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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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음역 | jusaenghwal |
영어의미역 | hous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이한길 |
[정의]
강릉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개설]
강릉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였다. 이를 증명하는 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이 지금도 출토되고 있다. 강릉은 영동 지방의 문물의 중심지로서 다른 곳에 비해 상류가옥이 많은 편이다. 이런 전통가옥들이 지금도 꽤 여러 개가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근·현대로 내려오면서 현대적 건축양식인 아파트, 단독주택 등이 활성화되고 있다.
[역사와 변천]
1. 주거의 역사
강릉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최근 들어 이에 관한 유물들이 많이 발견이 되고 있다. 1915년 강릉 읍성지에서 토기편이 발견된 이후 1970년대에 연곡의 영진리와 사천 가둔지에서 다량의 빗살무늬 토기편과 돌도끼 등이 채집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하여 지변동, 안현동, 안인리, 하시동리, 판교리, 송림리, 금진리, 초당동 등 많은 지역에서 다량의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강릉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흔히 문명의 역사를 강의 역사라 하듯이, 강릉도 인근에 큰 강을 끼고 있어서 사람들이 선사시대부터 모여 살면서 문명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남대천, 군선강, 연곡천, 사천 등 여러 개의 하천이 태백산맥으로부터 발원하여 동해로 빠져나간다. 이 하천을 끼고 강릉의 주거생활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의 유적도 이른 시기인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적들이 골고루 발굴되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이 꾸준히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남동에서 발굴된 집터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데, 남북 5m, 동서7.3m의 장방형 주거지로써 돌을 쌓아 원형으로 만든 화덕과 기둥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을 사용하여 음식과 난방을 해결했음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움집형태의 주거지는 구조와 기능에서 점차 발달하여 지상주거로 변화되며 고구려에서 온돌이 발생하여 이것이 남하하여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 전통가옥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은 평면형식으로 보아 홑집과 겹집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배치형태에 따라 일(一)자, 이(二)자, 기역(ㄱ)자, 디귿(ㄷ)자, 미음(ㅁ)자 형태로 분류된다. 이러한 평면형식과 형태는 그 지역의 자연적 조건과 풍습에 따라 이루어지는 각 지방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을 분류하면 함경도지방형, 평안도지방형, 중부지방형, 남부지방형, 제주지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그 지방의 지형, 기후, 기상 등 자연조건에 따른 요소와 민속신앙, 풍수 및 음양오행사상 등의 사회적 관습과 거주자의 전통적 지식과 관습에 의한 건축문화의 전파요소와 경제적 능력과 신분, 계급에 의한 요소에 의해 구분한 것이다.
강릉 지방의 전통가옥은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한 함경도지방형의 정주간이 없는 기역자 겹집이 주류라 하지만, 그러나 실제 상류주택은 대청이 있는 홑집 형태도 있고, 또한 겹집과 홑집의 혼합형태의 가옥도 있으며, 겹집도 영동 산간지역에서는 '田'자형뿐만 아니라 사방형 형태의 세 겹으로 된 두렁집도 많았으며, '田'자형도 부엌과 외양간이 덧붙여져 전체적으로 기역자 형 겹집이 많았다. 따라서 가옥의 구조는 지역별 특징만이 아니라 경제수준과 문화수준, 위도 등을 반영하는 복합적인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강릉 지방의 상류주택은 우리나라 전역에서와 같이 서민주택에서 볼 수 있는 간(間)에 의한 기능분할을 하지 않고 채에 의한 구분을 행하여 사랑채, 별당, 안채 등으로 구분되어지고 있으며 엄격한 남녀공간의 구분, 공간의 위계성 등을 나타내고 있다.
건축재료에 있어서도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굴피와 너와로 지붕을 덮은 귀틀집이 최근까지 존재하였으나 지금은 볼 수가 없다. 건축평면은 함경도지방형을 따르고 있으며 주생활은 산간지역의 특수성에 따른 농업의 변화로 의식주에 영향을 주었다.
강릉의 대표적인 전통가옥 양식으로 꼽는 것이 선교장이다.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선교장은 경포호의 둘레가 오늘날과 달리 20리, 30리였었을 때 배를 타고 다녔다고 하여 ‘배다리’란 별칭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17세기초 효령대군 11세손 무경 이내번이 지었는데, 안채와 동별당, 서별당, 활래정, 열화당, 행랑채, 창고, 기타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일부 건물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조선조 상류가옥의 전통을 그대로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 강릉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으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오죽헌이 있다.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한 오죽헌은 최응현[1428-1507]의 고택이지만, 율곡 이이의 탄생지로서 더욱 유명한 곳인데, 주택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단층팔작지붕의 이익공양식으로 지어졌다.
