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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584
한자 古墳
영어음역 gobun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
집필자 한수영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개설]

고분은 옛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된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선사시대부터 돌널이나 나무널만을 사용하는 간단한 구조의 무덤이 축조되어 이후 오랫동안 사용된다. 사회가 분화되고 부장품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큰 덧널이나 돌덧널이 축조되고, 그 안에 다시 널을 안치하는 구조가 나타난다. 삼국시대가 되면 지역차는 있으나 중국식 묘제의 영향으로 추가장을 전제로 한 무덤방이 축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의 확실한 무덤은 조사된 예가 없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경남 통영시 상노대도의 산등유적과 통영시 연대도 조개더미에서 인골이 검출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고인돌·돌널 무덤·독 무덤·움 무덤 등이 등장하여 초기철기시대까지 이어졌다. 이 가운데 고인돌은 선사시대 유적 중 가장 특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과 일본 규슈[九州], 중국 요동 반도 등에 퍼져 있으나 한반도에 가장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다. 돌널 무덤은 대개 북방 계통의 무덤 양식으로 보고 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널 무덤·덧널 무덤·독 무덤 등이 유행하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돌널 무덤이 계속 축조되었다. 한편, 독 무덤은 성인용과 어린이용이 있고 세골장용의 작은 것도 있다.

원삼국시대에는 무덤에서 크게 변화가 일어나 소형의 돌덧널 무덤과 덧널 무덤이 출현하고, 북쪽에서는 돌무지 무덤이 나타났다. 그리고 재래식 무덤 중 양식상에 다소 변화가 있으나 덧널 무덤과 독 무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삼국시대에는 각 나라별로 고분이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고분은 압록강 중·상류 유역과 대동강 유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고분은 분구의 축조형식에 따라 돌무지 무덤과 봉토 무덤으로 크게 구분된다.

돌무지 무덤은 초기에는 냇돌을 덮는 간단한 구조였으나, 점차 할석을 사용한 계단식의 구조로 변화하였다. 그후 중국계 돌방 무덤의 영향을 받아 돌무지 무덤의 중심부에 널길이 달린 돌방을 만들게 된다. 대표적인 예는 장군총·태왕릉·천추총 등이다. 이 돌무지 무덤은 5세기 전반 평양 천도 이후 차츰 쇠퇴하여 자취를 감추게 되고 굴식 돌방의 봉토 무덤으로 변화한다. 봉토 무덤 중에는 벽화 무덤도 있다.

백제의 무덤에는 돌무지 무덤과 봉토 무덤이 있으며, 봉토 무덤에는 돌방 무덤·돌덧널 무덤·움 무덤이 있다. 백제 초기인 한성시대의 무덤 양식은 널 무덤과 돌덧널 무덤 같은 토착적인 묘제에 고구려식 돌무지 무덤과 합장이 가능한 돌방 무덤이 들어왔다. 웅진시대에는 돌방 무덤이 한성시대에 이어서 계속 만들어지며, 중국계 벽돌 무덤이 새로이 만들어진다. 사비시대에는 한성·웅진시대에 이어 기본적으로 장방형 돌방이 유행한다.

한편, 전남지방에는 늦게까지 토착적 묘제인 대형 독 무덤이 유행하였다. 영암·무안·나주 등에서 발견되는 이 독 무덤은 지방 호족 또는 마한 잔여 세력의 묘제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신라의 무덤은 4~6세기 전반 경주 시내에 대형 돌무지 덧널 무덤이 조영되었다. 대표적 예로는 금관총·금령총·서봉총·식리총·천마총·황남대총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덧널 무덤·돌덧널 무덤·독 무덤·돌방 무덤 등 다양한 형태가 보인다.

가야의 무덤은 가야의 옛 영역인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에 산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무덤은 돌덧널 무덤이다.

남원 지역의 고분은 고인돌·독널 무덤·돌덧널 무덤·돌방 무덤 등이 확인된다. 이 고분들은 각기 시대성을 띠고 있어,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독널 무덤은 원삼국시대, 돌덧널 무덤과 돌방 무덤은 삼국시대를 대표한다.

