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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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남원 출신 소학섭의 시문집. 소학섭(蘇學燮)[1856~1919]은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중절리에서 아버지 구파(鷗波) 소병규(蘇秉圭)와 어머니 남원양씨(南原梁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극중(極中)이고, 호는 남곡(南谷)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김익휘(金益輝)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 두 선생에게 나아가 수학하고 후진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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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전통시대의 교육은 주로 향교, 서원, 서당에서 실시되었다. 특히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재정에 의해 설치 운영된 지방의 중등 교육 기관이다. 향교의 목적은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의 유생들에게 유학을 강의하고 아울러 지역 문화의 향상과 유교를 진흥시키기 위함이었다. 남원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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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나를 단일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동계 혈족. 양탕(良宕)이 광순사로 신라에 입국한 후 내물왕으로부터 성주·왕자의 작호를 받으면서 양(良)을 양(梁)으로 고쳐 성씨를 부르게 되었다. 제주에 거주하던 양씨의 일파인 양탕(梁宕)의 8세손 양자영(梁自瀛)이 신라 경덕왕 때에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지게 되면서 제주양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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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행정리. 안(安)씨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안골이라 하였는데, 뒤에 한자로 바뀌면서 뜻이 와전되어 안골이 내(內)동으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안골과의 경계로 가운데 숲(古松)을 두고 그 안쪽은 숲 안, 그 바깥쪽은 숲 밖이라 하였으나,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숲 안이 내동으로, 숲 밖이 외동으로 되었다. 내동마을에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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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에 있었던 서당. 1908년에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에 사는 순흥안씨와 남원양씨 문중이 서로 합의하여 마을 앞 연당의 서재에서 학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안골서당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김사헌, 김사문 등이 초기 훈장으로 부임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으며, 해방 후 1949년까지 운영되었다. 현재 서재는 남아 있지 않고 터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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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법정리로서의 대정리에는 중기리(마을)·대정리(마을)·매동리(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으며, 산내면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대정리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솔고개에 큰 샘이 있어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큰샘몰’이라 하였다. 솔고개는 고개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솔고개라고 하였다. 중기리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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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룡리는 보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2.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도촌마을, 용평마을, 안평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쌀과 보리 위주의 농사를 지으며, 일부는 축산과 양잠업에 종사한다. 도촌마을은 천황봉 계곡에서 흘러내린 맑은 하천이 오고가는 길손의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하여 똘촌이라 불리다가 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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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앞산 도산을 가운데 두고 상도리와 하도리로 구분되었으나, 병합하여 주생면 도산리가 되었다. 법정리로서의 도산리는 상도리와 도산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상도리와 하도리가 있어 상도리는 웃말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도리는 1994년 이전까지는 하도(下道)로 불렀다. 그런데 주생면과 인접한 금지면 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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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1840년(헌종 6)에 남원도호부 보현방의 양평진사 양독영에 의해 설립된 학당이다. 남원양씨 문중을 비롯한 인근 마을의 학동들에게 학문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상신마을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1㎞ 떨어진 해발 150m의 완만한 경사면 마을 안쪽 산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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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봉화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과 같이 생겼고, 윗다리[上橋]는 솥의 뒤 이마, 아래다리[下橋]는 솥의 앞이마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형국을 따서 가마마을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가마말’이라고도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마말이 변하여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꾸어 부동(釜洞)이라 하였다. 14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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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상동리는 행정리인 부동리를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이언면 지역으로 이언면의 위쪽이 된다 하여 웃몰, 또는 상동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부동리와 상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동리라 하였다. 상동리는 조선 전기인 성종 때 옥천조씨가 제일 먼저 정착하였으며, 백여 년 후 경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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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사설 초등 교육기관. 서당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 교육기관으로 마을마다 설치되어 어린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서당의 기원은 멀리는 고구려의 경당(扃堂)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그 존재가 확인되지만 크게 번창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였다. 서당은 처음에는 양반 가문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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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세운 사학 위주의 학문 기관. 서원은 최초 중국 당나라 궁중에 설치된 집현전 서원(서재)을 모태로 한 사학(私學)으로 출발한 학문연구 집단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부터 국가의 학문 중추기관으로 운영되면서부터는, 관학기관(성균관, 향교)의 부진과 학문적 고착화를 극복하는 향촌 교육기관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전국에서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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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사람들의 성(姓)을 이르는 명칭.