총면적은 132.5㏊로 운봉읍 전체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별 비율은 전(田)이 5.6㏊로 10%를 차지하고 있고, 답(畓)은 151.2㏊로 총면적의 74%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타는 41㏊로 31%를 차지한다. 2006년 8월 현재 비전마을의 인구는 총 101명이다. 그 중 남자는 44명, 여자는 57명이고 세대수는 48가구이다....

  • 비전 마을의 전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국도에 해발 477m의 여원치가 있다. 황산대첩 시 여원치에서 이성계 장군이 행군 도중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전승(戰勝)의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왜장 아지발도가 자신을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자 칼로 가슴을 베어 자결한 원신(怨神)이었다. 후에 이성계는 이 노파를 산신령이라 여기고 이를 기리기 위해 벽에 여상(女像)을 새기고 산신...

  • 비전 마을의 인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비전마을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도운 마을이지만, 내호곡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생겨난 마을이다. 여류명창 이화중선은 내호곡의 박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가 '소리의 길'을 찾아 집을 뛰쳐나와 결국 비전마을에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화중선의 시댁이 있는 내호곡에는 1700년대에 지은 몽심재(夢心齋)가 있다. 후손들이 이 집을 지으면서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詩)에서...

  • 비전 마을의 명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비전마을에는 사적 104호인 황산대첩비지가 있다. 황산대첩비지에는 어휘각(御諱閣)이 있는데 태조의 어휘인 단(旦)자와 황산대첩에 참전한 8원수 4종사관 이름을 새겨 놓았다는 바위다. 그러나 1758년 발간된 운성지(雲城誌)의 ‘화수산서각’의 내용을 보면 ‘동고록정왜 경신이신(同苦錄征倭庚申李紳)’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나머지는 판독할 수 없다고 했다. 일설에는 황산대첩에 승리한 이...

  • 권수복 할아버지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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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수복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권수복 할아버지는 1945년 3월 29일생으로 2006년 현재 62세이다. 출생지는 경상도 함양군 수석면이다. 3살 때인 1948년에 비전마을로 이사를 왔다. 운봉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논농사를 지으면서 집에서 주경야독으로 독학을 했다. 혼자서 공부를 하고 어떤 증명서도 없지만 신문도 읽고 이장으로서 행정일을 볼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 형제는 3남 3녀로 6남매였다. 누나가 한 분...

  • 권수복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국민학교 졸업 후부터 집에서 농사일을 했다. 지금까지 농사일 외에 해 본 일이 없다. 논농사만 200마지기를 지었는데, 지금은 힘이 부쳐 60마지기 정도만 짓는다. 밭농사는 주로 아내가 짓는다. 소와 돼지도 조금 키웠었는데, 지금은 가축을 키우지 않는다. 가축을 키우지 않는 이유는 냄새가 나고 수질이 나빠져서 이웃 주민에게 폐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전마을은 ‘국악의 성지’가...

  • 권수복 할아버지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특별한 종교생활은 하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생활하신 대로 유교적 생활에 충실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만 집에서 지낸다. 설날과 추석 명절에는 돌아가신 조상을 합동으로 제사지낸다. 상할아버지부터는 시제에서 모신다. 시제는 1년에 한 번 지낸다. 제삿날 상차림을 위해서 20만원 정도를 쓴다. 제사 음식은 부모님 때 그대로이다. 농사일만 할 뿐, 특별한 세시풍속은 없다....

  • 권수복 할아버지의 사람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96년부터 현재 10년째 운봉읍 비전마을 이장일을 하고 있다. 다른 공식조직은 없다. 생활이 힘든 노인 가구나 희망이 필요한 가구를 위해 생활보호대상자로 국가의 지원을 받게 하는 것이 본인이 마을 사람들을 돕는 큰 일 중의 하나다. 국가의 지원은 물질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 친구는 농사지으면서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전부이다. 주로...

