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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2560
한자 人文地理
영어음역 inmun jiri
영어의미역 human geograph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치영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공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 분야.

[개설]

남원시는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있는 내륙 도시로,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임실군·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 북쪽은 전라북도 장수군에 접해 있다.

남원시는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고, 섬진강의 물길을 통해 남해와 통하므로 예로부터 전략적으로 중요하였다. 지금도 전라북도 순창군과 임실군, 전라남도 곡성군과 구례군을 세력권에 포함하고 있는 지방 중심 도시이다. 또한 남원시는 국가지정 문화재 38점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춘향전」과 동편제를 낳은 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2009년 말 현재 면적은 752.63㎢로, 전라북도의 시·군 가운데 완주군, 진안군에 이어 세 번째로 넓다. 행정구역은 운봉읍과, 주천면·수지면·송동면·주생면·금지면·대강면·대산면·사매면·덕과면·보절면·산동면·이백면·인월면·아영면·산내면 등 15개 면, 동충동·죽항동·노암동·금동·왕정동·향교동·도통동 등 7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산내면이 남원시 전체 면적의 13.7%를 차지해 가장 넓으며, 그 다음은 운봉읍(9.2%), 주천면(7.3%), 산동면(7.1%) 등의 순이다.

2009년 말 현재 남원시 전체 인구는 88,496명(남 43,568명, 여 44,928명)으로, 전라북도의 전체 인구 중 4.8%를 차지하며 14개 시·군 가운데 인구 규모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원시의 행정구역별로는 도통동이 16,801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고 덕과면이 1,103명으로 가장 적다.

[변천]

남원시는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이자 지역 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685년(신문왕 5) 남원에 소경(小京)을 설치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고려에 들어와서는 940년(태조 23) 남원부(南原府)가 되었고, 1310년(충선왕 2)에 대방군(帶方郡)으로 고쳤다가 뒤에 남원군(南原郡)이 되었다.

1360년(공민왕 9) 다시 남원부로 승격되었다가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에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가 되었다. 당시 남원에 도호부가 설치된 것은 군사 또는 행정적으로 남원이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원도호부는 1895년(고종 32)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군이 되었다.

현재의 운봉읍·인월면·아영면·산내면 등은 조선시대 운봉현(雲峰縣)이었으나 1895년 운봉군이 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원군에 합쳐졌다.

1931년 남원군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으며, 해방 이후 성장을 거듭한 남원읍은 1981년 남원시로 승격되면서 남원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다시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오늘날의 남원시에 이르게 되었다.

[인구]

남원시의 인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는 남원도호부와 운봉현의 인구가 각각 4,912명과 551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 후 1789년의 인구를 집계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남원도호부와 운봉현의 인구가 43,411명과 7,055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남원도호부의 인구는 전국 334개 군현 중 37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1909년의 조사에서는 남원군에 74,895명, 운봉군에 19,00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도 남원군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1925년에는 108,882명, 1935년에는 115,223명에 달하였다.

해방 후인 1948년 154,005명이었던 남원군의 인구는 한국전쟁으로 약간 감소하였다가 다시 증가하여 1965년에 187,965명으로 최고에 달하였다. 그 후로는 차츰 감소하여 1975년 175,289명, 1985년 140,243명, 1995년 109,224명이었으며, 2007년 10월 말 현재 89,632명으로 체계적인 인구센서스가 실시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남원 지역의 인구 감소는 1970년대 이후 도시화·산업화로 인한 대도시로의 인구 이동에 따른 것으로, 2009년의 인구 이동은 전입 12,286명, 전출 12,901명을 기록하였다.

2009년 말 현재 인구 밀도는 117.6명/㎢이며, 인구의 성별 구성은 남자 43,568명, 여자 44,928명으로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년 인구는 20.2%를 나타내고 있다.

[토지 이용]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조선시대에는 농업적 토지 이용이 주를 이루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남원도호부와 운봉현에 각각 12,508결(結)과 1,796결의 농경지가 있으며, 두 곳 모두 논이 밭보다 많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어 남원의 토지 이용은 농경지, 그 중에서도 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8세기 후반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남원부에 논은 7,180결 23부 2속, 밭은 2,880결 35부 2속이 개간되어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의 조선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남원군의 논 면적은 6,931.3정보, 밭 면적은 1,322.8정보로, 논이 전체 농경지 면적 중 8할 이상을 차지하였다.

2009년의 토지 지목별 현황을 살펴보면, 임야가 63.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점하고 있으며 논이 17.2%, 밭이 5.4%, 도로가 3.3%로 나타났다. 기타 대지는 1.7%를 차지하였고 공장 용지는 0.2%에 불과하였다.

