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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담(龍譚). 자는 은보(殷甫). 현감 고익흥(高益興)의 후손이며, 종사랑 고효륜(高孝倫)의 아들이다. 고득뢰는 기절이 있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한 뒤 감찰(監察)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는 평창현감(平昌縣監)에 제수되었으나, 완강하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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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숙(惺叔). 고려 때의 판서(判書)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현령(縣令) 김원(金騵)의 아들이다. 김경로는 어릴 때부터 여력이 출중하고 총명하여 열심히 경전을 읽었으나, 중년에 안질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문무의 실력을 견줄 만했던 황진(黃進)과 같이 1576년(선조 9)에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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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정(子淨). 수은 김충한(金冲漢)의 후손으로, 퇴한재(退閑齋) 김천로(金天老)의 아들이며, 월호 김집의 아우이다. 김급은 무과에 급제한 후 의금부도사를 거쳐 대구영장으로 옮겼다가 용양위부호군을 지켰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집과 함께 여산으로 달려가서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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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정중(正中). 동창공(東窓公) 김준손(金駿孫)의 아들인데 김일손(金馹孫)에게 양자를 갔다. 1498년(연산 4)의 무오사화 때 아버지 김준손을 따라서 큰형과 함께 호남에 귀양을 가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1518년(중종 13) 조광조의 천거로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가 남원군 보절면 진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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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계복(金啓福)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뛰어나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장으로서 자원하여 싸움터에 나아가 많은 적을 죽였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이 적에게 포위되자 군량 수백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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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심(士心). 정숙공 김양경의 후손이며, 진사 김문세(金文世)의 아들이다. 두 아들 김덕원과 김덕흥은 모두 참봉을 지냈는데, 김덕흥은 뒤에 사헌부지평의 증직이 내려졌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반정 때 수문장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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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화가(和可), 호는 만은(晩隱).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며, 김순례(金順禮)의 아들이다. 김벽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4년(중종 29)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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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선(繼先). 판서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진사 김백준(金百俊)의 아들이다. 김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사천현감(沙川縣監)으로 있었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을 따라 진주성에 들어가서 힘을 다하여 적을 맞아 싸우다가 황진과 함께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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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범, 호는 대곡. 판도판서 김관(金管)의 후손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하로 유교의 경전 가운데 사서에 능통했다. 스승인 기정진이 그를 ‘김맹자’라고 말하며 칭송했다고 한다.특히 성리 철학에 밝고 문장에 능했다고 한다. 『대곡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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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부안. 자는 제옹(濟翁), 호는 명은(明隱). 1734년(영조 10) 남원 진전방(현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에서 김계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민은 과거에 뜻을 버리고 평생 동안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지조와 절개를 가진 그는 평생 동안 우암 송시열을 존경하며 노론적 세계관에서 살다 간 인물이다. 기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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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여(用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김약려는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따라서 사촌 동생 김용려(金用礪)와 함께 행동하지 못하였다. 김약려는 눈물을 흘리며 “은(殷)이 망하니 백이(伯夷)는 수양산에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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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둘째 아들이다. 김원립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613년(광해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 때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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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기(汝器), 호는 만취정(晩翠亭). 계림군 김균(金稛)의 7세손이고, 선략장군 김귀손(金龜孫)의 손자이며, 현령 김사걸(金士傑)의 아들이다. 김위는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내외의 요직을 거쳐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叅議)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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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하간. 제학(提學) 김신민(金新民)의 후손이자 선무량 김영진의 증손이다. 김재백은 어려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문하에 나아가 유학과 예론 등을 공부했으며, 1682년(숙종 8)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스승 송시열이 유배될 때 스승의 무죄를 상소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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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전라북도 남원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수은(樹隱). 대제학(大提學) 김인경(金仁鏡)의 고손자이다. 본래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나 남원으로 귀양 와서 살게 되었다. 관직은 봉익대부예의판서(奉翊大夫禮議判書)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두신리에 신도비와 세거비가 있고, 두남사(杜南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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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김해(金海). 휘는 치삼(致三), 자는 일지(一之), 호는 도연정(道淵亭).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김대장(金大壯)이고, 아버지는 김장이다.