  • 최종임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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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임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5년 남원 죽항동에서 태어났다. 위로 오빠 한 분이 있었고, 밑으로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2남 2녀 중 큰 딸이다. 당시 명문이었고 지금도 명문인 남원여고를 졸업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해 보지 않았다. 친정에서는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원불교 교당에서 잔심부름을 하다가 25세가 되어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 최종임 할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처음 결혼해서는 갈대로 만든 샛집에서 살았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있는 집에서만 갈대를 지붕으로 올릴 수 있었다.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새마을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함석집으로 고쳤다. 1999년에 아들이 보내 준 3천만원과 농협에서 받은 융자금 2천만원과 본인의 2천만원 돈을 합쳐서 7천만원으로 30평짜리 신식 벽돌집을 지었다. 집이 번듯하고 넓어서 좋다. 시장은 1일과 6일에...

  • 최종임 할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친정 부모님께서 원불교에 다니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원불교를 믿었다. 시부모님은 특별한 종교가 없었으나, 결혼 후에도 원불교를 계속 다녔다. 매달 1일과 15일에 기도를 드리고 보은미를 바친다. 남편과 시부모님,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제사를 지낸다. 남편이 큰 아들이었기 때문에 큰 며느리인 본인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상할아버지 제사부터는 박씨 종중 시제에서 모신다...

  • 최종임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장구계를 들었다. 장구를 구입하고 장구를 배워서 치는 것이다. 1년에 한 번 씩 1년을 결산하는 ‘계갈이’를 하고 그 수입으로 먹고 놀러 간다. 평소에는 노인회관에서 그 곳에 모인 동네 사람들과 같이 화투를 즐긴다. 화투는 보통 10원이나 100원 정도를 걸고 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특별히 장구계의 계원들과 같이 잘 지낸다. 그동안 새마을 동우회도 있었고, 새마을연합회...

  • 김정태 아저씨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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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태 아저씨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63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현재 44세이다. 5남 1녀 중 넷째 아들이다. 맨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신다. 비전마을에서 운봉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는 각 학년별로 6반 정도였고 한 반의 학생 수가 48-50명 정도 되었다. 곧바로 운봉 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농사일을 했다. 본인은 지게 대학에 다녔다고 말하고 싶다. 20대에는 충남 보령 대청에 있는 탄광...

  • 김정태 아저씨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농사일을 했고 20대에는 탄광일을 했다.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한다. 1999년에 농협 융자를 받아 대지 80평에 건평 30평짜리 붉은 벽돌집을 지었다. 집 옥상에 비닐 하우스를 설치하고 태양초 고추를 말린다. 주로 논농사를 짓는다. 채소 중심으로 밭농사도 약간 짓는다. 가축은 키우지 않는다....

  • 김정태 아저씨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다. 그저 상황에 따라 예수님도 믿어보고, 부처님도 믿어보고 무당도 믿어 본다. 넷째 아들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하지만,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러 와 계시기 때문에, 본인 집에서 제사를 모신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각각의 기일에 맞추어 따로따로 지내고 있다. 제사 음식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다. 특별한 세시풍속이 없다. 그저 농사만...

  • 김정태 아저씨의 사람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아무런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다. 공식조직으로는 ‘황산계’ 계원일 뿐이다. 황산계는 매년 설날과 추석, 즉 1년에 2번 만나 회비를 내고 그 돈으로 집집마다 어려운 사람들 도와준다. 특별히 출산을 했거나 애경사가 있을 때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의미로 공동 부조를 한다. 친구는 주로 농사친구이다. 그들이 모두 동네의 어렸을 때 친구이기도 하다. 농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서로 도와주...

  • 이은주 아주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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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아주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60년에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생했다.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빠와 함께 남매가 계모를 맞이하게 되었다. 계모는 5남매를 출산했다. 아버지는 건축가였다. 함양 위성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계모가 어려서 남의집살이로 보냈다. 남의 집에서 식모노릇을 하다가 태창기업주식회사라는 청바지 회사에서 일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결혼을 하고 싶었다. 지금 큰시숙이 되는 분의 중매로 19...

