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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노동 속에 하루를 쉬다 - 회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C020201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수정

전통사회의 봉산마을에서는 본격적인 농번기가 들어가기 전 3월 초가 되면 회추를 즐겼다. 회추는 농촌사회에서 매년 고된 노동 속에서 하루를 쉬어 가는 날을 의미한다. 봉산마을에서는 회추를 해치 또는 해추라고 불렀다.

마을에서 회추를 하는 날이면 집집마다 쌀을 반 되 혹은 한 되씩 갹출한다. 농촌사회였던 마을에서는 이렇게 돈보다는 곡식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간혹 쌀 반 되를 걷고 돈 500원을 걷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쌀을 많이 거두었다. 쌀을 한 되 걷는 해는 회추를 크게 논다고 여겼다.

회추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추를 크게 놀 것인지 아니면 작게 놀 것인지를 결정한다. 크게 회추를 할 량이면 쌀 한 되를, 작게 회추를 할 량이면 쌀 반 되를 걷는다. 이렇게 쌀이 걷히면 이장 집이 중심이 되어, 마을 부녀자들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장만한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회추를 멀리 가지 못했다. 봉산마을에서는 마을 뒤 전단산 자락에 올라가서 회추를 했다.

마을에서는 하루 노는 날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음식 장만은 엄두도 못 내었다. 단지 비빔밥과 부침개가 전부였다. 비빔밥을 하기 위해서 마을에서 걷은 쌀로 밥을 하고, 미나리와 고사리 등을 이용하여 무침을 한다. 그리고 이날은 명태를 뜯어 안주를 만들고 고기를 넣지 못한 미역국을 끓인다. 봄나물로 가장 흔한 미나리로 부침개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막걸리를 준비한다. 이렇게 장만한 음식과 악기를 들고 마을 뒷산에 올랐다.

전단산 자락인 마을 뒷산 중턱에는 돌제단이 있는데 그 주위에는 넓은 공터가 있다.

이 공터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추를 하였다. 회추에서는 절대 풍물이 빠지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풍물을 배운 사람들은 아니지만 마을에서 풍악을 안다고 모인 사람들이 풍물패가 되어 장구와 징 그리고 꽹과리·북 등을 치면서 한바탕 신나게 놀이판을 벌였다. 간혹 마을에서 술과 갖은 안주를 장만하여 크게 회추를 놀기도 하는데 이는 자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3~4년에 한 번씩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루를 놀고 나면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못자리를 만들고 모내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일상 속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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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단

봉산마을에서도 오늘날에는 더 이상 회추를 하지 않는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회추가 아닌 야유회를 다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버스를 타고 멀리 떠나는 여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회추는 이제 시끄러운 풍물 소리와 막걸리의 내음이 아련한 기억 속의 추억이 되었다.

[정보제공자]

황봉광(남, 1919년생, 봉산마을 거주)

김문학(남, 1925년생, 봉산마을 거주, 송산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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