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거니와 전해지는 자료도 많은 부분 소실되어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으로 고조선부터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성씨(姓氏)가 이미 단군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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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동리와 부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송동면의 면소재지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소터, 솔터, 또는 우동이라 불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이라고 한다. 마을 건너편 안산은 쇠구시라 하여 구시골로 부르고 있어 송기마을이 와우혈이란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우동리는 소의 형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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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송내리는 지리산 줄기인 원통봉 자락에 자리 잡은 산간 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봉수리라 했는데, 그후 큰솔 안·작은 솔안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와 대촌리 각 일부와 흑성면의 신기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내리라고 하였다. 고려 전기인 980년(경종 5) 전주최씨와 오씨가 처음 터를 잡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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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상리는 문치리와 오촌리·원촌리·생촌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송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내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송상리라 하였다. 문치리는 마을의 지형이 물래 형국이라 하여 물래재로 불리던 곳으로, 마을에 사당이 생긴 뒤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글월 문(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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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는 원래 섬진강 물이 흐르던 곳으로 큰 물이 지고 나면 새로운 자리에서 배를 띄우게 된다고 하여 ‘새로울 신(新)’자와 ‘배 선(船)’자를 쓴 신선리로 불렸다고 한다. 뒤에 새로운 터에 마을을 이루었다하여 ‘새로울 신(新)’자와 ‘터 기(基)’자를 쓴 ‘신기’가 되었다. 가덕은 원래 ‘더덕정(더덕쟁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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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기(新基)와 정치(正峙)에서 한 자씩 따서 신정리(新正里)라 하였다. 신정동은 남부·중부·북부로 나누어져 있다. 남부 신정동은 넓은 가방들 일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300년경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새로 터를 잡았다 하여 ‘새터’ 또는 ‘신기(新基)’라 부른다. 중부 신정동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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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파리는 하신리와 상신리·파동리·중신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상신리는 보절면의 면소재지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중현리·파동리·신동리·신흥리와 적과면 도촌리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동과 파동의 이름을 따서 신파리라고 하였다. 하신리는 과거 신흥리로, 상신과 하신 두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아랫부분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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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열녀. 고조부는 홍문관교리 이적(李迪)이며 아버지는 이영진(李榮震),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梁氏)이다. 남편은 순흥안씨 안국로의 아들인 안희도(安希道)이다. 이씨 부인은 규방의 규수로서 예의범절과 몸가짐이 정숙하였으며 19세에 결혼하여 부모 섬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남편에게는 공경으로서 아내의 도리를 다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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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가리는 목가리와 양강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원시에서 북동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도 15호선이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 마을로는 갱거리, 나뭇거리, 양강, 구룡새터 등이 있다. 본래 남원군 백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목가리와 기양리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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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旌閭閣) 및 비문. 양대박은 임진왜란(1592) 때 남원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운암 전투에서 왜병을 격파하였고, 그의 아들 양경우는 군량미를 모아 명나라 군대에 제공하였다. 이 비는 1796년에 세워졌으며, 양대박 부자의 충절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양대박의 비와 정려문은 조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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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호남좌도 농악의 명인. 양순용은 양병철과 권일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원양씨 용성군파 15대손이다. 박학삼에게 가락과 굿의 체계를 배우고 전라북도 순창 동계의 김문식에게 ‘부포놀음’을 배웠다. 양순용은 1941년 임실군 필봉리에서 태어났고 13살 되던 해부터 박학삼 상쇠 밑에서 끝쇠를 치기 시작하여 14살에 필봉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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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고려 충신 양능양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용장서원은 고려 목종 때 김치양 일파의 난으로 은거한 절의의 충신 양능양(梁能讓)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고려 때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양주운(梁朱雲)과 고려 후기에 대사성을 지낸 김구용(金九容), 임진왜란 때의 공신 양대박(梁大樸)을 봉안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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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용정동 구룡마을에 있는 수령 365년의 느티나무. 높이 18m, 흉고둘레 4.1m, 근원둘레 5.3m, 수관폭 20m이다. 지상 1.5m 정도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퍼져서 수형이 잘 발달되었고 매우 아름다운 나무이다. 나무의 나이는 365년 정도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남원양씨가 처음 입주 하였으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1597년경 남원윤씨가 정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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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촌리와 포암리의 이름을 따서 유암리라 했다. 유촌리에는 1535년(중종 30) 봄에 죽성박씨 연주라는 사람이 처음 정착하였다. 이 사람은 풍수지리설에 조예가 깊어 견두산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춘삼월 버드나무에 꾀꼬리집이 있는 유지앵소(柳枝鶯巢)의 길지가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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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천(永川). 