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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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絶峙 |
이칭/별칭 | 꽃꺾이재,화절령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해당 지역 소재지 | 화절치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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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개 |
높이 | 1,000m |
길이 | 약 10㎞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에서 정선군 사북읍으로 이어지는 고개.
[개설]
화절치(花絶峙)는 직동리 북동쪽, 백운산(白雲山)[1,426m] 자락에 있는 높은 고개이다. 예부터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에서 정선으로 질러가던 고개이며, 봄에 진달래와 철쭉꽃이 많아 사람들이 꽃을 꺾어 갔으므로 ‘꽃꺾이재’라고 불렀다. 당시 농촌에서는 나무꾼들이 여러 종류의 꽃을 먼저 꺾는 사람이 이기는 꽃 꺾기 내기를 하였다. 내기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나무 1단을 해 주었다.
화절치 정상에 오르면 하이원카지노가 한눈에 보이고 화절치를 거쳐 화절평과 골말을 지나 사북(舍北)으로 갈 수 있었다. 탄광이 활황기였던 1970년대 무연탄을 운반하던 화절치와 새비재를 잇는 운탄(運炭) 도로는 현재 임산도로와 산악자전거 하이킹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1911년에 조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화절치가 ‘화절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절치는 산이 높아 옛날에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많았고 지금도 곳곳에 호식총이 남아 있다.
[명칭 유래]
예전에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많이 피어 사람들이 꽃을 꺾었다 하여 꽃꺾이재라 하였으며, 한자식 표기인 화절치라 불렀다.
[자연환경]
화절치는 해발 1,000m의 높은 고개이며, 길이는 약 10㎞이다.
[현황]
백운산의 높은 산줄기가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화절치마을은 화절치에 탄광 갱도가 있을 때는 30여 가구가 살았다. 화절치마을은 김해김씨의 집성촌이며, 넓은 산자락에는 고랭지 채소와 콩, 옥수수, 고추 등을 재배하였다. 1960년도 보릿고개 때는 잡곡을 지고 반나절을 걸어 정선 함백장에 내다 팔았다.
화절치에서 막골로 흐르는 개울에서 1950년대까지 3㎝ 크기의 푸른 민물 김이 자랐다. 특히 샛바람[동풍]이 많이 부는 해는 9~10월에 많은 양을 채취하여 채에 말렸다가 먹으면 바다 김과 똑같은 맛이 났다고 한다.
2021년 현재는 화절치마을에 10여 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인근 직동리는 영담(影潭) 김어수(金魚水)[1905~1985] 시인의 출생지이며, 김어수문학공원과 김어수시인문학전시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