  • 이은주 아주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결혼할 당시는 스래트 집이었다. 일명 수해 주택 집이라고 한다. 지붕만 스래트로 올렸을 뿐, 벽은 진흙을 발라서 만든 옹색한 집이었다. 그 다음에는 기와를 올린 기와집에서 살았다. 그 때까지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었다. 임신을 해서도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때서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남편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조금 지나서는 연탄불을 쓸 수 있었다. 시어머니의 성화로 2000...

  • 이은주 아주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원래는 종교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설날 아들이 뜨거운 물에 데는 화상 사고를 입었다. 발 가장자리의 살을 도려냈다. 시어머니가 살림을 보아주지 않아서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농사일하고 장사하면서 아이를 키우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이웃 집 아주머니가 강선암이라는 절에 가자고 했다. 그 때부터 그 절에 다닌다. 10년 넘게 불교를 믿고 있...

  • 이은주 아주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여가생활이라고는 없었다. 취미도 없다. 최근에는 수를 놓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집안을 예쁘게 꾸미려고 한다. 적은 돈을 들여도 생각만 잘 하면 집안을 예쁘게 꾸밀 수 있다. 1천원에 종이로 만든 꽃을 사서 거실을 꾸몄다. 현재는 벌통 공장에 다닌다. 빚을 갚기 위해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일하고 벌통 공장 다니기에도 바쁘다. 친구는 동네사람들...

  • 지리산속 뱀사골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뱀사골마을은 국립공원 지리산 안에 위치한다. 뱀사골마을은 지리산의 북동부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달궁과 덕동 그리고 와운은 지리산의 주 등산로인 뱀사골을 끼고 있다. 뱀사골 등반로를 오르면 전라남북도와 경삼남도가 만나는 것으로 유명한 삼도봉에 이르게 된다. 뱀사골이란 지명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 지경에 비암사라는...

  • 뱀사골마을 개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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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뱀사골마을의 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뱀사골마을은 국립공원 지리산 안에 위치한다. 뱀사골마을은 지리산의 북동부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달궁과 덕동 그리고 와운은 지리산의 주 등산로인 뱀사골을 끼고 있다. 뱀사골 등반로를 오르면 전라남북도와 경삼남도가 만나는 것으로 유명한 삼도봉에 이르게 된다. 지리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며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걸쳐 있다....

  • 뱀사골마을의 역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뱀사골이란 지명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 지경에 비암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 이름이 배암사로 불리워져 뱀사골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설명은 뱀사골 계곡에 무수한 물웅덩이(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배암소라는 것이다. 이 설명과 관련하여 전설도 전해 온다. 뱀사골 입구에 송대사란 절이 있었다. 섣달 그믐이면 그 절의 스님이 하나씩 없어졌다....

  • 뱀사골마을의 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와운마을은 고지대에 있는 마을로서 화전을 하였다. 화전이 한창이던 일제시대에는 60호 정도가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에는 30호 정도가 살았다. 그러나 화전 금지 이후 주민이 줄어 현재는 1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덕동 역시 인구와 가구가 많이 줄어 현재는 30호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200년이 넘은 오래된 마을이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소개되면서 마을의 규모가 줄어들었다....

  • 뱀사골마을의 민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와운을 비롯하여 뱀사골 마을에서는 대부분 당산제를 지냈다. 그러나 현재는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다. 와운의 경우 당산제는 천년송에서 지냈다. 정월 초삼일이 제를 지내는 날짜였다. 천년송은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 중 할머니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실제 당산제는 할아버지 나무에서 지냈으며 유교식으로 엄숙하게 지냈다고 한다. 천년송의 할아버지 나무는 웃당산이었으며 아랫당산은 마을...

