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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자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T02017
한자 김진자 할머니의 家族과 親戚 이야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집필자 이민우

출생과 청년기

나는 1940년 8월 21일 생으로 만 66세이고 경주 김씨이다. 친정 아버지께서 임실군 삼계면 면장을 12년 동안 하시다가 전남 광주 구청으로 근무지가 옮겨짐에 따라, 광주에서 중앙국민학교를 다녔다. 중앙국민학교를 다니던 중, 2학년 때 6·25가 발발하여 급히 고향인 임실로 피하게 되는 바람에 중앙국민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임실로 와서는 임실 삼계국민학교로 옮겨서 여기에서 30회로 졸업하게 되었다. 수복 후 다시 광주로 가서 광주여중을 다녔다. 그 뒤 광주여고에 입학했으나, 사정상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합격한 뒤 전주교육청 산하의 사회교육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친정집은 만석꾼이었는데 6·25 때문에 그 좋던 살림이 폭격을 받아 폭싹하였다. 인공만 아니었으면 아주 잘 살았을 것이다. 임실 삼계 부근에서 호주기(호주산 전투기) 세 대가 인민군으로 오인하여 양민들을 폭격하기도 하였다.

친정 아버지는 김병기 씨로 경주 김씨이시고, 친정 어머니는 권정숙 씨로 순창 가장 출신이시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슬하에 2남 4녀를 두셨는데 나는 그 중 장녀이다.

혼인과 시집살이

혼인은 내가 27세 때, 그리고 남편이 34세 때 중매로 만나서 했다. 결혼식은 전주봉래원 예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주례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식을 올렸다. 그 당시엔 농촌에서는 결혼식을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은 남편이 현직 선생님이어서 호강한 편이다. 지금 그 때 드레스를 입고 찍은 결혼 사진을 보면 너무나 멋지다. 그래서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이 옛날 추억 사진을 가져오라고 해서 이 때 찍은 사진을 제출했다. 신혼여행은 온양온천으로 2박 3일간 다녀왔다. 남편은 남원 윤씨로 현재 74세이다.

1966년에 전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이 경기도 양평에서 초등학교 교직 생활을 시작한 관계로 거기에 가서 살다가, 남편이 1968년에 고향인 남원의 대강초등학교로 발령이 나서 남편을 따라 남원으로 이사 왔다. 그 뒤 남편이 남원초등학교로 옮겨서 1971년에 향교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남편이 남원 태생이기 때문에 친척들은 주로 남원에 거주하고 있다.

자녀 양육과 출가

가족으로는 남편과 1남 3녀가 있다. 자녀들의 돌잔치 상에는 어머님께서 쌀, 대추, 밤 등과 무병장수하라고 실타래를 올려놓았다. 만약 아이가 쌀을 잡는다면 이는 잘 살 것이라는 뜻이고 실타래를 잡는다면 수명이 길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대추는 우리 몸에 좋고 해독 작용도 하는 등 건강에 두루 좋다. 우리 아이들은 돌잔치 때 주로 연필을 잡았다. 생일 잔치에는 형제나 사촌 등을 초대하였다.

장녀는 42세, 차녀는 38세, 아들은 35세, 그리고 막내딸은 30세이다. 딸들은 모두 출가하여 서울에 살고 있으며, 아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늙어서 특별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자녀들의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이 모두 잘 살아서 우리 부부 각각에게 용돈을 따로 붙여준다. 남편에게는 20일, 나에게는 31일 날 용돈을 붙여준다. 자녀들이 너무 잘해 줘서 무척 행복한 편이다.

통과의례

임신 때의 태몽으로 물고기 꿈을 꾸었다. 출산은 주로 집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도움을 받아 했으며 막내는 보건소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했다. 아이들이 출생했을 때는 배내옷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입혔다. 산후 조리시에는 대구, 문어, 전복 등의 말린 것을 미역을 넣어 끓인 물을 먹었다. 가족 계획은 특별히 없었다.

옛날에 여자들은 모시를 입었다. 나는 특히 옥색을 좋아해서 모시에 옥색 물을 직접 들여서 즐겨 입었다. 그리고 혼례 시에는 드레스를 입었다. 수의는 삼베를 집에서 직접 짜서 만들었다. 수의는 윤달에 마련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회갑연과 고희연 때는 한복을 입었다. 장례 시에는 검은색의 정장 차림을 한다.

그리고 임신 시에는 어머님께서 상어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아마 상어 껍질이 꺼끌꺼끌하다고 해서 금기시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상어를 싫어한다. 그러나 남편은 시제만 지내고 나면 상어를 좋아해서 잘 드신다. 또한 돼지, 똥 꿈을 꾸면 좋은 꿈으로 여겼고 꿈 속에서 고양이를 본다든지, 산을 헤맨다든지 하면 나쁜 꿈으로 여겼다.

고희연은 자녀들과 함께 서울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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