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여헌 장현광·미수 허목 등 당시 석학들과 동문 수학하여 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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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안(扶安). 할아버지는 김수민(金壽民)이고, 아버지는 김복현(金復鉉)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시 병과에 합격하였다.김해부사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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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남원태수를 역임한 귀족.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泰). 태종무열왕의 9세손이며, 왕위를 원성왕(元聖王)에게 빼앗긴 김주원(金周元)의 증손이다. 시중(侍中) 김장여(金璋如)의 아들이며, 김양(金陽)의 사촌형이다. 김흔은 822년(헌덕왕 14) 당나라의 국자감에 가서 수학하고, 1년 뒤 당나라 목종(穆宗)으로부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시태상경(試太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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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은 조선 중기 명종과 선조 연간에 주로 활약한 문신으로, 30여 년 동안 청현(淸顯)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지례현감과 전주부윤 등 외직에 나가서는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 성리학과 예악에 밝았다. 노진은 1518년(중종 13) 함양군 북덕곡 개평촌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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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노형하는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사하였다. 일찍이 이름과 말이 세상에 알려져 ‘팔미군자(八美君子)’라는 별호가 붙었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장경(長卿). 고려 국자진사(國子進士) 노유(盧裕)의 후손으로, 고조부는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신고당(信古堂) 노우명(盧友明), 증조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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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선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한여(漢汝). 아버지는 증좌윤(贈左尹) 모득익(牟得益)이다. 모한추는 대대로 국가의 은혜를 입는 것에 감사하여 제단을 만들어 놓고 북두칠성에게 임금이 장수하기를 기도하였다. 숙종이 승하했을 때는 부모가 상을 당했을 때처럼 소복을 입고 삼년상을 지냈으며, 흉년에 곡식 백 석을 바쳐 국가의 쓰임에 보탬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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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송암, 시호는 충현. 남원에서 세거한 죽산박씨의 조상이다. 박문수는 고려 말에 우정승을 지냈으나, 조선 개국 후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왕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켰다. 조선 개국 후 아들 박포가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대항하다가 참수당했다. 당시 박문수의 손자인 박자량이 전라관찰사였는데, 숙부 박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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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상화(尙和), 시호는 충정(忠靖). 밀성군(密城君) 박언침(朴彦沈)의 고손자이고, 예조참판(禮曹參判) 박광영(朴光榮)의 손자이며. 군수(郡守) 박난(朴蘭)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나성령(羅城令) 이지(李漬)이고, 처부(妻父)는 조언국(趙彦國)이다. 박숭원은 1564년(명종 19)에 문과(별시 병과)에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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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박자량은 어린 시절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마을 아이들과 놀 때에도 경사에 있는 말을 외워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한 『주역(周易)』을 연구하여 천문과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서삼경과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독하여, 독서를 시작하면 침식을 잊었다.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을 지냈고, 이어서 전라관찰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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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 증조부는 방사량(房士良)이고, 할아버지는 방구성(房九成)이며, 아버지는 방계문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효행으로 천거되어 현량과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정언·수찬 등을 지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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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회경. 전적 방원정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이때 아버지 방원정도 문과에 함께 합격하였다. 평소 뜻을 배움에 두고, 옛것을 믿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였다. 효행과 우의를 아울러 다하였는데, 상제(喪祭)에 이르러서는 옛날의 예의를 한결같이 지키고자 하였다. 향리(鄕里)의 크고 작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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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준부(俊夫), 호는 사계(沙溪). 할아버지는 호조좌랑 방귀화(房貴和)이고 아버지는 방한걸(房漢傑)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방원진(房元震)이 손자이다. 일찍이 조식(曺植)·이항(李恒)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는 나가지 않았다.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사계천 위에 집을 짓고 송시(誦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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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면천(沔川).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의 후손이며 한림(翰林) 복오(卜俉)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제주목사가 되었다. 외할아버지인 판서 태응신(太應辰)의 농장이 남원부의 시라산에 있어서 남원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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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여류 문인. 남원에서 태어나 살다가 진안으로 이주한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이다. 삼의당 김씨처럼 여염집의 평범한 부인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삼의당 김씨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고,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아니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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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호원(浩遠), 호는 이촌(李村). 고려의 금오위 상호군 소희철의 후손이며, 7도병사를 지낸 소후(蘇後)의 7세손이다. 병마절도사 소기동의 고손자이며, 군자감정 소인세(蘇仁世)의 아들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주부 소제(蘇濟)의 동생이기도 하다. 소호는 지극한 효성심을 가지고 부모를 섬겼다. 부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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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아호는 청암(靑巖). 