  • 뱀사골마을의 전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뱀사골 이름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현재 전적기념관은 ‘송대사’라는 절터였다. 이 절에서는 섣달 그믐이면 노스님이 한 명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원인을 밝히고자 밤나무로 스님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에 승복을 입혔다, 그리고는 밤나무로 만든 스님 형상에 비상을 발라두고 옷고름에는 명주실을 매어 두었다. 그 해 섣달 그믐에도 예외없이 자정이 지나자...

  • 뱀사골마을의 명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뱀사골마을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적은 달궁터라고 할 수 있다. 달궁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달궁터는 뱀사골 계곡에서는 예외적으로 넓게 형성된 자갈밭 지역이다. 달궁터에는 주춧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바위들이 많이 산재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이 곳에 달궁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달궁은 어느 시대의 궁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통상 마한의 별궁이었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주민들은...

  • 정민석 할아버지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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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민석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와운이며 태어난 곳도 와운리이다. 3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외지로 나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할아버지는 매우 엄하셔서 동네에서 호랑이 할아버지로 소문났으며 멀리서 거동하시는 것이 보이면 마을 젊은이들은 피해 다닐 정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농사를...

  • 정민석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한평생 농사만 지었다. 마을 주변의 산을 개간한 밭에서 서숙, 고구마 등을 재배했다. 요즘은 고사리 농사를 많이 한다. 젊어서 자녀 교육 문제로 남원에 식구를 내보냈다. 남원에 집과 논을 사서 아내와 자녀들을 내보내고 본인은 혼자 와운에 남아 농사를 지었다. 요즘은 농사만으로는 살기 힘들기 때문에 와운에서는 한봉과 고로쇠 수액 채취를 많이 한다. 한봉은 일 년에 한번 꿀을 내리지만...

  • 정민석 할아버지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본인이 믿고 있는 종교는 없다. 마을에는 목사도 한 명 있고 스님도 한 명 있다. 그러나 목사는 목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으며 마을 주민들 중에서 기독교 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스님은 암자처럼 집을 꾸며 두고 있으나 그 곳에 다니는 주민은 한 명 정도 있다. 대신 비손을 하는 사람은 있다. 몸이 좋지 못하거나 일이 잘 안될 때 그리고 출산을 앞두고 비손하는 사람을...

  • 정민석 할아버지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마을 총회가 있기는 하지만 별 관심은 없다. 마을에서 회의를 해야 할 안건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주민의 수도 적어서 회의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마을에서 여행을 갈 때에는 참가한다. 외지 출입의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런 기회에 마을 사람들과 같이 바깥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동갑이 제일 친하다. 산내면을 단위로 동갑계가 조직되어 있다. 현재 회원은 25명이다....

  • 박복순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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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복순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본인의 친정은 덕동이다. 1936년에 6남매중 4째로 태어났으며 외동딸이었다. 현재 덕동에서 살고 있다. 시집은 덕동에서만 7대째 살고 있는 집안이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정 숙모가 중매를 서서 15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던 해는 여순반란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소개를 당하던 해였다. 당시 친정 식구들은 산내로 소개를 갔다. 그러나 낮에는 마을에 와서 군인들이 지키는...

  • 박복순 할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덕동에 시집 온 이후 현재 집은 세 번째 지은 집이다. 산내로 소개될 때 군인들이 동네에 들어와서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다. 집을 그냥 두면 사람들이 소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집을 불질러 버린 것이다. 5년이나 산내에서 살다가 돌아와서 집을 지었다. 그 때 지은 집은 살림집이어서 그리 크지는 못하였다. 그저 농사짓고 살기에 적당한 집이었다. 그러다가 관광도로가 뚫리고 지...

  • 박복순 할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종교는 절에 다니는 것이다. 지리산에는 절이 많이 있다. 특히 뱀사골에는 절이 많다. 본인은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에 다닌다. 다리도 아프고 거리도 멀고 해서 자주 다니지는 못하지만 초파일에는 꼭 다닌다....

