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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순 할머니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T05015
한자 박복순 할머니의 家族과 親戚 이야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마을
집필자 김창민

출생과 청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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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순 할머니

본인의 친정은 덕동이다. 1936년에 6남매중 4째로 태어났으며 외동딸이었다.

혼인과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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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마을 전경

현재 덕동에서 살고 있다. 시집은 덕동에서만 7대째 살고 있는 집안이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정 숙모가 중매를 서서 15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던 해는 여순반란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소개를 당하던 해였다. 당시 친정 식구들은 산내로 소개를 갔다. 그러나 낮에는 마을에 와서 군인들이 지키는 동안 농사를 하고 저녁이 되면 모두 산내로 내려가곤 했다. 하루는 밭을 매고 오니 좋은 남자가 있다면서 결혼을 하라고 했다. 남자가 덕동 사람인 것을 알고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있다. 당시에는 산골에 살기 싫어 농촌이나 도시에 사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집에서 거의 끌고가다시피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큰 애기 공출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큰 애기 데려다가 기름 짠다’는 말도 있었다. 아무튼 나이든 처녀는 무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있어서 조금만 나이가 들면 시집을 보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결혼하고 말았다.

결혼해서는 바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요즘 말로 시집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차남이었지만 맏동서가 시부모와 같이 살려고 하지 않아서 본인이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니가 시키는대로 뭐든 다 하니까 시어머니가 나를 좋게 봤다. 시어머니는 성품이 좋아서 시집살이가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살기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이 집에서 살고 있다.

자녀 양육과 출가

결혼은 15살에 했지만 첫 아이는 22살에 나았다. 그 사이에 애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를 낳을 때는 시어머니가 산파 역할을 하였다. 이후 총 5남 5녀를 낳았다. 생기는대로 낳던 시절이라 낳다 보니 그렇게 많이 낳게 되었다. 그 중 아들 둘은 도중에 사망을 하였고 결국 3남 5녀가 남았다.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아들이 제일 큰 아들이다.

산골에서 어렵게 살다보니 자녀들 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못하였다. 첫째부터 6째까지는 초등학교만 졸업시켰다. 막내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막내딸은 초급대학을 마쳤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남이 동생들 기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자식들 보기에 미안하다.

통과의례

통과의례로서 별 의미가 있는 것은 없다. 생일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회갑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옛날에는 오래 살지 못해서 회갑이 되면 잔치를 하였지만 요즘은 회갑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회갑을 하는 것이 우습게 되었다. 사는 것이 좋아지면서 그런 번거로운 절차들은 없어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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