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D0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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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은실 |
모산마을은 예부터 인근에 산이 없어 땔감이 귀한 마을이었다. 그러니 보릿고개 시절에는 어떠했겠는가. 김말수 할머니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산에 올라가는 길이 험난하여 땔감을 하러 갓난아이만 등에 업고 나서면 집에 남은 큰딸이 울며불며 따라왔다고. 큰 딸을 혼자 집에 두려니 마음이 아파 결국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김말수 할머니는 마을에서 20리가 떨어진 창원시 동읍 백월산과 봉곡산에 종종 땔감을 구하러 갔다고 한다. 산 중턱을 가도 땔감이 없어 꼭대기로 가야 했다. 산꼭대기에는 다행히 솔방울과 썩은 나뭇가지들이 너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짚으로 만든 큰 자루에 한 가득 담아 산을 내려오지만 길이 워낙 험하여 엎어지기를 수십 번. 결국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서 산을 내려와야 했다고 한다.
산꼭대기에서 힘들게 땔감을 구해서 내려오면 그 산 아래 사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산이라 하여 그녀가 채취한 땔감을 빼앗아 갔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 땔감을 가지고 와야 했다. 땔감을 구하지 못한 날이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락뿌리’로 불을 피워 보는데 매번 연기만 날 뿐 불이 붙지 않았다.
또한 모산마을은 새미(우물)가 네 군데가 있었다지만 늘 물이 부족했다고. 할머니는 밤새도록 새미 옆을 지키면서 물을 받아 보았지만 어쩌다 한 동이 나올 뿐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낙동강 물을 운반하여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해야 했다.
낙동강 물을 운반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물이 든 물동이를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모래 위를 걸을 때에는 ‘발이 푹푹 빠져’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물지게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물이 부족하니 빨래도 낙동강에서 해야 했다. 특히 겨울철 빨래는 너무 힘들었다. 강물이 두텁게 얼어 있어 망치로 한참 동안 얼음을 뚫어야 했고, 지금처럼 장갑이 나오지 없는 시절이라 맨손으로 얼음물에 빨래해야 했다. 빨래를 다 마치고 나면 손이 빨갛게 부어있었다고 한다. 이런 손을 조금이라도 녹이고자 짚단을 가져가 불을 피워 보기도 했지만 금방 꺼졌다.
김말수 할머니는 지금 세상을 보면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디 있노?”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단다. 오늘날은 물지게를 짊어지지 않아도 물을 마실 수 있고, 얼음을 뚫지 않아도 손쉽게 빨래를 할 수 있다. 또한 땔감을 구하러 높은 산을 타지 않아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 김말수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게 한다.
[정보제공자]
김말수(여, 1930년생, 북모산마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