고려 상호군(上護軍)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다. 고조는 소을생(蘇乙生), 증조는 소패(蘇覇), 할아버지는 소윤무(蘇允武), 아버지는 소찬(蘇贊)이다. 그의 처부는 종묘령(宗廟令)을 역임한 남원(南原) 양도(梁度)이다. 아들로는 성균생원 소석지(蘇錫智), 노성현감(魯城縣監) 소연(蘇沿), 사헌부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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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칙(士則), 호는 백강(栢岡). 아버지는 첨추(僉樞) 안숙(安橚)이다. 안극효는 1741년(영조 17)의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헌부의 지평, 장령, 헌납 등 주로 언관직에서 근무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권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활발한 언론을 펼쳤다. 일찍이 영조와 8촌간인 여천군(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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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세진(世珍). 안향(安珦)의 8대손이며, 대사성 전주부윤을 지낸 증좌찬성 안지귀(安知歸)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직제학·판군자감사(判軍資監事) 안구(安玖)이고, 어머니는 상주박씨(尙州朴氏)로 참판 박이창(朴以昌)의 딸이다. 안기는 한때 전라북도 전주와 남원에서 살았다. 그는 1472년(성종 3)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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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원(汝源), 호는 청류재(聽流齋)이다. 문성공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안대중(安大重)이다. 안사제는 효성이 지극하고 강직하며 굳센 지조를 지니고 있었다. 1582년(선조 15)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관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아버지와 형이 어차산(於差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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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원서(元瑞),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기묘명현 사재당(思齋堂) 안처순(安處順)이며 아버지는 사과(司果) 안선국(安善國)이다. 남원의 금릉리에서 태어났다. 안영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남원의 본가에 있었는데 당시 모친은 서울의 집에 있었다. 난을 만나서 서로 찾지를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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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면숙(勉叔), 호는 백계(白溪). 아버지는 주부(主簿) 안삼석(安三錫)이다. 안재도는 학문적으로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가지는 않았다. 그는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방장산(方丈山) 밑 요호(蓼湖)에 은둔하여 일생을 마쳤다. 문헌공(文獻公) 박성원(朴聖源)이 그의 묘비명을 지어 백계처사(白溪處士)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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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보(文寶), 호는 죽암(竹巖). 사재당(思齋堂) 안처순의 아들이다. 안전은 문장(文章)과 행실(行實)이 뛰어났으나 과거 공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덕성을 숨기면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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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순지(順之), 호는 기재(幾齋), 사재당(思齋堂). 그의 증조는 안구(安玖)이며, 조부는 전주부윤(全州府尹) 안지귀(安知歸)이고, 아버지는 전적(典籍) 안기(安璣)이다. 어머니는 조양임씨(兆陽林氏) 능성현령(綾城縣令) 옥산(玉山)의 딸이다. 안처순은 1513년(중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듬해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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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寥汀)·태암(泰巖). 아버지는 충장공 양대박(梁大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하자, 아우 양형우(梁亨遇)와 함께 아버지를 보필하였다. 양경우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경명(高敬命)에게 갔는데, 고경명은 양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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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 호는 호은(湖隱). 충숙왕 때 참지정사를 지낸 문인공(文仁公) 양일(梁溢)의 후손이다. 양사철은 고려시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평리(門下評理) 삼중대광(三重大匡)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 등에서 그의 행적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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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송파(松坡). 시조 병부공 양능양(梁能讓)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우찬성(贈右贊成) 양구주(梁九疇)이다. 양성지[1415~1482]는 1441년(세종 23)에 생진문과(生進文科)에 합격하여 경창부승(慶昌府丞)과 성균전적(成均典績)을 역임하였다. 훈구파(勳舊派) 중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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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백형(伯亨). 영의정 양운(梁運)의 후손이며 참봉 양대충(梁大冲)의 아들이다. 행의로 천거되어 찰방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문과에 급제하여 양덕현감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을 따라서 금산으로 나아가 병사들의 앞에 서서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금산전투의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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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 양주익(梁周翊)[1722~1802]은 주로 영조와 정조 연간에 활약한 문신이다. 정치의 폐단을 개혁하는 데 관심이 많았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군한(君翰), 호는 무극(无極). 조부(祖父)는 양우하(梁宇夏)이고, 부친은 생원 양명진(梁命辰)이다.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175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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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발(子發), 호는 동애(東崖). 용성군 양주운(梁朱雲)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집의 양의(梁艤)이고, 아버지는 청계 양대박(梁大撲)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아버지 양대박이 의병을 일으켜 출전하자, 19세의 나이에 불과하였으나 종군하여 운암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603년(선조 36)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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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술(子述). 금남재 오응(吳凝)의 5세손이며, 영의정 오찬조(吳纘祖)의 아우이다. 무술에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정에 이르렀다. 1597년(선조 30)에 일어난 정유재란 때 왜적이 남원성을 포위하자 형인 오찬조를 따라서 숙성령으로 나아가 적병의 동정을 살피고 적병 수십 명을 베었다. 승세를 몰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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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중(文仲), 호는 완원당(翫元堂). 