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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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氵-奭- |
영어음역 | Jang Seok |
이칭/별칭 | 호이,독락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호이(浩而), 호는 낙와(樂窩) 또는 독락와(獨樂窩)이다. 참판에 증직(贈職)된 장우익(張宇翼)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장석은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고모부인 통제사 이석관(李碩寬)으로부터 무술을 익혔다. 1714년(숙종 40)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궁성을 호위하여 이등공신에 녹훈(錄勳)되었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가자(加資)가 내려졌다.
1730년 송내성(宋來成)의 무고에 휘말려 유배되었다가 1732년 풀려났다. 1736년 함흥부원군 어유구(魚宥龜)가 훈련도감에 있으면서 초관(哨官)으로 추천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공북단을 짓고, ‘공북단’ 세 글자를 바위 아래에 새겨, 명절이나 임금의 생신날이 돌아오면 그 곳에서 배례를 하였다.
[저술 및 작품]
「군은가(君恩歌)」를 지어 충군의 정을 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