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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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水地理 |
영어음역 | pungsujiri |
영어의미역 | Pungsu / Feng Shu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김경추 |
[정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바탕삼아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風)은 기후와 풍토를, 물(水)은 물에 관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풍수의 기본 원리는 땅속에 살아 꿈틀대는 정기가 있어, 몸속의 피처럼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기를 타고난 사람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또 정기가 뭉친 곳(穴)에 집을 지으면 가운이 뻗쳐서 대대로 번창하며,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튼튼히 오래 유지되고, 조상의 무덤을 쓰면 위대한 인물이 줄줄이 태어난다고 한다. 집터나 마을터, 도읍터, 무덤자리의 좋고 나쁨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풍수는 흔히 개인의 집터에 관한 양택(陽宅) 풍수, 마을이나 도읍터에 관한 양기(陽氣) 풍수, 그리고 무덤 자리에 관한 음택(陰宅) 풍수로 나눈다.
[내용]
풍수에서는 물과 바람을 첫손으로 꼽는다. 물은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물질이고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며, 바람은 주거지 선정의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대륙성 기후대에 자리하여 겨울철 북극에서 휘몰아치는 매서운 서북풍이 사람은 물론 산천초목조차도 오그라들게 한다. 따라서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낀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가장 이상적인 터전으로 여겨왔다.
풍수지리라는 말을 처음 쓴 이는 중국 동진(東晋)의 곽박(郭璞)[276~324년]으로, 그는 『장서(葬書)』에서 “죽은 이는 정기를 타야 한다. 이것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머문다. 따라서 바람과 물을 이용해서 정기를 얻는 방법이 풍수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물을 얻어야 하고(得水), 둘째 바람을 가두어야 한다(藏風)”고 적었다. “죽은 이가 정기를 탄다”는 말은 땅속에 묻힌 사람은 정기를 더 많이 그리고 확실히 받으며 나아가 그 정기는 자손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 또는 친자감응론(親子感應論)이 그것이다.
풍수에서는 정기 넘치는 터를 찾는 방법으로 간룡법(看龍法), 장풍법(藏風法), 득수법(得水法), 정혈법(定穴法),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 따위를 든다.
간룡의 용은 산 또는 산맥을 가리킨다. 산의 웅장한 모습과 산맥의 유장한 흐름이 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산맥은 산에 감추어진 정기가 흘러 다니는 통로로서 간룡은 그 좋고 나쁨을 가리는 법이다. 이 땅의 모든 산은 할애비산(太祖山)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그 흐름이 깨끗하고 씩씩하며 의젓한 것을 으뜸으로 친다. 우리의 할애비산은 백두산이고 중국의 그것은 곤륜산이다.
장풍법은 바람을 타고 흘러 다니는 정기를 잡아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방에 산[사(砂)]이 둘러 있어야 하는데, 이른바 사신사(四神砂)라 하여 뒤의 거북(玄武), 앞의 새(朱雀), 왼쪽의 용(靑龍), 오른쪽의 범(白虎)이 있어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거북으로 이를 주산(主山)이라 일컫는다. 거북과 새는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주인과 나그네로 여긴다. 그리고 용과 범은 좌우에 둘러서서 이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득수법은 물을 얻는 방법이다. 땅속의 기운은 물줄기를 타고 옮겨 다니므로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기가 있다고 믿는다. 혈 앞으로 흘러든 물은 깨끗할수록 좋으며 한동안 머물다가 천천히 빠져 나가야 한다. 풍수에서는 용을 양(陽), 범을 음(陰)으로 여기며 이에 따라 용을 끼고 흐르는 물은 양수, 범을 끼고 흐르는 물은 음수라 이른다. 이 두 물이 만나 합치는 데가 수구(水口)로서 정기는 이곳에서 더욱 순화, 보강된다.
정혈법은 정기가 뭉쳐 있는 데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앞의 세 가지는 모두 이를 위한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기가 뭉친 곳을 정확하게 잡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므로 정혈법이야말로 어려운 방법이다. 무덤자리와 달리, 좋은 집터는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유능한 풍수가라 할지라도 마음의 눈이 웬만큼 밝지 않고서는 그 자리를 짚어 내기가 지극히 어렵다. 오늘날 혈을 찾지 못한 명당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형국(形局)’이라는 말은 산의 모양이나 물의 흐름 따위를 동식물이나 사람 또는 물질에 비겨 표현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풍수의 이론은 이 형국에 의해서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산 모양이나 물 흐름이 깨끗하며 의젓하고 보기 좋은 데에서는 정기가 넘치고, 사납고 그늘지고 급한 곳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나며, 특정한 형국을 이룬 곳에서는 특정한 복이 뒤따른다고 한다.
집터 풍수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탈해왕조」에 처음 나타나는데, 어린 탈해가 두 종과 함께 토함산에 올라가 이레 동안 성 안의 좋은 집터를 찾았다는 내용이다. 『고려사(高麗史)』 권 28에는 집 짓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신하가 왕에게 간언하는데 “산이 드물면 높은 집(高居)을 짓고 산이 많으면 낮은 집(平居)을 지어야 한다. 산이 많음은 양이고 적음은 음이며 높은 집은 양이고 낮은 집은 음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만일 높은 집을 지으면 반드시 쇠퇴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풍수적 관념에 따라 당시에 높은 집을 짓지 않았던 사실을 알 수 있거니와 이러한 전통은 조선조에까지 이어져서 2층 이상의 살림집을 짓지 않았다.
조선의 학자 가운데 집터에 대한 풍수론에 관심을 기울인 대표적인 사람은 홍만선(洪萬選)[1643~1715년]으로, 『산림경제(山林經濟)』「복거조(卜居條)」에 집터나 집 짓는 일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풍수론을 펼쳤다.
강릉읍성의 풍수지리적 입지 조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릉읍성은 고려시대 강릉부(江陵府)가 있었던 읍치소에 축조된 성곽으로, 동쪽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동해가 자리 잡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안부에 해당하는 대관령이 위치하고 있다. 영서 지방과의 교통로는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경북 평해, 울진에서 강릉을 경유하여 한양에 이르는 영동로가 자리 잡고 있어 예부터 교통의 요지에 입지하고 있다. 또한 대관령을 통해 영서와 연결되는 역로가 개설되어 있고, 남북으로는 태백산맥 동쪽 해안의 좁은 평야 지대상에 위치하여 동서간 교통보다도 훨씬 용이한 교통의 요지이므로 외적 침입 시 국방상 중요한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