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창원문화대전 > 창원의 마을 이야기 > 모산마을 > 낙동강과 함께 살아온 세월 > 낙동강에 새긴 그리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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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1,300리 낙동강은 쉼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굽이굽이 수만 수천 년을 그렇게 흐르는 동안 낙동강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었으나 사람들은 낙동강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의 모든 자연환경이 오직 사람만을 위한 것인 양 편리 위주로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건설하여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을 지경인 오늘날이다. 낙동강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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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골목길을 누비며 이른 아침부터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하던 소리가 사라진 지도 오래 되었다. 창원 지역에서는 푸르스름한 껍질의 강조개를 ‘재첩’이라 부르는데, 1976년 10월 경상북도 안동댐이 건설되고 대구 지방의 염색공단이 입주하기 전까지 낙동강에는 재첩이 그야말로 지천이었다. 특히 보리가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5월이면 강가 물 얕은 모래사장에는 재첩이 마치 냇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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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촌공사 창원지사의 옛 명칭은 창원농지개량조합이다. 더 오래 전 1970년대 이전에는 창원수리조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산업개발조합으로 불렸다. 1960~1970년대에는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배를 굶주린 사람들이 많았기에 국가 중요 국정지표를 ‘증산, 수출, 건설’이라 했다. 그 시절을 일컬어 이른바 ‘보릿고개 시절’이라고도 했는데,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인지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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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제방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모산마을은 장마철이 되면 강물이 범람하여 몇 차례 물난리를 겪었다. 마을 최대의 물난리는 1934년 7월로, 마을 사람들은 그때를 ‘갑술년 물난리’라 부른다. 엄청난 양의 장맛비가 쏟아져 강물이 마을을 덮쳤고, 마을 사람들은 만당[일명 만등]에 올라가 간신히 몸만 피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1963년과 1965년, 1969년 폭우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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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동읍 대산면 일대의 들판은 예부터 낙동강이 적셔 주는 천혜의 곡창지대이다. 사방팔방 20~30리 안에는 산이 없는 질펀한 습지를 비옥한 농경지로 가꾸어 왔던 조상들의 땀과 숨결이 배어 있는 곳으로, 낙동강 물이 구석구석을 적셔 주었다. 그랬기에 전국 어느 지방보다도 농경문화가 발달했던 곳이어서 오늘날 선진 복지농촌이 된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낙동강 물은 인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