현감 오하몽(吳下蒙)의 아들이다. 1574년(선조 7) 무과에 급제한 후 비변랑, 사헌부감찰, 형조정랑을 거쳐 1579년 군기시첨정으로 승진하였다. 1583년 이이(李珥)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동인들의 미움을 사 흥덕현감으로 좌천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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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 자는 중술(仲述), 호는 영회정. 금남재 오응의 5세손이다. 무술이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동관을 굳게 지켰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군이 남원성을 포위했을 때, 그는 남원중군으로 숙성령의 싸움에서 많은 적병을 참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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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문희공 우탁(禹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우안민(禹安敏)이다.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담력이 있어서 1577년(선조 10)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수문장으로 있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선조가 있는 곳으로 가던 중 도중에서 적을 만나 싸워 많은 적을 죽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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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원주. 호는 창암(蒼菴). 녹야당(綠野堂) 원계관(元繼寬)의 손자이다. 선조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의 자리를 거쳐 좌승지(左承旨)를 지냈고,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올랐다. 사후에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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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경정(景正), 시호는 정숙(貞肅). 대언 유두명(柳斗明)의 아들이다. 음직으로 계성전직에 보직된 후 1426년(세종 8)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호조참의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소송을 제기한 자가 뇌물을 바치자 태형으로 죽게 하여 파면되었다. 이후 남원에 돌아가서 오랫동안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후에 아들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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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공직(公直). 곤산군 유익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유사온(柳思溫)이다.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여 무과에 급제한 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서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인조에게 적을 막아낼 여러 가지 계책을 올리어, 난이 끝난 뒤에 벼슬이 포도대장에 이르렀다. 그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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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우복(于復). 중추부지사 유규(柳規)의 서자이다.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는 갑사(甲士) 출신으로,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자진 출전하여, 난이 끝나자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468년 왕위에 오른 예종에게 남이의 언행과 시를 빌미삼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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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유자택은 영광에서 태어났으나 훗날 남원시 고죽리로 이주하여 영광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손이 번창하여 이백면과 사매면 등 여러 곳에 동족 부락을 형성하였다. 유자택의 아버지 유혜방(柳惠芳)은 선대 이래 영광에서 살았다. 일찍이 영광군수를 역임하고 후에 영광군으로 봉군됨과 아울러 시호를 익양공이라 하였다. 유혜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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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유(子有), 호는 사호(沙湖). 청백리로 칭송받던 낙봉(駱峯) 유헌(柳軒)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유감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유영립(柳永立)이다. 1595년(선조 28)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에 뽑혔다가 호당이 되었다. 광해조 때 삼강오륜의 질서가 무너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의 추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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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문화(文化). 호(號)는 뇌천(磊川). 할아버지는 석헌(石軒) 유옥(柳沃)이고, 아버지는 유홍원(柳洪源)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평생을 안빈낙도하면서 입신 출세를 구하지 않았다. 『뇌천집(磊川集)』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덕행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드날렸지만 병자호란이란 국가적 치욕을 당하면서 벼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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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충렬왕(忠烈王) 때 태어났고, 1319년(충숙왕 6) 어사대부(御史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벼슬을 하였다. 죽은 뒤에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제수되었고 시호는 문경공(文景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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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송(碧松). 고려 숙종 때의 윤관(尹瓘)의 손자로, 남원부사를 지낸 윤언순(尹彦純)의 아들이다. 1176년(명종 6)에 겨우 1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국자감박사가 되어 국사를 편찬하는 임무를 맡았다. 신종대에 전국 도처에서 민란이 잦아 남원부도 경내가 소란스러웠다. 이때 신종이 윤위로 하여금 남원의 반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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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명서(明瑞).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의 후손으로, 문경공(文景公) 윤신갑(尹莘甲)의 7세손이다. 힘이 세고 병서에 통달하여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용만으로 몽진을 하게 되자, 형인 윤응인과 함께 임금을 호위하기 위해 올라가는 도중 웅치 부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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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 출신의 문신. 추계(楸溪) 윤효손(尹孝孫)[1431~1503]은 성종 연간에 주로 활약했던 문신이다. 학문에 출중하였으며, 지조가 단아하고 방정하였다. 성종 때 벼슬이 참찬에 이르렀으며, 기사(耆社)에 들었다. 남원시 주생면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유경(有慶), 호는 추계(楸溪).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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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약한 국악 전수 공헌가. 진나라 사람이 고구려에 보낸 칠현금을 왕산악(王山岳)이 개량하여 만든 것이 거문고이다. 