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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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錫麟 |
영어음역 | Gu Seoklin |
이칭/별칭 | 성래(聖䚅),정람(情嵐)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용 |
[정의]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가계]
구석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성래(聖䚅), 호는 정람(情嵐). 승지공파(承旨公派) 전북(全北) 문중으로, 구설(具雪)로부터 14세 손이며, 봉암(鳳岩) 구정려(具廷呂)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한웅(具漢熊)이다.
[활동사항]
구석린은 당시 창원부 일원에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나 분명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특히 부친이 세상을 떠나 여묘살이를 하던 중 모친마저 별세하여 6년 동안 시묘로 효를 행하였다. 시묘살이 중 산에 불이 났으나 산소 근처에서 저절로 꺼지고 사나운 호랑이가 와서 시묘살이를 보호하고 꿩들이 스스로 날아오는 등 이적이 많았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743년(영조 19) 영조의 명으로 정려가 내려졌고 포창품과 관아의 곡식이 도착하였으나 본인이 극구 사양하여 고을 군수는 도를 거쳐 왕께 상달하여 포창의 은전이 환수되었다 한다. 문중 세보에 의하면,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산천동 자좌(子坐)에 정려각이 세워지고 삼기면 류봉리에 정려비가 세워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