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
1919년 3월 15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경성에서 울려버진 독립만세의 함성은 고종의 인산을 보러 상경한 각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날 인사동 태화관 앞에서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을 기다리고 있던 가평 출신의 인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정한교(鄭漢敎), 신숙(申肅)[이명:태연(泰練)], 민영순(閔泳純)이었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강주성(姜周聲)은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와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강주성은 평소 음악을 즐겨하여 1895년 3월 경부터 「조선독립가」를 지역 주민에게 보급하였다. 가평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적극 참여하였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권성남(權盛男)은 가평군 군내면 마장리[현 가평읍 마장리] 출신이다. 구체적인 가계와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권성남(權盛男)은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독립운동가. 권임상(權任相)[1887~1942]의 본관은 안동이며, 1887년 가평군 북면 백둔리 646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 권병훈(權炳薰)을 두었다. 1919년 전개된 3·1운동은 각지로 확산되었다. 가평에서도 3월 15~16일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사는 이규봉(李圭鳳)은 한문교사 출신으로, 고종의 인산...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순선(金順先)[1806~1907]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06년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에서 태어났다. 김순선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발표 등으로 발생한 을미의병에 의병장으로 가담하였다. 김순선은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 체결, 군대 해산 등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도 참여하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연상(金演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생몰년과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연상은 가평군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5일 가평 북면 일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곧 가평읍으로 확산되었고, 수백명의...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영배(金永培)의 본관은 김해이고, 경기도 가평군 상면 출신이다. 가평군 상면 연하리 출신의 김순선과는 사돈지간이다. 김영배는 1907년에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칠조약의 체결 및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 가담하였다. 김영배는 박래병(朴來秉)의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일...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영(金在爃)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87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재영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논어』와 『대학』 등 유학 경서를 익혔으며, 시서에도 능하였다.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관계로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근대 문명을 일찍 수용하였다. 1919년 3월 고종 인산을 참관하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정호(金定鎬)의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관호(寬鎬)이다. 아버지는 김재면(金在冕), 어머니는 청풍 김씨로, 1879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정호는 한학자 이규봉(李圭鳳)에게 사사를 받았다. 1911년 가평에 간이우편소가 설치되고 우편배달원을 모집할 때 선발되어 우편 배달업무를 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지봉은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출신으로 안반진 나룻배의 사공이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칠조약의 체결,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 참여하였다. 안반진 나루는 현재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있는 달전리 나루로, 조선시대에는 5일과 10일에 열리는 가평장에 주민들을 운송하는 주요...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현(金昌鉉)[1884~1934]은 188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창현의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거주하던 이규봉(李圭鳳)이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규봉은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순(閔泳純)을...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김춘수(金春洙)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명으로는 병수(柄洙)를 사용하였다. 1898년부터 의병활동에 투신한 김춘수는 1907년 소모대장 이범구(李範九) 및 의병 800명과 함께 경기도 가평·강원도 홍천·양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김춘수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한일신협약(韓日...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나봉산(羅奉山)[1860~1910]의 본관은 나주이며, 본명은 나숙식(羅肅植). 자는 공서(公瑞)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을 지낸 나항순(羅恒淳)이며, 부인은 김해 김씨 김구심(金龜心)의 딸이다. 1860년 5월 16일 가평군 하면(下面) 망동(望洞)에서 태어났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인하여 각지에서...
-
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 문신. 남정철(南廷哲)[1840~1916]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자는 치상(穉祥)이고, 호는 하산(霞山)이다. 할아버지는 남준기(南駿冀), 아버지는 남홍중(南弘重)이다. 1840년(헌종 6) 4월 27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청년 시절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 거주하였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영순(閔泳純)[1879~1929]의 본관은 여흥(驪興), 초명은 영준(泳俊), 자는 덕윤(德允)이다. 아버지는 고종 때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낸 민성호(閔成鎬)이며, 1879년 1월 27일 가평군 북면 화악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가평군 북면 소법리의 정응길(鄭應吉) 딸과 혼인하였다. 민영순은 1891년 이규봉...
