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2056
한자 角汗峙
이칭/별칭 가근동현(加斤洞峴),각근치(角斤峙),각척치(角斥峙),가척치(加斥峙),검각치,각한재(角汗岾)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흥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각한치 - 강원도 영월군
해당 지역 소재지 각한치 -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지도보기
성격 고개

[정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서 연당리로 넘어가는 고개.

[개설]

각한치(角汗峙)검각산(劍閣山) 줄기에 있는, 영월의 관문에 해당하는 고개이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연당리를 잇는 높은 고개이며, 서강 후진나루터 근처에 있다. 각한치의 큰 소나무숲은 ‘검각창송(劍閣蒼松)’이라 하여 영월 8경(寧越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각한치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고개이다. 예전에 한양에서 영월로 오는 행인들과 제천 우시장으로 가는 장사꾼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각한치 고갯마루 돌탑 옆에 큰 느티나무 당목과 서낭당이 있었는데, 각한치를 넘는 사람들이 돌탑을 쌓고 여행의 안녕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 서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건널 때는 고사전(告祀錢)이라는 돈을 추렴하였다. 각한치마을 사람들은 고사전으로 매년 각한치 서낭당에 제사를 지낸 후, 음력 2월 영등 할머니 오신 날에 주과포(酒果脯)를 준비하고 나룻배에 실을 감고 뱃고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미신 타파 정책의 일환으로 남면 면사무소 직원들이 각한치 서낭당을 불태웠다. 지금의 각한치는 일제 강점기 때 다시 만들어졌고, 본래의 고개는 ‘옛 각한치’라 하여 위다랭이골 위쪽 계곡 옆으로 길이 있었다.

[명칭 유래]

각한치는 예전에 제천 우시장으로 가는 소 장수들이 소를 몰고 넘어 다녔는데, 소뿔에 땀이 날 정도로 고개가 높고 험해서 ‘각한치’라 하였다.

[현황]

각한치 아래쪽 샘터 부근에 마구간을 갖추어 놓고 술과 음식을 파는 마방집이 있어 행인이나 소 장수들이 쉬어 갔다. 마방집이 있던 자리를 지금도 마방터라 부르고 있다. 2021년 현재는 각한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없고 간혹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각한치마을에는 5가구에 주민 6명이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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