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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순 아주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T02028
한자 김점순 아주머니의 家族과 親戚 이야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집필자 이민우

출생과 청년기

1955년 5월 8일 생으로 만 52세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꾸신 특별한 태몽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내가 우리 아들들을 낳을 때 모두 냇가에서 대사리(다슬기) 잡는 꿈을 꾸었다.

친정 아버지는 광산 김씨로 장수 태생이시며, 어머니는 고씨로 원래 남원 태생이시다. 부모님은 3남 2녀를 두셨는데 위로 남자 셋이 모두 오빠고 나는 여자 중에서 장녀이다. 모두 결혼해서 주로 수원에서 살고 오빠 한 분만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남편은 남원 양씨로 남원 태생이며 나보다 다섯 살 위다. 친정 부모님은 장수군 천천면 월곡리에 사셨는데,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지시니까 큰오빠가 수원에서 모시다가 약 10여 년 전에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혼인과 시집살이

운수 사업을 하던 남편과 23세에 결혼하여 남원에서 살아오고 있다. 결혼은 연애 결혼을 했는데, 그 당시 우리 동네(장수군 천천면 월곡리)에는 차돌 광산이 있어서 운수업을 하던 남편은 사업상 우리 동네에 자주 왔었다. 처음 남편을 만난 때는 18세이었을 때인데, 그 이후로 6년간을 사귀다가 23세에 결혼한 것이다. 결혼 당시 양가 부모의 반대는 없었으며 축복 속에서 결혼하였다. 결혼식은 남원에 있는 예식장에서 했으며, 결혼 주례는 예식장에서 내세운 주례사가 했다. 신혼여행은 구례 화엄사, 광주 동물원 등에 1박2일 일정으로 갔었다. 가족 계획은 그 당시에 정부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 계획 캠페인도 있었고 해서 둘만 낳기로 계획을 세웠으며 실제로도 둘만 낳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부터 소를 키우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3마리로 시작하여 5년 정도 내가 키웠다. 그러던 중 약 10년 전에 남편이 운수업을 그만 두고 이를 이어 받아 소를 키워오고 있는데, 현재는 약 50-60마리를 키우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소 키우는 일을 맡기고, 약 8년 전부터 향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고, 결혼 후 23년간 시어머니를 모셔왔다. 시어머니는 약 6년 전에 돌아가셨다.

남편의 친척들은 주로 남원과 서울에 살고 있다. 친척들과는 주로 명절이나, 결혼 등 집안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교류하고 있다.

자녀 양육과 출가

장수군 천천면에서 23세까지 살다가 남원 금동으로 시집 와서 지내다가, 약 15년 전부터 향교동으로 이사 와서 계속 이 곳에서 살고 있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은 57세이며 큰아들은 30세, 막내아들은 27세이다. 아들들은 모두 미혼이어서 현재 같이 살고 있다. 막내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큰아들은 취직 공부하고 있다.

통과의례

아이들의 임신 시의 태몽은 냇가에서 대사리를 잡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출산했으며, 산후 조리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했다. 아이들 백일이나 돌잔치는 친척과 친지들을 초대하여 집에서 했다. 생일잔치도 친인척을 초대하여 집에서 했다.

옛날에는 애기가 태어나면 배내옷을 사 입혔다. 배내옷이란 흰색의 면(전이라고 부름)으로 만든 윗도리만으로 구성된 간편한 옷으로 가운데가 터져 있어 옷을 입히기에 아주 편하게 만들어진 옷을 말한다. 옛날에 배내옷을 대학교 시험 볼 때 속옷 속에 넣고 가면 합격한다는 설이 있어 나도 잘 간직하고 있었다. 후에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임신이나 출산 시에 특별히 피하는 음식이나 치료나 보양을 위해 먹는 특별한 음식은 따로 없었고 아무 것이나 잘 먹는 편이었다. 그리고 회갑이나 고희연 혹은 혼례 등의 예식 행사에 참여시에는 한복을 입었다. 남자들은 제례나 명절 등에 주로 정장을 하였다. 수의는 필히 윤달에 사 놓는다는 말이 있다.

친정 어머니의 장례식은 집에서 치렀으며, 시어머니의 장례식은 남원의료원에서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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