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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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禮谷里-孝德閣- |
이칭/별칭 | 예곡리 효덕각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예곡리 효덕각」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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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효덕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예곡리 |
성격 | 효행담(孝行談)과 덕행담(德行談) |
주요 등장 인물 | 권태전(權泰銓) |
모티프 유형 | 권태전의 효행과 덕행(德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예곡리의 효덕각에 담긴 효행담.
[채록/수집 상황]
「예곡리의 효덕각 이야기」는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예곡리 효덕각」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합포구 예곡리에 안동 권씨(安東權氏) 사인(士人) 권태전(權泰銓)의 효행(孝行)과 적덕(積德)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덕각(孝德閣)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사정이 있어서 철거 되어 문중의 권오명 씨가 비(碑) 등을 보존하고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 효덕각에 기록된 권태전의 효행을 간략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군(君)은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 어버이를 봉양하더니 어머니가 병이 나자 40 리 밖 칠원에서 약을 구해 어두울 때 돌아오던 중 산길이 험해서 길을 못 찾고 헤맬 때 마침 호랑이가 나타나 동구까지 길을 인도하였다고 한다. 또 아버지가 각기병에 걸려 고생하는데 백약이 무효라 밤마다 목욕하고 하늘에 빌어 나를 대신하게 해달라고 여러 달을 비니 꿈에 신령이 나타나 약을 알려주어 병이 낫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를 모시면서 언제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다. 그때 어머니 나이 83세로 이질에 걸려 고생할 때 군은 옆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면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치우면서 변소에 가지 않게 하였다. 어머니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자 군은 늙었는데도 불구하고 뛰고 두드리며 애통해 하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이 감탄하여 효자라 칭하였다.
군은 어릴 때 집이 가난하여 부모에게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다가 부모가 돌아가신 후로는 자력으로 재산을 늘려서 부자가 되었다. 그는 “돈을 모아서 쓸 줄을 모른다면 어찌 돈이 귀하겠는가.” 하며 많은 돈을 풀어 친지들을 도와주고 특히 교육을 중요시 여겨 거액을 희사하였으며 땅 수백 평을 용수로 공사에 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소작인들에게 연세(年稅)받은 것이 백여 석이나 되었는데 이것도 받지 않는 등 군이 베푼 덕행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모티프 분석]
「예곡리의 효덕각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 때 깊은 산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인도 해 주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친이 각기병에 걸리자 신령이 나타나 치료약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의 모티프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은 민담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태전의 ‘효행’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의도된 장치이다. 마지막 모티프는 자력으로 돈을 모아 이웃을 도왔다는 ‘적덕담’(積德談)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