[산업]

토지 이용에서 살펴보았듯이 예로부터 남원시의 산업은 농업이 주를 이루었다. 18세기 중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은 전라도의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 등인데, 논에 볍씨 한 말을 심어서 최상은 140두를 수확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당시 남원이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성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농가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25.6%를 차지해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주요 작물로는 쌀·보리·콩·감자 등 식량 작물과 상추·파프리카·오이·딸기 등 채소류, 사과·배·복숭아·포도 등 과실류가 있다.

특히 해발 고도가 높은 운봉읍·인월면·아영면·산내면 등은 일교차가 크고 여름에도 시원하여 고랭지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감자·상추·포도·사과 등이 주요 생산품이다.

남원시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조업이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남원 목기와 한지 제조를 꼽을 수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재료로 한 목기 제조는 조선시대부터 성행하였다. 현재는 운봉읍·인월면·산내면 등에 목기 제작 단지가 조성되어 제기와 생활용기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관광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곳곳에 자생하는 닥나무와 깨끗하고 풍부한 물을 이용한 한지 제조 역시 산내면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아영면에서도 한지가 생산되고 있다. 또한 남원시에는 광치1단지, 광치2단지, 어현농공단지, 인월농공단지, 노암농공단지 등 5군데의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섬유·식품·화학·기계·목공예 등의 공장이 입주해 있다.

남원시는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방 중심 도시이다. 재래시장으로는 남원공설시장, 남원용남시장, 남원터미널시장, 인월공설시장, 운봉공설시장 등이 있으며, 인근의 순창·임실, 전라남도 곡성·구례, 경상남도 함양 등의 주민들도 이 곳을 이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로 차츰 전주와 광주에 상권을 빼앗기고 있다.

[교통]

남원시는 예로부터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전라선 철도가 경유할 뿐 주요 교통축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이러한 교통 조건이 지역 발전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1984년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를 연결하는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남원시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는 노선으로 완공되고, 1988년 전주와 연결되는 17번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어 외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17번 국도는 남쪽으로 곡성군·순천시를 거쳐 여수시까지 연결되는데, 그 노선은 전라선 철도와 거의 유사하게 일치한다.

이 밖의 도로로는 경상남도 남해군과 전라남도 구례군을 통과하여 남원으로 들어와 전라북도 장수군으로 빠져나가는 19번 국도, 서쪽의 순창군에서 남원시를 동서로 관통해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가는 24번 국도가 중요하며, 721번 지방도로·729번 지방도로·730번 지방도로·826번 지방도로·1084번 지방도로가 남원시 곳곳과 외부를 이어 주고 있다.

2009년 현재 남원시의 도로 총연장은 약 665.63㎞이며 포장율은 70.4%이다. 남원시의 주요 고개로는 조선시대 남원과 운봉의 경계이며 소백산맥의 분수계인 여원치(女院峙)[470m],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팔량치(八良峙)[500m], 구례로 넘어가는 밤재[489m] 등이 있는데, 밤재는 아래쪽에 터널이 건설되어 현재는 이용되지 않는다.

익산과 여수를 잇는 전라선 철도는 1931년 전주-남원 간이 먼저 개통된 후 1936년 전체 노선이 개통되었다. 남원시의 서쪽을 통과하고 있으며, 남원역·산성역·금지역·서도역·주생역 등이 설치되어 있다.

[관광]

남원시는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智異山)광한루원(廣寒樓苑), 실상사(實相寺), 만인의총(萬人義塚) 등을 비롯한 116점의 문화재가 있고, 동편제 판소리와 「춘향전」의 고장이라는 점에서 어느 지역보다도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러한 관광 자원의 개발이 미흡하였고 숙박 시설 등 관광 기반 시설도 불충분하여 관광객 숫자에 비해 관광업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았다. 이에 남원시는 다양한 관광지와 축제, 테마·체험관광의 개발을 통해 관광 도시로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최근 개발된 관광지로는 891,000㎡의 부지에 국립민속국악원, 춘향문화예술회관, 춘향테마파크, 남원향토박물관, 전망대, 산책로, 동편제 거리 등을 갖춘 남원관광지와 소설 『혼불』의 무대를 체험할 수 있는 혼불문학마을 등이 있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다양한 내용을 통해 최근 세계적인 사랑 축제로 발돋움한 춘향제, 창극 「흥부전」과 길놀이, 그리고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등으로 이루어진 흥부제,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주제로 한 바래봉 철쭉제, 뱀사골 단풍제 등이 있다. 테마관광으로는 춘향관광, 흥부관광, 변강쇠옹녀관광, 동편제판소리관광, 지리산관광 등이 개발되어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남원시를 찾은 관광객은 482만여 명에 달했다. 이는 2000년의 405만여 명에 비해 상당히 증가한 편이나 관광 수입에서는 2001년에 약 103억 5천만 원, 2005년에는 약 73억 3천만 원을 기록해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후 방문객수가 400만 전반대를 오르내리다가 2009년에는 396만여명에 그쳐 관광객 방문수가 침체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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