그후 거문고는 지리산의 운봉 부근에 있던 운상원을 중심으로 옥보고(玉寶高)에게서 속명득(續命得)을 거쳐 귀금선생(貴金先生)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귀금선생이 운상원에서 은둔하다시피 하자 거문고의 맥이 끊길 것을 염려한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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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노(仲魯), 호는 후천(後川). 용성정(龍城正) 이열(李悅)의 아들이다.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大新里) 상신마을은 영해군 이경여(李景輿)가 정착한 곳으로, 전주이씨 영해군파의 집성촌이다. 어려서부터 풍채가 준수하였고, 도량이 넓고 호방하였으며, 말주변이 훌륭하여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고금을 널리 살펴보아 때에 힘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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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충선왕이 충숙왕에게 선위하고 원나라에 있을 때 반전별감(盤纏別監)으로 왕을 모셨다. 그때 함께 일을 맡은 자들은 모두 치부하였으나 홀로 청고한 생활을 하였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에 귀양을 가게 되자 역졸을 시켜 금을 바치게 하여 왕과 호종신(扈從臣)의 옹색을 면하게 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밀직부사로 충선왕의 재궁(梓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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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충청남도 천원군 직산면 삼동리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1597년(선조 30)에 남원부판관이 되었다. 부임하자마자 정유재란으로 왜군의 재침이 더욱 성하자, 관청에 비축해 둔 재물을 처분하여 소와 술을 사서 모든 장졸들을 배부르게 먹인 다음 남원성을 사수할 계책을 세웠다. 그해 8월 12일경 남원성이 11만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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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 전주(全州). 자는 성칙(聖則), 호는 풍거(風渠). 효령대군의 7대손이며, 춘성정(春城正) 이담손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국형(李國馨)이다.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가 외할아버지이며, 배위는 경주김씨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고 외모가 위연하였으며, 배운 것이 넓고 듣는 것이 많았다. 규율에 맞는 행동을 하였으며, 청렴하고 검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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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원(子遠), 호는 석동(石洞).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천묵재(天黙齋) 이상형(李尙馨)이다. 남원부 둔덕방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특이하여 동정에 절도가 있고 스스로 학문에 힘써 문사(文詞)만을 일삼지 않았어도 문장이 날로 이루어지니 선배들의 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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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수부. 조선의 개국공신 이의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병서를 익힌 뒤에 일평생 몸을 조국에 바쳐 순국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매일 장순(張巡)과 악비(岳飛), 문천상(文天祥)의 전기를 읽었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에 나주판관이 되고, 이듬해 전라방어사·충청조방장(忠淸助防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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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명(李碩明)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이희선(李喜善)이다. 1583년(선조 1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 좌랑으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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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선(德先), 호는 천묵재(天黙齋). 효령대군의 7대손이며, 춘성군 이담손(李聃孫)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욱(李昱)이며, 어머니는 임대영(任大英)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1625년(인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에 들어가 1628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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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광양군(廣陽君) 이세좌(李世佐)의 5대손이다. 숙종 때 부사를 지냈으며, 1728년(영조 4)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운량도감이 되어 두 아들 이자간(李自侃)과 이여간(李汝侃)을 시켜서 군량을 모아 군부에 보냈다. 여러 의사(義士)들과 함께 운봉의 팔량치를 지키다가 운봉의 천총(千摠)·정준교(鄭俊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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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명나라 장수. 어려서부터 군에 종사하던 역전의 용사로서 곤봉의 명수였다. 정유재란 때 명나라 중군으로 남원성 동문을 지키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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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무성(茂城). 자는 청보(淸甫). 부사 이서(李瑞)의 손자이며 군수 이희방(李希芳)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고경명을 쫓아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금산 전투의 공을 인정받아 선무원종훈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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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농은(農隱). 문정공 이신의(李愼儀)의 후손이다. 영조조의 학자로 경학에 정통하고 문장이 굉박하여 이름이 높았다. 목산 이기경(李基敬), 석교 홍낙명(洪樂命) 등과 『이기체용(理氣體用)』 등을 공동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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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호는 오소(吾巢)이다. 이윤수는 1838년(헌종 4)에 태어나 27세 되던 1864년(고종 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형조참의(刑曹參議)를 거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하였고,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摠管)에 올랐다. 사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간공(忠簡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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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남당(南堂)·홍연거사(紅蓮居士). 아버지는 홍문관부수찬 이수정(李守貞)이다. 황효헌과 이연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1522년(중종 17)에 생원, 1531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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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팽년(李彭年)이다. 아우 이경신(李敬信)은 훈련판관(訓鍊判官)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따라 전함을 수리하고 공로가 많았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간성군수로 의병을 모아 충주 달천(達川)에서 신립(申砬)과 함께 싸우다 순절하였다.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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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천(寧川)[현재는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부 관할이었음]. 