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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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孝常 |
영어음역 | Jeong Hyosang |
이칭/별칭 | 가구(可久),제안(齊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화섭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동생 정효종(鄭孝終)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1451년(문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경연사경(經筵司經)으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화를 면하였다. 1455년(세조 1) 12월에는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1459년 6월 승문원 부교리라는 한가한 관직을 제수받게 되면서 학문에 전념하는 한관독서(閑官讀書)의 혜택을 입었다. 이후 감찰, 이조좌랑, 세자시강원필선을 거쳐 1466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였고, 1468년(예종 원년) 10월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이후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가선대부에 올라 계림군에 봉해졌다. 그 뒤 우부승지, 좌승지, 도승지를 거쳐 1471년(성종 2) 3월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다시 좌리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정헌대부에 올랐다. 1472년에는 경상도 관찰사를 겸하였고, 이후 12년 동안 공조판서, 이조판서,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제안(齊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