3. 근대의 주거양식
조선시대 말기까지의 건축은 큰 변화 없는 목구조양식으로서 그 지방의 독특한 평면을 유지하며 발전하여 왔으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근대건축의 도입으로 평면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주생활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또한 도로의 신설, 교통기관의 발달, 신학문의 도입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변혁이 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조국광복을 맞으면서 더욱 크게 변화하였다.
「국역 강릉생활상태조사」를 보면 일제강점기 때 민가는 미음(ㅁ)자 형이므로 여러 개의 방에 온돌을 대체로 깔고 있었다. 우사, 화장실, 퇴비창고와 같은 부속건물은 별도의 건물로 두고 있다. 중류 이상의 민가에서는 담이나 울타리를 돌린 경우가 많고 또 마당에 나무를 심은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강릉 지방의 특색으로 보았다. 민가는 대체로 초가집이 많지만 양반가가 많기에 기와집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집이 늘어선 모양도 부락을 이루며 가지런히 형성되어 있고, 어촌에서는 양철지붕, 산간에서는 판자 혹은 나무껍질을 소재로 한 지붕도 많았다. 나무껍질을 소재로 한 집이란 굴피집을 이르는 말이다.
4. 현대의 건축
철근과 시멘트, 모래, 자갈로 만들어지는 근대건축물은 라멘조 건축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저층의 주거건축을 고층으로 만들어갔다. 또 종래의 직선적 요소에서 곡선적 요소의 도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것은 외관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건축물을 가능하게 하였다. 한편 산업의 발달에 따른 인구의 집중으로 도시의 형성을 가져와 도시주거와 농촌주거형으로의 구분을 가져오며 1970년대부터는 도시의 지가상승과 인구의 집중화로 주거의 어려움을 가속화시켜 아파트, 연립주택이라는 고층주거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핵가족화, 생활의 편리성 등의 장점과 인간과 자연생태계와의 유리라는 단점이 있으나 단독주택에 비교하여 생활의 편리성 때문에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산업화로 인한 탈농촌화 바람과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동시에 불었던 1970년대에 농촌주택으로 많이 보급된 것이 박공형 주택이었다. 정면에서 보아 ‘朴’ 자와 비슷한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도 농촌에 가면 그 당시에 보급된 박공형 주택을 많이 볼 수 있다. 슬라브집도 1980년대에 많이 보급되었다. 개량형 양옥집으로 보이는 주택인데, 벽돌로 벽채와 담을 한 건축물이다.
도시에 있어서 아파트 주거문화의 증가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나 생활수준의 향상, 문화의 질적 향상요구,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인간본성에 의하여 어느 수준에서는 다시 저층화를 선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층화를 선호한다 할지라도 단층으로 건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2층이나 그 이상으로 건축할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 예로부터 가장 많이 살펴보는 것이 풍수지리다. 배산임수를 가장 좋은 명당으로 꼽았던 예전의 관념은 지금도 이어져 온다. 오늘날 대단위 아파트 단위를 분양할 때는 이와 더불어 근처의 학군, 교통망, 시장 등도 반드시 살펴야 하는 항목이 되었다.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강릉 지역의 주거환경에 대단한 변화가 발생했다. 교2동 지역이 개발되었다. 이 지역은 본래 야산이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주거지역으로 개발하기 위해 야산을 평토하여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편의시설들을 유치하였다. 그러나 강릉 지역의 인구는 증가하지 않으면서도 주거시설만 늘어나는 바람에 초창기 이 지역의 아파트는 공실률이 상당하였으며, 더불어 편의시설 지역도 매매가 되지 않아 택지 조성 3년여가 지나서야 비로소 편의시설들을 짓기 시작하여 이른바 상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상전이 벽해가 된다고 이 지역 상가들이 초창기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것에 비하여 지금은 백조가 되어 금싸라기 땅이 되어버렸다.
2018 평창강릉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이후 강릉 지역 곳곳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주요한 변화는 두 곳인데, 하나는 회산 지역의 아파트단지화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 상가 개발이다. 2010년만 해도 경포에서 주문진에 이르는 바닷가 길은 미개발로서 차량이 겨우 2대가 교호하며 지나갈 정도였다. 일부는 비포장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도로가 모두 포장되고 부분적으로는 4차전으로 확장되었고, 사천진 아래의 공동묘지들도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이 지역에 우후죽순처럼 커피숍들이 들어서면서 지가상승을 유도하였다. 이 지역의 커피솝들의 건축물들은 현대적 개념의 건축물들로 조형미 또한 빼어나 관광강릉의 종착지인 경포대 인근을 휴양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산 지역은 올림픽선수촌아파트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 접근망이 잘 발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신 주거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한국의 대표 건설회사들이 앞다투어 아파트를 짓고 있다. 한국주택공사 역시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아파트를 지어 새로운 주거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