영천이씨(寧川李氏)의 시조인 이능간의 3세손이다. 이탕휴(李湯休)는 고려조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으나,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자신이 살던 곳을 스스로 방화하고 자손을 고향인 남원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자신은 관과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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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회중(晦仲), 호는 회산(晦山). 세종의 왕자 영해군 당의 5세손이며, 구성의 수령을 지낸 이성의 손자이다. 돈용교위(敦勇校尉) 이경하의 아들이다. 이휘는 타고난 재주가 뛰어났고 남달리 용기가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잘하여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1611년(광해군 3)에 무과에 급제하여 성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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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이희량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에 활약한 무신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영교위를 거쳐 선전관, 절충장군(折衝將軍), 덕만보권관(德萬堡權官)에 제수되었다. 그는 말년에는 운봉(雲峰)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 본관은 영천(寧川), 자는 형재(馨哉), 호는 대명거사(大明居士)이다. 시중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이며,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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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임규는 자질이 특출했으며, 벼슬이 사용(司勇)에 이르렀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부사 임현의 막하에서 함께 싸우다가 남원성이 무너질 때 순절하였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조정에서는 남원성 싸움에서 순절한 임규에게 초혼장(招魂葬)으로 장사를 지냈고, 정려(旌閭)를 내려 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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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1547~1615]는 선조와 광해군 연간에 주로 활약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전라도도사, 금구현령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등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사직하였다. 이후 벼슬을 단념하고 시문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는데, 사회 현실과 우국지정을 읊은 문학 작품을 남겨 문명(文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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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인. 본관은 흥성. 자(字)는 익재(益哉), 호(號)는 옥경헌(玉鏡軒). 아버지 장담(張膽)과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1617년 11월 23일 태어났다. 장복겸은 관직에 나가 명예를 얻고 치부를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일생 동안 학문을 연마하고 자기가 견문(見聞)했던 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지어 노래하고 친한 벗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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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호이(浩而), 호는 낙와(樂窩) 또는 독락와(獨樂窩)이다. 참판에 증직(贈職)된 장우익(張宇翼)의 아들이다. 장석은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고모부인 통제사 이석관(李碩寬)으로부터 무술을 익혔다. 1714년(숙종 40)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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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명원(明遠), 호는 풍암(楓庵). 고려 안경공 장연우의 후손이며, 동지중추부사 장진세(張震世)의 아들이다. 장제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국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사촌 형 용계공 장환, 사촌 아우 용암공 장선, 6촌 장지 등과 함께 곧장 남한산성으로 달려가서 임금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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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유신(幼新), 호는 용계(龍溪). 고려 태사 충헌공 장길(張吉)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장숙(張叔), 아버지는 공조판서 장승세(張升世)이다. 어머니는 연안김씨(延安金氏)로, 장사랑 김승업(金承業)의 딸이다. 장환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쓰고 충효를 인륜의 으뜸으로 알았다. 그는 1612년(광해군 4) 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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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응성(應聖)이고, 익혜공 정난종(鄭蘭宗)의 후예이며, 참봉 정대훈(鄭大勳)의 아들이다. 정기수는 힘이 세고 기개가 있었으며, 1574년(선조 7)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정에 이르렀다. 그는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때 그의 6촌 아우인 정지심·정지우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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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중(士重), 호는 현산(見山). 고려시대의 좌복야 정목(鄭穆)의 후손이며,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고손자, 현령 정한용(鄭漢龍)의 증손자, 사직서령 정순복(鄭純福)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내산부원군 정상신(鄭象信),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영천부정 이경(李璟)의 딸이다. 정기원은 24세가 되던 해 진사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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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인헌(仁憲). 시중(侍中) 정현영의 후손이며, 참판 정염팔(鄭廉八)의 아들이다. 정덕승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호군이던 그는 성만 최연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위해갔다. 적병의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힘을 다하여 남한산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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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했던 문신. 정염은 1524년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는 당대의 석학 미암(眉岩) 유희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정암 조광조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것이다. 성리의 바른 학문을 공부하였고, 규암 송인수와도 교유하였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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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정인지(鄭麟趾)는 조선 초기 문신으로 대통력(大統曆)과 역법(曆法)을 개정하였으며 천문·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다. 김종서(金宗瑞)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찬수하였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컸다. 안지(安止)·최항(崔恒)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음으로써 국어·국문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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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용회(用晦), 호는 회산(檜山). 