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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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本海戰記念塔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윤상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 정상에 있는 일본 해군의 러일 전쟁 전승 기념탑.
[개설]
일본은 1904년 러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대규모의 군대를 한국에 진주시켜 창원·마산·거제 등 진해만 일대를 중심으로 한 주요 지역을 사실상 강점하고 여기에 거제도 송진포의 해군 방비대 등 여러 군사 기지를 설치하였다. 일본군은 이들 기지에서 함포 사격과 해상 훈련 등 장차 러시아군과의 전투에 대비한 모든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오랜 항해를 거친 러시아 발틱 함대를 1905년 5월 쓰시마[對馬島]와 울릉도 근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격파할 수 있었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한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하였고 결국 1910년 한국을 병탄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일본은 또한 전쟁에 대비하는 군항 예정지로 진해 지역을 선정하고 1910년부터 군항 건설 공사를 시작하여 1922년 완료하였다. 군항 건설 공사의 진척에 맞춰 1912년 4월에는 거제도 송진포에 있던 해군 방비대가 이전해 왔고, 1916년 3월에는 진해 요항부(鎭海要港部)가 설치됨으로써 진해는 군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건립 경위]
1929년 러일 전쟁 25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해전 승리의 배경이 되었던 거제도 송진포의 유지들 사이에서 기념탑을 건립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이 보다 더 큰 규모의 사업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조선 총독부 정무 총감 이케가미[池上四郞]를 총재, 진해 요항부의 사령관 키요카와[淸河純一]와 진해 요새 사령관 사쿠라이[櫻井之助]를 명예 회장, 경상남도 지사 미구치[水口隆三][이후 須藤素]를 회장, 원수 백작 도고[東鄕平八郞], 내각 총리대신 겸 외무대신 다나카[田中義一] 이하 내각과 각 군(軍)의 대신 등을 고문으로 하는 대규모의 ‘일본해 해전 기념탑 건설회’가 구성되었다. ‘건설회’는 기념탑 건립 예산으로 15만 엔을 책정하는 한편, 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기부금 모금 사업을 벌인 끝에 제황산 꼭대기에 기념탑 건립 공사를 완료하고 1929년 5월 27일 진해 원근의 2만 인파가 모인 가운데 해군 비행정의 축하 비행을 포함한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형태]
일본 해전 기념탑은 러일 전쟁에서 발틱 함대를 물리친 일본 연합 함대의 기함(旗艦)인 미카사[三笠]의 선교(艦橋)와 마스트[mast, 돛대]를 형상화하였다. 탑의 정면에는 러일 전쟁 해전 승리의 주역인 도고[東鄕平八郞]의 글씨로 “일본해 해전 기념탑(日本海海戰記念塔)”이라 새겨져 있으며, 탑의 정상인 금시조(金鵄鳥)까지의 높이가 34.85m에 달했다고 한다.
[현황]
기념탑은 해방 이후 1967년 철거되고, 그 자리에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9층의 ‘진해탑’이 다시 세워졌는데, 진해탑은 높이 28m, 연건평 3,068㎡로 진해 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1998년부터 진해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