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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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祖說話 |
이칭/별칭 | 일본의 도조신이 된 웅천 여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정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선조 31년(1598) 왜군이 폐퇴하면서 많은 우리 동포를 납치해 갔다. 안골포는 왜군이 침입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수군 기지로 이용하였으므로 여기 함선이 우리 동포를 일본으로 싣고 갔던 것이다. 이때 웅천현에서도 유일하게 도자기를 생산하던 보개산 중턱의 점골[웅천 도요지]의 도예 기술자를 포함한 120여 명의 주민이 납치되었다.
이들을 납치해 간 웅천 사화랑산 왜성의 왜장으로 머물러 있던 마쓰라[松浦鎭信]는 그의 영지(領地)인 규슈 나가사키현 히라토섬(九州長崎縣平戶島)으로 끌고 가서 마을 이름을 고려 마을이라 하고 도예 기술자에게 도자기를 굽도록 명령했다.
도예 기술자들은 마을에서 13Km 쯤 떨어진 산속에 가마를 차렸으나 좋은 흙이 없어 그릇을 빚기가 어려워 도토를 조선에서 수입하여 그릇을 빚어 보았지만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동안을 마쓰라 영주의 채찍질에 못 이겨 가마에 불을 지폈으나 바라는 그릇은 구워낼 수 없었고, 마쓰라 영주는 참담한 고생을 하고 있는 웅천 선인들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해방령을 내렸다. 자유의 몸이 된 웅천 선인들은 좋은 도토(陶土)가 있는 곳, 가마터로 좋은 곳을 찾아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미카와치 마을(佐世保市三川內町)로 모여 살게 되었다.
히라토섬에서 흩어져 나간 웅천 선인 가운데 ‘에이’ 또는 ‘이죠[醫女]’라고 부르던 여인이 있었다. 그 여성은 시이노미네라는 곳에서 도예업을 하고 있던 일본인 나가사토 모베에와 강제로 혼인을 하게 되어 거기에서 도예 기술을 계속 익히고 살았다. 그녀는 성격이 활달하고 재주가 뛰어나 도예 기술을 익히자 곧 창의성을 나타내어 새로운 것을 연구해 내었고 다른 동향인보다 앞서 도예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독창적인 작품을 연구해 내며 후진들에게 자애로운 지도자 노릇까지 했다.
이제 ‘에이’니 ‘이죠’니 하고 부르지도 않고 ‘고오라이바바’[高麗媼:고려에서 온 할머니라는 뜻]라고 불렀다. 그녀는 마을 동쪽 산등에 ‘니미네 사당’을 지어 놓고 조선에서처럼 명절에 제사를 지냈다. 한국 떡과 탁주 등 조선의 음식을 차리고 장구를 치며 다른 민족에게 납치되어 참담한 고초를 겪고 있는 동포들의 평안과 도업의 번창을 빌었으며 아울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향수를 달래는 자리를 마련하는 대제로 그 의미를 더해 갔다. 그러한 사당을 지은 산등을 삼포(三浦)라고 이름 붙였고, 마을 가운데 흐르는 내를 곰내[熊川]라고 붙였다.
왜적에게 납치되어 당하는 수모와 한을 이국에서 조국의 도예 기술을 심음으로써 스스로를 달래며 드디어 도조(陶祖)가 된 웅천 여인도 인명을 다하여 106세의 고령으로 한 많은 세상을 등졌다. 그녀는 숨을 거두면서 “내가 죽으면 저 산정에 있는 니미네 사당을 불살라라. 그때에 타오르는 연기가 하늘을 오르면 내 영혼은 조선으로 돌아가고 만약에 땅 위에 맴돌면 이곳에 머물러 영원히 자손들의 도업을 돌보아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손들은 연기가 하늘로 오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사당을 태우니 과연 연기는 바라는 대로 땅 위에서 맴돌았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 여인을 도조신(陶祖神)으로 섬기기로 하고 가마야마 다이메이신[窯山大明神:도예업을 처음 일으킨 신]이라 이름하여 그 사당이 있던 자리에 가마야마 진자(陶山神社)를 세웠다. 니가사도[中里]의 후손들은 이 신사에서 오늘날까지 해마다 4월 8일이면 그 여인이 생전에 하던 그대로 대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도조 설화」는 크게 다섯 개의 의미 화소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화소는 강제납치 화소이다. 진해 왜성의 장수인 마쓰라[松浦鎭信]가 웅천의 도예 기술자들을 그의 영지(領地)인 규슈 나가사키현 히라토섬(九州長崎縣平戶島)으로 끌고 가 도자기를 빚도록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화소는 도예 기술자 중 한 명인 에이 혹은 이죠[醫女]라 부르는 여인이 독창적인 도예 기술로 그곳에서 지도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화소는 이죠가 니미네 사당을 짓고 조선에서의 생활과 삶의 방식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네 번째 화소는 왜적에게 납치되어 당하는 수모와 한을 이국에서 조국의 도예 기술을 심음으로써 스스로를 달래며 도조(陶祖)로 추앙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화소는 이죠가 죽자 후손들이 그녀를 도조신(陶祖神)으로 섬기기로 하고 가마야마 다이메이신(窯山大明神)이라 이름 하여 가마야마 진자(陶山神社)를 창건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