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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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葆眞堂 |
영어음역 | Bojindang Hal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66번지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호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6월 2일 - 보진당,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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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보진당,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성격 | 별당 |
양식 | 단층 팔작기와지붕 |
건립시기/일시 | 1500년대 초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66번지 |
문화재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 권사균(權士均)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
[개설]
권사균의 자는 공보(公父), 호는 보진당(葆眞堂)이다. 권사균은 1484년(성종 15)에 태어났으며,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권사균은 학문과 문장이 사림들 가운데 뛰어나 중종반정 다음 해인 1506년(중종 1)에 사마양시에 합격하였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추중(推重)되었으며, 정사룡(鄭士龍), 신광한(申光漢), 박광우(朴光佑), 주세붕(周世鵬) 등과 교류하였다. 강릉으로 귀향한 후 강릉향교 교수직을 맡아 후진을 양성하였고, 선조 때 통정대부 호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매년 음력 3월 20일에 제향을 올린다.
[명칭유래]
보진이란 ‘마음이 자세하고 한결같아 공부에 전념하여 천심(天心) 즉 도심(道心)의 진리를 회복하며 그 진리를 효우의 근본으로 삼고 자손훈계(子孫訓戒)로 남기고 행동의 모범으로 삼는다’는 뜻에서 명칭이 유래했다.
[건립경위]
권사균은 빈객 접대와 후학 양성을 위해 1500년대 초 보진당을 지었다. 현재 건물은 1867년(고종 4)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위치]
강릉시 옥천동 66번지에 있다. 이곳에는 수령 500년 이상 된 강원도 기념물 제64호인 강릉옥천동은행나무가 있으며,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변천]
1867년(고종 4)에 강릉부의 큰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종인들이 1875년에 중건할 것을 협의하였다. 이듬해인 1876년경에 종인들에 의해 재건축되기 시작하여 1878년에 완공되었다. 재건축 후 이곳은 종사(宗事)에 대한 협의처로 또 후손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형태]
보진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건축되었다. 전면에는 4분합 띠살문이 설치되었고, 측면은 두짝 여닫이 골판문으로 창호가 이루어져 입면 전체의 느낌이 창호에 의해 결정되는 듯하다. 넓은 규모의 평면에 걸맞게 함과 동시에 우람하게 보이려는 높은 입면 설정의 시도가 보이는데, 기단은 비교적 얕은 편이다. 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기둥마다 주련이 있으며, 내부는 우측에 방을 1칸 만들고 나머지 3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주위에 담장을 치고 당 뒤에는 재실을 관리할 수 있는 한옥이 있다.
[금석문]
채팽윤(蔡彭胤)의 "보진당도(葆眞堂圖)", 8세손 권세규(權世規)가 기술한 "동당록서(同堂錄序)", 9세손 권필교(權弼敎)가 쓴 축장기(築墻記)와 쌍행서(雙杏序), 9세손 권철교(權哲敎)가 쓴 기(記), 후손 권길상(權吉常)이 찬한 중수상량문(重建上樑文), 12세손 권수동(權秀東)이 쓴 중건중수전말(重建重修顚末), 13세손 권덕현(權悳顯)이 쓴 중건기사(重建記事), 14세손 권용식(權用軾)이 쓴 중수기(重修記)와 정사룡(鄭士龍), 신광한(申光漢), 박광우(朴光佑) 등이 지은 시문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보진당은 1984년 6월 2일에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