아버지는 사산감역관(四山監役官) 정세명(丁世明)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전적(承文院典籍)이 되었다. 성균관전적·호조좌랑을 거쳐 1537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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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계회(季晦), 호는 유헌(遊軒), 시호는 충간(忠簡). 아버지는 필산감역(匹山監役) 정세명(丁世名)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정황은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거쳐 지평·병조정랑·형조정랑 등을 지냈다. 1544년 정랑으로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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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동생 정효종(鄭孝終)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경연사경(經筵司經)으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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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인. 수남방옹(水南放翁) 정훈(鄭勳)[1563~1640]은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 연간에 주로 활동했던 문인이다.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친을 모시고 남원으로 피란하였다가 그곳에 우거하며 생을 마쳤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방로(邦老), 호는 수남방옹(水南放翁).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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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광옥(光玉). 고려시대 상호군(上護軍) 정연방의 후손이며, 직장(直長) 정훈의 증손이다. 정희는 힘이 뛰어나게 세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의 수성장이 되어 군졸을 거느리고 팔량치에 이르러 영장 손명대와 힘을 합쳐 방어책을 마련했다. 앞장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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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조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이다. 은천군(銀川君)에 봉해진 뒤 1386년(우왕 12)에 한양 도원수 겸 한양 부윤이 되었다. 1388년(우왕 14)에 밀직사사로 왕의 조근을 청하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에 의하여 최영과 함께 요동을 친 죄로 풍주에 유배되었다가, 1392년 조선이 개국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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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문량공 조간(趙簡)의 후손이며, 사성 조충손(趙忠孫)의 손자이다. 조억령은 어려서부터 지략이 많았고 기개와 절조가 있었다. 1588년(선조 21)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역임했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 적병이 장수(長水)의 육십령재[六十嶺峙]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에 그는 노비와 군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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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서만(西巒)·소옹(素翁). 참판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자, 조옥(趙玉)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이며, 조유한(趙維韓)의 아우이다. 조위한은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수찬을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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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아호는 율정(栗亭)이다. 고려 말기인 1376년(우왕 2)에 태어났으며, 26세 되던 1402년(태종 2)에 문과를 급제하였고,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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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 조양정(趙揚正)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생원이 되고,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學諭)가 되었다. 1611년(광해군 3) 부사과로서 한때 파직당했다가 낭관과 사간원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이어 영암군수를 거쳐 1617년 영천군수로 있을 때 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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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이화(而和). 주경여(朱慶餘)의 아들이다. 주열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남원판관·국학학록·감찰어사 등을 거쳐 나주·정주·승천부·장흥부 등의 수령으로 치적을 올렸다. 원종 때 병부낭중으로서 연이어 충청·경상·전라도의 안렴사(按廉使)로 나가 위명을 떨치고 예부시랑이 되었으나, 1269년(원종 10)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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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원(季元), 호는 우재(愚齋). 고려의 호부상서 사조의 후손이다. 용성군 진석의 17세손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진수영이다. 진종립은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등 무예에 뛰어났으며 담력과 지략이 뛰어나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사 수십 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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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내심(乃心), 호는 동량(㠉梁). 한성부 우윤 최연(崔葕)이 손자이며, 최휘지(崔徽之)의 아들이다. 최계옹은 1681년(숙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設書)를 지냈다. 1695년 지평으로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그 후 정언을 지냈다. 1704년 장령으로서 앞서 단종이 폐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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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여익(汝益), 호는 패란당(佩蘭堂). 영의정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의 후손이며, 좌승지(左承旨)에 증직(贈職)된 최적(崔敵)의 아들이다. 1567년(명종 22)에 태어난 최상겸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또한 체구가 우람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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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중은(仲誾), 호는 죽곡(竹谷). 대사성(大司成) 최자빈(崔自濱)의 후손이다. 삼례찰방 최효원(崔孝源)의 손자이다. 사계(沙溪)의 제자 김헌의 문하에서 배우고 외가가 있는 전라북도 남원으로 내려와 살았다. 당시 학행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죽곡유고(竹谷遺稿)」가 『오성세고(烏城世稿)』에 합철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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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여후(汝厚), 호는 미능재(未能齋). 영의정 최항(崔恒)의 6세손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 최영(崔穎)의 아들이다. 