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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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龍院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산170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양화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2년 - 진해 용원 유적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1차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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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4년 - 진해 용원 유적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2차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8년 - 진해 용원 유적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3차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2년 - 진해 용원 유적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4차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3월 - 진해 용원 유적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구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4월 30일 - 진해 용원 유적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구제 발굴 조사 종료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7월 14일 - 진해 용원 유적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구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12월 28일 - 진해 용원 유적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구제 발굴 조사 종료 |
현 소재지 | 진해 용원 유적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산 170 |
성격 | 주거지|조개더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에 있는 삼한 시대의 주거지 및 조개더미 유적.
[개설]
진해 용원 유적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1982년·1984년·1988년·1992년에 지표 조사를 실시한 유적이다. 1994년 녹산 국가 공업 단지 조성 구역 내에서 조개더미 유적이 발견되면서 동아 대학교 박물관이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이 유적은 용원 조개더미로 알려져 있었지만 유적의 정확한 규모나 성격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1차 발굴 조사가 완료될 무렵 지하에 상당한 두께를 가진 조개껍데기층이 존재하고 그 주변에 주거지 등의 생활 유구가 집중된 것이 확인되어 조사를 연장하여 2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주거지 21기, 고상 건물지 4동, 조개껍데기층과 작은 항아리, 그릇받침, 컵형 토기, 화로 모양 토기 조각, 받침과 손잡이가 있는 작은 항아리[유대파수부소호], 그물추, 지석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건립 경위]
용원 유적은 용원 초등학교 맞은편 높이 26m 정도의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형성된 용원 조개더미를 포함하는 유적으로, 지표 조사에서는 삼한 시대 시루 저부와 호형 토기가 채집되었다. 한국 토지 공사에서 시행한 녹산 국가 공단 조성 과정에서 용원 조개더미가 위치한 구릉을 토취장으로 사용할 것이 확정되어 원지형의 훼손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1994년 3월부터 4월 30일까지, 같은 해 7월 14일부터 12월 28일까지 2차례에 걸쳐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위치]
진해 용원 유적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산170 일대에 있다. 북동쪽의 보배산에서 해안으로 뻗어 내린 사면 말단과 연결되는 돌출된 독립 구릉[26m] 정상과 남사면에 해당한다. 북쪽에는 국도 2호선이 지나가고, 인근에 용원 유물 산포지가 분포한다.
조개더미가 형성될 당시의 용원 유적은 독립 구릉 아래까지 해수면이 미쳐서 마치 반도와 같은 지형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동쪽과 남쪽은 남해안과 면하고 북쪽은 불모산의 남쪽 사면과 연결된다. 또 서쪽은 안골포와 연접하지만 유적이 형성될 당시에는 바다와 맞닿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유적의 구릉 정상부에서는 움집 터가 확인되고 남쪽 구릉 사면에서는 조개껍데기가 깊이 퇴적된 조개더미가 확인되었다.
1. 주거지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원형에 가까운 것 16기, 방형 5기와 고상 건물지 4동 및 구덩 유구가 확인되었다. 전체적으로 구릉 정상부에 주거지가 주로 밀집하고, 남사면과 그 주변에 저장 구덩이와 같은 특수 용도의 기둥구멍이 위치한다. 공간적 분포를 보면 평면 형태가 방형이나 장방형인 유구는 구릉 서쪽에 분포하고, 원형은 중심부, 고상 건물지는 동쪽에 배치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10㎡ 이하인 것이 5기, 20㎡ 이하인 것이 2기, 30㎡ 이하인 것이 9기, 40㎡ 이하인 것이 3기, 40㎡ 이상인 것이 2기이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와 온돌이 확인되는데 화덕 자리는 상면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치는 곳에 많이 위치한다.
유물로는 적갈색 연질의 옹, 바리, 항아리를 비롯하여 경질의 굽다리접시, 아가리 큰 항아리, 그릇받침 등의 토기류와 그물추, 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2. 조개더미
조개더미는 정상부를 중심으로 비교적 정연하게 퇴적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후대의 경작으로 인하여 구릉 아래로 갈수록 교란 현상이 심한 상태이다. 조개껍데기층의 퇴적 양상은 전체적으로 정상부에서 아래쪽으로 퇴적되어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정상부에 가까운 것들이 먼저 퇴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교란된 퇴적층의 두께는 아래쪽으로 갈수록 두껍게 나타난다.
조개더미가 조사된 범위는 길이 30m, 너비 15m의 규모이며, 가장 깊은 퇴적층이 170㎝ 정도이다. 조개껍데기층은 15개의 층위로 구분된다. 또 퇴적 양상은 점토층과 홍합 껍질이 퇴적된 소토층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 껍데기가 주류를 이룬다.
유물은 낙동강 하류 지역 삼한 시대 유물과 큰 차이가 없어 주변 지역과 교류가 빈번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상층에서 출토된 토사기나 제1층에서 출토된 유대파수부소호는 일본 초기 경질 토기가 공반되는 유적에서도 출토되는 것이다.
조개껍데기층에서 확인된 자연 유물로는 소량의 조와 보리 외에는 강치·고래·굴·백합·꼬막 등의 수산물과 가마우지·오리 등의 바닷새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현황]
발굴 조사 후 이 지역에는 진해 동부 도서관·용원 중학교·용재 공원 등의 공공 시설 및 상가·주택·도로 등이 조성되어 유적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용원 유적은 규모·형태·구조·분포 상태 등이 청동기 시대 주거지의 맥을 이은 것으로 이해되며, 출토된 유물의 성격으로 미루어 사회적으로 안정된 삼한 시대 세력 집단의 근거지로 추정된다. 유적에 거주한 집단은 대략 3~4세기경 농경 생활보다 어로 중심의 사회구조를 갖추었고, 일본 지역과도 교류한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