-
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민영환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민단현(閔端顯)이며, 할아버지는 증영의정(贈領議政)이자 고종의 외할아버지인 민치구(閔致久)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한 민겸호(閔謙鎬)이며, 어머니는 대구 서씨 서경순(徐庚淳)...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신태성(申泰成)은 1885년 가평군 서면에서 태어났다. 신태성(申泰成)은 1907년 일본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의 체결, 군대 해산 등을 계기로 정미의병이 발생하자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군인이었던 강기동(姜基東)[1884~1911]이 1909년 의병활동을 시작하자 신태성은 강기동과 함께 가담...
-
경기도 가평군에 송덕비가 있는 조선 후기~개항기 문신. 심의면(沈宜冕)[1808~?]의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자는 주경(周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역임한 심구(沈銶), 할아버지는 예조 판서를 지낸 심풍지(沈豊之)이다. 아버지는 심능달(沈能達)이며, 어머니는 김희(金憙)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심능철(沈能哲)이다. 부인은 이노직(李魯直)의 딸이다....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 있는 개항기 열부 나주 정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열부 나주 정씨는 남편인 조원승(曺元承)이 병들어 눕자 밤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올렸으며, 병에 좋다는 약을 구하여 간병하였다. 하지만 정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1890년 6월 28일 사망하였다. 정씨는 당시 선비 집안의 풍습을 따라 구십일장을 치렀는데, 식음을 전폐하고...
-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공자의 가르침과 학문을 중심 삼아 활동하는 종교.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종교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평화로운 사회를 목표로 하였다. 중국에서 전해진 유교는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고구려에서는 유교를 가르치는 인재양성을 위해 최초의 교육기관인 태학을 건립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이 세워졌으며, 과거제도가 도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유영하(柳榮河)[1787~1868]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자는 선여(善汝)이고, 호는 보산(甫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右尹) 유기(柳謇)이고, 할아버지는 유정한(柳鼎漢)이다. 아버지는 호조 참판을 지낸 유서(柳瑞)이고, 어머니는 이인수(李寅壽)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유관(柳瓘)이...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에 있는 조종암의 대통묘에 배향된 의병장.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 어머니는 고령 신씨이다. 18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족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은 유년기에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있었...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유중악(柳重岳)[1843~1909]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백현(伯賢), 호는 항와(恒窩)이다. 아버지는 유호(柳晧)이며,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다. 유중악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과 집안 형인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6년 이후 가평의 의병활동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인근 지역인 춘천 및 이천 의병과 연합하여 펼쳐나갔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이어 단발령까지 시행되자 전국의 의병항쟁은 본격화되었다. 의병항쟁 초기에 경기도 북동부 지역의 가평군은 춘천·화천과 함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가평의 의병은 1896년 1월...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계승(李啓承)은 가평군 북면 제령리 출신으로 종교는 천도교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관구(李觀九)[1852~1922]의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직(仕直)이다. 아버지는 이국용(李國用), 부인은 영암 박씨이다. 이관구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에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규봉(李圭鳳)[1873~1961]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기남(沂南), 호는 목천(牧川)이다. 1873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서 태어났다. 이규봉은 1893년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의병이 일어나자 의병장 이충응(李忠應)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붕(李圭鵬)[1875~1950]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도여(圖汝)이다. 1875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형은 이규봉(李圭鳳)이다. 이규붕의 형 이규봉은 고종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1919년 3월 1일 서울에 갔다가 『독립신문』과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이규붕, 이규봉의 장남 이윤석(李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석(李萬錫)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준석(準錫)이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沐洞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가평 지역의 만세시위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
-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개항기 문신. 이무로(李茂魯)[1848~1906]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는 공희(公喜)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사간 이문회(李文會), 할아버지는 예조 판서 이현서(李玄緖), 아버지는 이조 판서를 역임한 자헌대부(資憲大夫) 이근필(李根弼)이다. 어머니는 풍산 홍씨(豐山 洪氏)로, 남원부사(南原府使)를 역임한 홍석모(洪錫...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이범구(李範九)의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겸 오위장 이상용(李商用)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충응(李忠應)은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의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하였다. 이범구는 이충응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고종의 강제...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식(李秉植)[1861~1938]은 가평군 천도교의 중심인물로 1919년 가평군 3·1운동 만세시위 때 자문역할을 맡았으며,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병식(李秉植)[1861~1938]은 1861년 9월 12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 920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영헌(李英憲)[1873~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49이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영헌 성품은 온화한 편이었다고 전한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의 준비가 진행되었다. 