최상중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에게 사사했다. 1576년(선조 9)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 1589년(선조 22)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한림(翰林)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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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삭녕최씨의 전라북도 남원 입향조(入鄕祖). 본관은 삭녕(朔寧), 호는 운경(雲卿). 할아버지는 영의정 영성부원군 최항(崔恒)이며, 아버지는 예조참의를 지낸 최영린(崔永潾)이고, 어머니는 고령박씨이다. 부인은 진주하씨(晋州河氏) 사직(司直) 하응(河應)의 딸이다. 최수웅은 일찍이 음사(蔭仕)로 충의위정략장군(忠義衛定略將軍)에 올랐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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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인. 최시옹은 천성적으로 영특하여 부모가 이를 염려하여 늦게 가르쳤다. 여러 스승 아래 공부하여 학문에 대성하였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여러 번 천거한 관직도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일생을 초야에 묻혀 시문(詩文)과 벗하여 지냈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한신(漢臣), 호는 동강(東岡). 영의정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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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유장(孺長), 호는 성만(星彎) 또는 성연(星淵). 영의정 최항(崔恒)의 7세손이며, 사간(司諫) 최상중(崔尙重)의 아들이다. 최연은 1576년(선조 9)에 태어나 1603년(선조 36)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었다. 광해군 때 예조좌랑(禮曹佐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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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로(文路). 만육(晩六) 최양(崔養)의 8세손이며, 판결사(判決事) 최제의 아들이다. 최예달은 일찍이 벼슬길에 나아가 봉직랑(奉直郎) 조지서(造紙署) 별제(別提)를 지냈다. 또한 문장과 행실이 탁월하고 기백이 남달리 뛰어났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량과 의병을 모아 과천에 이르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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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숙(輝叔), 호는 폄재(砭齋). 영의정 최항(崔恒)의 7세손이며, 교리 미능재(未能齋) 최상중(崔尙重)의 아들이다. 최온은 1583년(선조 16)에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남다르더니 나이 11세에 명나라 장수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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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명나라 장수. 세심당(洗心堂)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명나라 무강자사로 재임하며 부러움 없는 영화를 누렸으나 이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다섯 아들과 함께 조선에 들어와 왜군과 싸웠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웠고, 마침내 적의 총탄에 맞아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전주를 사수한 장군이다. 본관은 추계(秋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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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진옥(振玉), 호는 삼현정(三賢亭).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주부(注簿) 태귀생(太貴生)의 아들이다. 태상문은 기사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부사가 그에게 장사 1,000명을 거느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형제·숙질(叔姪)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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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협계(陜溪), 본래 발해 왕 대조영의 후예라고 전해진다. 태응진은 벼슬이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금암리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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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남원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대흥(大興). 평장사(平章事) 한유충(韓惟忠)의 아들이다. 한문준은 인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재주 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외직으로 나가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세 고을의 부사(副使)와 남경부유수(南京副留守)를 역임하면서 자비로운 정치를 베풀었다. 그의 제자 오세재(吳世材)가 시를 지어 “남녘에서는 세 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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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상오(相五). 증조부는 승지(承旨) 한복(韓輹), 조부는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 한응문(韓應文), 아버지는 수운판관(水運判官) 한경생(韓庚生)이며, 외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조효원(趙孝元) 장인은 병조참판(兵曹參判) 이경헌(李景憲)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정산현감(定山縣監)으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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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석여(錫汝), 호는 운계(雲溪), 무민공(武敏公) 황진(黃進)의 증손이며, 당촌(塘村) 황위(黃暐)의 아들이다. 황신구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탁월했고, 소년이 되자 이미 옛 선인들의 학문을 이해하였다. 벼슬에 뜻이 없어 은거하여 후진을 교육하였는데 많은 선비가 모였고, 고관대작들이 그의 높은 절의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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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字)는 자휘(子輝), 호는 당촌(塘村).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손자이며 현령(縣令) 황정열(黃廷說)의 아들이다. 아들중에 학행이 높았던 황신구(黃信龜)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된 황임구(黃任龜)가 있다. 황휘는 어려서부터 시 쓰기를 좋아하였으며, 기암(畸菴)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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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공(武愍公).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황위(黃暐)는 황진의 손자이다. 1576년(선조 9) 2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이듬해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로 사신 황림(黃琳)을 보좌하여 군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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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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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왕족.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示+甫)[1396~1486]는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모두에게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 또한 효령대군은 불교를 숭상하고 선가(禪家)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한 까닭에 유학자들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본관은 전주. 초명은 이호(李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