[고인돌]

고인돌은 남원의 전 지역에 고루 산재해 있으며, 특히 섬진강 수계인 서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지표 조사를 통해서 알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주천면 신기리, 아영면 갈계리·청계리·봉대리·고인리, 산동면 신기리, 보절면 황벌리·은천리, 송동면 세전리, 수지면 산정리, 대강면 송대리·석촌리·사석리 등에서 50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하천변의 충적지·구릉지·산기슭 등에 위치한다. 구조는 대부분 개석 아래에 1~4개 정도의 지석이 고여 있는 남방식이며, 기반식과 개석식이 거의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남원 지역 고인돌의 대표적인 예를 등골 고인돌군·갈계리 고인돌군·청계리 광평 고인돌군을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등골 고인돌군: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골 마을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대형 괴석의 고인돌군으로 1㎞ 내외의 반경 안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형식은 남방식 고인돌 중 개석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고인돌 상석의 규모는 가장 큰 것이 380×253×239㎝이다. 일부 고인돌에서는 성혈이 확인되었다.

2) 갈계리 고인돌군: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 동계마을의 북쪽에 위치한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A군과 B군 2개소에서 각각 5기와 2기씩 총 7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A군의 고인돌 중 한 기는 상석의 규모가 크고, 형태가 호랑이 모양과 유사하여 호석 바위로 불렸다고 한다. 이 밖에 다른 고인돌의 규모는 길이 4m, 너비 2.8m, 두께 1.8m 이상으로 대부분 대형이었다. 상석 하부에서 지석이 노출된 점에서 기반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고인돌 상석에서는 8-13기 정도의 성혈이 확인되었다.

3) 청계리 광평 고인돌군: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광평마을에 위치한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4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대부분 지석이 1-4개 정도로 확인된 기반식 고인돌이다.

1호 고인돌의 상석은 장축이 동서 방향이며, 규모는 장축 270㎝, 단축 180㎝, 높이 120㎝ 정도이다. 성혈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고, 지석 1개만이 관찰되었다. 상석의 한 면에는 한문이 새겨져 있다. 2호 고인돌의 상석은 방형이고, 장축 방향은 확실하지 않으며, 규모는 장축 230㎝, 단축 210㎝, 높이120㎝이다. 성혈이나 지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3호 고인돌의 상석은 장축이 남북 방향이며, 규모는 장축 250㎝, 단축 150㎝, 높이 120㎝이다. 1호에서 3호까지의 고인돌은 전체적으로 볼 때 남북 방향으로 열을 지며 위치한다. 4호 고인돌의 상석은 한 쪽이 계단식 논의 두렁에 가려져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말각방형으로 추정되며, 지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규모는 장축 210㎝, 단축 140㎝ 정도이다.

[독널 무덤]

독널 무덤은 아영면 두락리에서 확인되었다. 두락리 독널 무덤은 1963년 주민의 제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유적은 봉토 무덤이 밀집된 두락리 고분군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의 경사면 하단부에 위치하며, 조사 당시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독널 무덤은 주검이 들어가는 으뜸독[主甕]과 뚜껑 기능을 하는 막음독으로 이루어진 이음식으로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두고 있다.

으뜸독의 규모는 입지름 45㎝, 몸통 최대 지름 50㎝, 높이 60㎝이다. 연질이고, 전체적인 모양이 난형(卵形)이며, 몸통에는 문살무늬가 시문되어 있다. 목과 몸통의 경계부에는 톱니바퀴무늬가 새겨져 잇고, 어깨부에는 두 개의 유두형 돌기가 부착되어 있다. 으뜸독 안에서는 아가리가 결실된 바리 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막음독의 규모는 입지름 24.5㎝, 몸통 최대 지름 38㎝, 높이 33㎝이다. 윗부분에 문살무늬가 개겨져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돗자리무늬가 새겨져 있다. 출토 당시 아가리가 으뜸독 안으로 8㎝ 정도 들어간 상태였다.

[돌덧널 무덤]

돌덧널 무덤은 남원의 서부 지역보다는 동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이 고분들은 그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호남 동부 지역의 남강 수계권에 위치한 가야계 정치 집단의 위상을 보여줌으로써 이 지역에 있어서 가야·신라·백제간의 관계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남원 지역 돌덧널 무덤의 대표적인 예를 월산리 고분군·건지리 고분군·두락리 고분군을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월산리 고분군: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구지내기 마을에 위치한다. 198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모두 10여 기의 가야계 돌덧널 무덤이 확인되었다.