가평 지역에 3·1운동의 소식을 전파한 것은 1917년부터 목동리의 이장을 맡아...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윤석(李胤錫)[1894~1953]의 아버지는 가평군 북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이규봉(李圭鳳)이다. 1894년 2월 1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이윤석은 어릴 때 사서삼경 위주의 한학 교육을 받다가 아버지가 한문교사로 있던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에 입...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 이재학(李在鶴)은 1911년 함경북도 온성공립보통학교 부훈도를 시작으로 경기도의 가평공립보통학교[현 가평초등학교], 인현공립보통학교, 어의동공립보통학교 등지에서 1926년까지 훈도로 활동하였다. 이재학은 북면 소법리에 거주하는 친구 정석준(鄭錫俊)을 통하여 북면 만세시위 모의를 알게 되었다. 가평군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국(李貞國)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 지역의 만세시위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평에 전하면서 준비되었다. 이규봉은 아들 이윤석(李胤錫), 정흥교...
-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친일 인사. 이정로(李正魯)[1838~1923]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재(大哉), 호는 사계(沙溪)이다. 할아버지는 이호민(李好敏), 아버지는 증 의정부 참정(贈議政府參政) 이근오(李根五)이며, 생부는 이근두(李根斗)이다. 어머니는 김복순(金復淳)의 딸이다. 1838년 12월 2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한(李種漢)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싸리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평에 전하였다. 이규봉은 아들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이...
-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경현단에 배향된 조선 후기 학자.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자는 이술(而述)이고, 호는 화서(華西)이다. 초명은 이광로(李光老)이다. 아버지는 이조 참판을 증직받은 이회장(李晦章)이고,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 李氏) 이의집(李義集)의 딸이다. 부인은 고령 박씨(高靈 朴氏) 박최환(朴最煥)의 딸이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기영(張基英)[1887~1950]의 아버지는 장두환(張斗煥)이며, 1887년 5월 1일 가평군 북면 화악리 1012에서 태어났다. 양반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장기영은 유년 시절 의리가 있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천도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최초의 만...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순천(張順天)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정확한 생몰년도와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순천은 가평지역 교육가인 이규봉(李圭鳳)의 밑에서 글을 배웠다고 전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가평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3·1운동 당시 고종의 인산일로 서울에 가있던 이규봉은 서울 시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순현(張順賢)[1868~1928]은 1868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83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사는 이규봉(李圭鳳)은 고종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했다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였다. 이규봉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자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응표(張應杓)는 가평군 북면 목동리 평목마을 출신이며,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응표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한석(張漢錫)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큰멱골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한석은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호리(張浩利)[1895~1971]의 본관은 단양(丹陽), 아버지는 장한석(張漢錫)이다. 1895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97에서 태어났다. 장호리는 독립운동가인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을 시작으로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호형(張浩亨)[1893~1950]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아버지는 장한석(張漢錫)으로 1893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97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함께 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장호리(張浩利)이다. 장호형은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919년 3월 서울을 시작으로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기복(鄭基福)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큰멱골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기복은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석조(鄭錫祚)의 본관은 경주이다. 아버지는 정태규(鄭泰圭)로, 1881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각지로 전파되었으며, 가평에서도 3월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군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서울에...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성교(鄭聖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버지는 정광덕(鄭光德), 동생은 정한교(鄭漢敎)이다. 1891년에 태어났다. 가평군에서 북면 만세시위가 일어났을 때 가평군 북면 목동리 579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천수(鄭天洙)는 가평군 북면 제령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천수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으며, 천도교인이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한교(鄭漢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아버지는 정광덕(鄭光德), 형은 정성교(鄭聖敎)이며, 1880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정한교는 『독립신문』을 편집하였던 이광수(李光秀) 밑에서 편집에 관한 일을 맡은 적이 있어 이를 계기로 인쇄 편집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헌교(鄭憲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버지는 정광은(鄭光殷), 형은 함께 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정순교(鄭順敎)이다. 가평군 북면 출신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몰년도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가평에서도 3월 15일과 16일 만세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를 주도한 것...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흥교(鄭興敎)[1900~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79이다. 이명은 정흥룡(鄭興龍)이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3월 14일 정흥교는 이규...
