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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362
한자 松上里
영어음역 Songs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상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정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3,74㎢
총인구(남, 여) 150명(남자 72명, 여자 78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73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송상리는 문치리와 오촌리·원촌리·생촌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명칭유래]

본래 남원군 송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내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송상리라 하였다. 문치리는 마을의 지형이 물래 형국이라 하여 물래재로 불리던 곳으로, 마을에 사당이 생긴 뒤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글월 문(文’)자를 써 문치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오촌리의 원래 이름은 자래울인데, 마을 남쪽에 자라 모양의 바위가 있고, 주위의 산 형세가 울타리를 둘러친 형국이라 하여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촌이라 했다. 생촌리의 원래 이름은 생장촌이었으나 발음이 와전되어 생강촌, 생촌으로 불린다.

[형성 및 변천]

문치리는 원래 남양홍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는데, 1307년(충렬왕 33) 양성융이란 사람이 이곳에 선영이 있어 정착한 후 남원양씨의 세력이 늘어났다. 1970년대에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될 만큼 마을 주민들이 서로 돕고 단결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오촌리는 1600년경 전주이씨가 터를 잡아 정착한 후 전주최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부유해졌다. 원촌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남원진씨가 처음 터를 잡았고, 정유재란 때 박기훈이란 사람이 이주하여 남원진씨와 밀양박씨가 함께 마을을 형성하고 살다가 김해김씨가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생촌리는 약 2백 년 전부터 양씨, 유씨, 윤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흑송면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월 송동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 통폐합 때에 남원시 송동면 송상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문치리는 송동면에서 제일 높은 산간 지대로 전 면적의 80%가 산지이다. 북쪽으로 남원산성을 등지고 있으며, 동쪽은 지리산을, 남쪽으로는 송동면에서 제일 높은 원통산을 바라보고 있다. 하천이 없는 관계로 농번기에는 물 때문에 곤란을 당하였으나, 경지 정리 후 2005년부터 동화댐 농업용수가 공급되면서 물 부족 문제가 완전 해결되었다.

오촌리는 마을을 기점으로 동·북·서편으로 조그마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고, 남쪽으로 올망졸망한 전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남서쪽으로 송동면 최고봉인 원통산이 자리 잡고 있다.

원촌리와 생촌리는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데, 언뜻 보면 송림으로 둘러쌓여 있는 꼴이다. 그중 생촌리에는 수송제라는 저수지가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현황]

송상리의 면적은 3,74㎢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3세대, 150명(남자 72명, 여자 7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야산이 많아 농경지가 산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1970년대 이래 이농 현상이 잦아서 젊은이들은 적고 노인들이 많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예전에는 미곡 중심의 농업이 주업이었지만, 현재는 한우와 양돈·젖소 등 축산업에 종사하는 주민들과 복숭아·배·포도 등 과수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문치리에 남원양씨 효자각이 있고, 군도 7호선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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