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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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峙 |
이칭/별칭 | 무덤재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전구간 | 무덤치 - 강원도 영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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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무덤치 -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
성격 | 고개 |
[정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술론과 밝은밭 사이에 있는 고개.
[개설]
무덤치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蒼院里) 술론[水沓][수론]과 밝은밭[明田] 사이의 고개이다. 술론마을 사람들은 무덤치를 넘어 초로봉 아래에 있는 밝은밭으로 볼일을 보러 다녔다.
무덤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남면 창원리 초롱봉 아래에 작은 마을인 술론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아기장수는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걸어 다녔고, 시렁에 올라가 놀았다. 아기장수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라에서는 역적으로 성장할 것이 두려워 큰 연자 맷돌을 올려놓고 아기장수의 겨드랑이에 난 날개를 인두로 태워서 죽였다. 그러자 아기장수를 기다리던 용마가 사흘 동안 밤낮으로 초롱봉[草露峰]에서 울부짖다가 죽었다. 이후 술론 마을 사람들이 무덤치에 큰 용마의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치 인근의 초로봉[570m] 동북쪽 해발 400m 지점에 있는 창령사 터에서 2001년에 500 나한상 328점이 발굴되어 춘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명칭 유래]
무덤치는 아기장수를 찾지 못한 용마가 초로봉에서 울부짖다가 죽자, 무덤치에 큰 무덤을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무덤재라고도 한다.
[현황]
무덤치는 2021년 현재 잡목과 숲이 우거져서 사람이 다닐 수 없고 용마 무덤의 형태 또한 찾을 수 없다. 무덤치마을은 8가구의 화전민이 살았던 작은 동네인데, 1970년대 정부의 화전 정리 사업으로 폐촌이 되었다. 일부 주민이 초롱봉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인 술론으로 이주하였다. 술론에는 1996년에 7가구가 살았으나, 2021년 현재는 4가구로 줄었다. 약 20여 마지기 논이 있으나 수렁논이어서 모두 밭으로 경지정리를 하여 고추, 옥수수, 간자, 다래나무 등을 재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