-
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조병세(趙秉世)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현(穉顯), 호는 산재(山齋)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유순(趙有淳)이며, 1827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면에서 태어났다. 조병세는 음관(蔭官)으로 종9품의 참봉이 되었고,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을 지냈다...
-
조선 후기~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열녀. 조원승 처 정씨(曺元承 妻 丁氏)[1857~1890]의 본관은 나주이고, 아버지는 정선교(丁善敎)이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 배나무골에서 태어났다. 조원승 처 정씨는 남편의 병을 간호하며 밤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에게 쾌유를 빌었으나, 남편은 1890년 6월 28일 사망하였다. 정씨는 당...
-
1908년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에서 의병이 일본 헌병에게 몰살당한 사건.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특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은 강제 폐위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는 해산되었다. 이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 시기 가평군 상면·하면에서는 120여 명의 의병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의병은 먹을 양식과 입을 의복이 없어 곳곳에서 동지들의 협조를...
-
조선 후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군수를 역임한 문신. 조준희(趙準熙)의 본관은 양주(楊州)다. 1868년에 출생하여 1908년 사망하였다. 조준희는 1891년 감시 초시에 합격하였으며, 1894년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1897년 5월 공릉령(恭陵令)·삭녕군수(朔寧郡守)를 역임하였으며, 같은 해 8월부터 1902년까지 가평군수를 지냈다. 본래 가평군수 임...
-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활동한 문신. 조중익(趙重翊)의 본관은 양주(楊州), 초명은 중욱(重旭), 자는 보여(輔汝), 호는 화농거사(華農居士)이다. 아버지는 조정희(趙定熙)이며, 1871년에 태어났다. 부인은 파평 윤씨와 곡성 임씨이다. 조중익은 어린 시절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통달하였으며, 『주역(周易)』에 조예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영(崔基榮)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1897년 7월 10일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에서 태어났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용화(崔容和)[1901~1970]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의 동생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최용화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형인 최종화가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를 졸업하고 농림전문학교에 진학하는 등 학업에 정진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
-
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최익현(崔益鉉)[1833~1906]의 본관은 경주(慶州), 아명은 기남(奇男),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이다.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며, 1833년 경기도 포천현 내북면 가채리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최익현은 1846년(헌종 12) 14세 때 벽계로 은거한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6년...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인화(崔仁和)[1900~1937]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이명(異名)은 최인혁(崔仁爀)이다. 아버지는 최기선(崔基善)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이다. 이규봉(李圭鳳)의 둘째 딸 이윤애(李閏愛)와 혼인하였으며, 자식은 최승렬(崔承烈), 최승락(崔承洛)이 있다. 최인화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1896~1919]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아버지는 궁내부 주사와 승훈랑(承訓郎)을 지낸 최기완(崔基完)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15세 때 류은상(柳殷相)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자식으로 최승덕(崔承德)이 있다. 최종화는 8살 때부터 한학을 배웠고, 이병찬(李炳贊)에게...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세구(洪世拘)는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홍종선(洪鍾善)은 1836년 가평군 북면 조종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중부지방에서는 1895년 을미의병을 일으켜 문경에서 안동부관찰사를 처단하였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이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격분하여 다시 봉기하였고 대한제국 군인들도...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황순일(黃順一)은 경기도 양주군 고주내면(古洲內面) 출신이다. 황순일은 대한제국 군인으로 양주군 관포군(官砲軍) 1부장이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고, 이후 정미칠조약의 체결과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황순일은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부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