고려 때 효행이 깊고 정치가로도 이름이 높았던 영천부원군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이며, 이승언의 맏아들이다. 이중엽은 용모가 단정하고 효심이 극진하여 학문을 즐겼는데, 이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남원양씨에게서 받은 교육 때문이었다. 부모가 먹고자 하는 음식이나 일용품이 있으면 무엇이거나 좋은 것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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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이희량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에 활약한 무신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영교위를 거쳐 선전관, 절충장군(折衝將軍), 덕만보권관(德萬堡權官)에 제수되었다. 그는 말년에는 운봉(雲峰)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 본관은 영천(寧川), 자는 형재(馨哉), 호는 대명거사(大明居士)이다. 시중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이며,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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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일대리는 마을이 길게 뻗어 있어 띠와 같다는 의미로 일대(一臺, 逸臺)라 하였다가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마을이라 하여 ‘일대(日臺)’로 바뀌었다. 일대리에 속하는 부동리는 뒷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 같다 하여 ‘가마말’ 이라고 했는데, 줄여서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釜洞)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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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1547~1615]는 선조와 광해군 연간에 주로 활약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전라도도사, 금구현령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등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사직하였다. 이후 벼슬을 단념하고 시문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는데, 사회 현실과 우국지정을 읊은 문학 작품을 남겨 문명(文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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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충리는 마을 뒤편에 모셔진 황진 장군의 사당 정충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반송리는 원래 새술막이라 했다. 이곳은 과거 전주, 곡성, 순창, 남원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이들을 위한 새로 생긴 주막이 있어 새술막이라 불렀다. 그 뒤 마을 뒷산에 반송정이란 정자가 있어 마을 이름을 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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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죽항동 동부 지역을 관통하는 섬진강 요천수의 소금배 해상 교통로와 여름 홍수 등의 하천 범람에 따른 풍수지리의 숲정이와 대나무숲 조성의 결과로 만들어진 동림숲 내의 대나무골이라 불린 데서 포구(상항리)와 대나무 숲(죽우리)이라는 의미의 ‘죽항(竹巷)’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1300년경 남원양씨(南原梁氏) 정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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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임진왜란 당시 군사 요새지로서 전투군단의 편성에 있어서 전군(前軍)·중군(中軍)·후군(後軍)과 선봉부대가 있었는데, 이중 중군이 주둔한 연유로 인해 마을 이름을 중군이라 하였다. 1385년(고려 우왕 10)에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자손들이 터를 잡아 살아오다가 1590년경 배씨들이 몰락되었다. 이후 전주최씨(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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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에 있는 민속 관광단지. 1385년(고려 우왕 10)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자손들이 터를 잡고 살다가 1590년경 배씨족이 몰락한 후 전주최씨(全州崔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안동권씨(安東權氏), 남원양씨(南原梁氏) 등 4개 씨족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인월면 중군리는 임진왜란 당시 군사 요새지로서 전투 군단 편성 중 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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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사방이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높은 산으로 포위되어 있고, 그 가운데 마을 터가 있다 하여 ‘가운데 중(中)’자와 ‘터 기(基)’자를 써서 중기리라 하였다. 또 마을 터가 중앙의 길지라 해서 중기라 하였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중터라고 불렀다. 마을이 번창하여 세대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또 위아래로 뜸이 생긴 후로는 상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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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중동리는 원래 남원군 이언면 지역으로, 이언면의 중심이 된다 하여 가운데몰, 본동, 중동이라 했다. 중동을 일명 이언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일화가 전해온다. 조선 예종 때 두사촌이란 중국인이 휴식 중 교룡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중동리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좋은 명당촌이 어디 있는가” 하고, 혼잣말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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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오촌리는 자래울 또는 오촌이라 하였다. 부친의 묘를 쓰기 위해 마을 앞 당산의 땅을 파던 연안이씨는 땅속에서 바위가 나오자 그 바위를 깨뜨렸다. 그러자 바위 속에서 자라 한 마리가 기어 나온 후 물이 솟았다고 한다. 연안이씨는 묘를 다른 자리로 옮기고 물이 솟은 자리에 우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자라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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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이곡리의 본래 이름은 배실이다. 마을의 모양이 배를 잡아 맨 것 같다 하여 처음에는 배실이라 불러오다 땅 모양이 배를 잡아 맨 것보다는 배꽃이 사방에 날려 있는 형태라 하여 배나무의 배실로 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의 지형이 배꽃이 떨어진 이화낙지형국(梨花落地形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실로 불려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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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있는 도로. 한우물길은 한우물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연화리(蓮花里)라 했다. 마을에 가뭄에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는데, 마을 앞 논을 관개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여 큰 우물이란 뜻의 한우물로 불렀다고 한다. 뒤에 이 샘이 교룡산의 정기가 뭉쳐 솟아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한우물로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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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원향교(南原鄕校)가 위치한 데서 향교동(鄕校洞)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향교동 교촌은 1443년(세종 25) 남원향교가 덕음봉(관덕정 부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후에 향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향교가 있어 교촌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용정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