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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한 할아버지가 말하는 향교동 구암마을의 역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T02014
한자 김종한 할아버지가 말하는 鄕校洞 구암마을의 歷史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집필자 이민우

원래 향교리는 4개의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을 비롯하여 우리 마을 위쪽 마을이 향교마을, 아래쪽 마을이 장승마을[장승백이], 그리고 그 아래 마을이 현재 사직단이 있는 곳인 용정마을이지요. 이것이 옛날로 말하면 소위 향교리, 지금의 향교동이에요. 다른 마을은 차치하고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이 왜 ‘구암’이냐 하면, 풍수지리학상 금구몰리 즉, 거북이가 땅 속에 묻혀 있는 형국인데 이를 풍수지리학상 금구몰리라고 해요. 따라서 구암마을이라고 부르지요. 많은 남원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구등바우’라고 부르지만 이는 잘못 알고 하는 소리예요."

"구암마을 앞에 천이 있는데 그 위의 다리 이름이 남원교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남원지를 근거로 이 천의 이름을 찾아봤더니 축천(畜川)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따라서 다리 이름을 축천교라고 해야 되는데, 남원교라고 명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해서 축천교라고 변경한 것이 몇 년 안 되지요. 옛날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 건천이어서 백사장이었구요. 구암마을 앞에는 축천(丑川)이라 불리는 내(川)가 흐르고 있고 마을 뒤에는 남원 KBS 방송국이 위치하고 있는 동산이 있어요. 마을 이름은 풍수지리학상 ‘금구몰리’의 형상 때문에 구암마을이라고 불리게 된 것인데, 우리 마을 이름이 구등마을이라고 잘못 불린 이유가 이런 듯해요. 우리 마을 앞 내의 이름이 축천이라고 불렸었는데 여기에 ‘축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축천정을 ‘축천대...축천대...’ 라고 반복하여 부르다가 ‘죽전대’로 불렸듯이, 구암마을을 ‘구암...구암...’ 하고 반복적으로 부르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구등바우’로 된 게지요. 그래서 면장과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각 마을의 전설과 마을의 명칭에 대한 유래를 물으니까, 우리 마을은 김해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한양을 가다가 이곳에서 쉬게 되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경치가 일품이어서 한양가는 것을 포기하고 정착한 후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 우리 마을의 역사 즉, 나로부터 7대조 할아버지까지의 200년간의 집성촌의 역사를 기술하고 보첩(譜牒)을 첨부해서 제시하면서 ‘구등바우’를 고쳐서 ‘구암마을’이라고 명칭을 바꾸었지요."

김종한 할아버지가 들려 준 구암마을의 형성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나의 7세 조고이신 ‘인’자 ‘성’자 할아버지가 지금은 장수군에 속해 있지만 옛날에는 남원군 장수면 월곡 마을에서 여기로 이사와서 아들 삼형제를 두셨는데, 그 중 장남이신 ‘한’자 ‘경’자 할아버지는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로 이사가셨고 차남이신 ‘한’자 ‘채’자 할아버지와 셋째이신 ‘한’자 ‘중’자 할아버지께서 구암마을에 정착하시어 집성촌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지요. 얼마 전까지 약 85호가 구암마을에 살고 있었구요. 그때 당시는 여기에서 전부 농사를 짓고 사셨고,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것은 안하고 순 농사만 지었어요. 학교도 그 전에는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그래서 전부 학교도 안다니고 농사만 지었지요. 마을 앞 개울이 건답으로 되어 있어서 비가 오면 물이 좀 내려가고 비가 안 오면 물이 안내려가 백사장이 됐구요. 그런데 여름에는 수양버들이 크게 뻗어 있어 여기에 그네도 매고 춘향전이니 심청전 등의 책도 읽고 그랬어요. 또한 여기에 소를 한 60여 마리를 기르면서 아주 유명하기도 했었지요."

"그 당시 나의 아저씨 항렬 되시는 분하고 나하고 명색이 눈을 떠서 국민학교를 나와 남원 농협학교를 각각 2기 및 4기로 졸업했지요. 그때는 3년제였어요. 그 양반은 지금 돌아가셨고, 내가 농협학교 다닐 때 부모님뿐만 아니라 증조부님, 증조모님까지도 다 살아 계셨어요."

"김해 김씨 마을 출신으로 특별히 중요한 인물은 잘 생각나지 않으나, 전주 사범대학 출신으로서 교육장을 지낸 김양곤 씨와 남원 춘향선양회 회장, 지역사회발전회장 등을 지낸 김상곤 씨, 그리고 남원 인월요업 대표인 김종옥 씨 정도가 얼핏 떠오릅니다."

마을에 유명한 곳으로는 남원향교가 바로 옆 마을인 향교마을에 있고, 만인의총과 남원산성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마을에서 유명한 생산물은 없고 논농사, 밭농사가 주업이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시내로 나갈 때 교통편은 별 게 없었고 걸어 다녔다. 지금은 자전거 값이 쌀 1가마면 좋은 것으로 살 수 있지만 옛날에는 3가마 값과 비슷했으므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부자에 속했다. 과거 국민학교 다닐 때는 고무신이 닳을까봐 손으로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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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8 한자항목명 수정 한자항목명 김종한 할아버지가 말하는 鄕敎洞 구암마을의 歷史 ->한자항목명 김종한 할아버지가 말하는 鄕校洞 구암마을의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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