  • 박복순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여가 같은 것은 없다. 아들 내외가 하는 일을 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슨 일이든 한다. 일이 없을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다. 식당에 온 사람들 보는 것도 재미있다. 옛날에는 친구들이 마을에 많이 있었다. 살림하는 것이나 시집살이 하는 것, 자녀 키우는 것 등으로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죽기도 하고 마을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기도 해서 지금은 친구라고 할...

  • 김상중 아저씨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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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중 아저씨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9년 달궁마을에서 태어났다. 달궁마을에는 현재 9대째 살고 있고 가장 오랫 동안 살아온 집안이다. 9대조 이후 계속 외동 아들로만 내려오다가 본인대에서 3남 3녀가 되었다. 그 중 본인은 막내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달궁도 과거에는 농촌이었다. 논도 아주 많았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논이 있었으며 가을에는 계곡이 누렇게 벼가 익었다. 그리고 밭도...

  • 김상중 아저씨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1979년 구례에서 산내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통되고 나서부터 마을에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관광지가 되면서 상점과 식당 그리고 민박을 겸해서 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과 가을 단풍철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오며, 봄에 고로쇠 수액이 날 때도 관광객이 많이 온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외지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본토 출...

  • 김상중 아저씨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불교 신자라고 해야 하지만 특별히 절에 다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며 기일에는 기제사를 지낸다. 아직까지 합제사를 하지는 않는다. 기제사는 고조까지 모시며, 시제는 10월에 날을 정해서 모신다. 이제 산에 나무가 많아지면서 산소 위치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자식 세대에는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시제를 모실 때 자식들을 데리고 다닌다. 산소...

  • 김상중 아저씨의 사람 관계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달궁에는 두 가지 공식 조직이 있다. 하나는 마을 총회이며 다른 하나는 달궁 상가 번영회이다. 마을은 이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다. 이장은 마을 토박이들이 맡는 경향이 강하며 이주한 지 10년 정도 지나면 이장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을 총회를 하면 놀기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한다. 마을에 상포계도 있다. 마을에서 상이 나면 밤을 새는 일이나 장지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 상포계의...

  • 주정례 아주머니 살아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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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정례 아주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친정은 여수다.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하나 있다. 결혼은 25살에 했다. 여수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가 먼저 덕동으로 시집을 왔다. 그 언니가 덕동에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중매를 섰다. 그 사람은 언니 남편과 친구였다. 중매를 해서 선을 보는데 딱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결혼해서 덕동에 오니 여수와는 사는 것이 너무 달랐다. 그래도 이렇...

  • 주정례 아주머니의 집과 음식살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살고 있다. 시아버지가 차남이어서 이미 분가해 있었지만 신랑은 장남이어서 시부모와 함께 산 것이다. 살아가면서 집을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집은 민박과 식당을 하기 위하여 새로 지었다. 식당을 하고 있어서 일상 음식이란 게 특별히 없다.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덕동의 경우 산채와 토종닭이 가장 중요한 메뉴이다. 산채는 대부...

  • 주정례 아주머니의 종교신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절에 다닌다. 그러나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꿈자리가 사납거나 몸이 좋지 않으면 스님들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미안해서 자주 물어볼 수는 없고 혼자서 방침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꿈자리가 사나울 때는 손에 소금을 잡은 뒤 머리 위에 세 번 돌리고 침을 세 번 뱉고 난 뒤 소금을 집어 던져버린다. 그러면 꿈자리 사나운 것이나 기분이 안 좋은 것은 해결된다. 차례는 지낸다. 사람이...

  • 주정례 아주머니의 놀이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시간이 나면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동서네 집에 가서 동서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여가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여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나물을 다듬는다든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식당을 하니까 늘 바쁘다. 혼자만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 바쁘다. 그러니 평소에는 모여 논다거나 할 수 없다. 남편은 동갑계를 한다. 이 모임은 두 달마다 모인다. 모일 때마다 회비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