고분은 돌덧널의 규모와 축조 방법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제1유형은 돌덧널의 길이가 200㎝ 이하인 소형으로 모두 4기가 있다. 벽체는 바닥에 판석형 할석을 서로 잇대고, 그 위에 크기가 작은 할석을 더 올려 축조하였다. 천정석은 여러 매를 사용하였고, 바닥은 생토면 또는 판석형 할석이나 잡석을 깔았다.

제2유형은 돌덧널의 길이가 370~470㎝ 정도로 4기가 확인되었다. 벽체는 크기가 다른 할석과 천석을 혼용하여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상단부는 모두 유실되어 천정석의 존재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바닥은 주형(舟形) 평면으로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제3유형은 돌덧널의 길이가 800㎝ 이상인 대형으로 2기가 확인되었다. 벽체는 천석과 할석을 혼용하여 쌓았다. 벽석 사이에는 점토를 바르고, 벽석 위에 천정석을 올렸으며, 바닥에는 편평한 천석을 깔았다.

유물은 고분의 유형에 따라 조합 양상이 다르다. 제1유형에서는 유개장경호가 주종을 이루고, 단경호와 개배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와 철낫이 출토되었다. 제2유형에서는 무개장경호가 주종을 이루고 광구장경호·대부장경호·기대류가 출토되었다. 제3유형에서는 제1·2유형보다 다양한 기종과 많은 수량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류는 남원의 재지계 토기가 주종을 이루면서 고령식 토기가 일부 섞여 있으며, 철기류는 고령 대가야계와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2) 건지리 고분군: 남원시 운봉읍 건지리에 위치한다.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87년과 2004년에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고, 1987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모두 40여 기가 분포되어 있는 고분 중 15기 정도의 가야계 돌덧널 무덤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배치 형태를 달리하여, 돌덧널 무덤이 하나의 봉토 내에 한 기 또는 여러 기가 배치되기도 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돌덧널의 축조 방법·장축 방향·바닥 시설·유물의 조합상 등의 속성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고분의 축조는 생토면을 파내어 묘광을 마련하고, 세장방형의 돌덧널을 축조한 후, 그 위에 여러 매의 천정석을 올리고 봉분을 조성하였다. 벽체는 바닥에 대형 판상석을 서로 잇대어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천석과 할석을 사용하여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 방식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바닥은 맨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주종을 이루며, 장신구류가 일부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고령식 토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3) 두락리 고분군: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에 위치한다. 건지리 고분군의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다. 198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총 34기의 대형 고총 고분 중 돌덧널 무덤은 4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1호분을 통해 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봉토의 규모는 직경 20.5m이며, 봉토의 중앙에는 풍화 암반층을 파내어 묘광을 마련한 후, 그 내부에 동서 길이 860㎝, 남북 폭 130㎝, 높이 180㎝의 돌덧널 1기가 배치되어 있다. 돌덧널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천석과 할석으로 축조되었으며, 벽석 사이는 예새가 섞인 진흙으로 메웠다. 바닥은 전면에 잔자갈을 깔았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주종을 이루며 출토되었다.

[돌방 무덤]

남원 지역은 가야계의 돌덧널 무덤이 대부분인 가운데 돌방 무덤은 백제계로 일부 지역에 한하여 분포되어 있다. 이 고분들은 가야와 백제 사이의 상관 관계 및 백제 세력의 확장 등을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남원 지역 돌방 무덤의 대표적인 예를 두락리 고분군·초촌리 고분군·척문리 고분군을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두락리 고분군: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에 위치한다. 198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총 34기의 대형 고총 고분 중 돌방 무덤은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 석실은 장방형의 평면형이며, 벽체 위에 천정석 1매를 올렸다. 바닥에는 판상석을 이용한 관대 시설이 있으며, 모든 벽면과 관대 시설은 회가 두텁게 도포되어 있다. 연도는 석실 서벽에 연장되어 있다. 바닥에는 배수 시설이 있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주종을 이루며 출토되었다.

2) 초촌리 고분군: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에 위치한다. 1979년 전주시립박물관에 의한 유적 분포 측량 조사와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백제 돌방 무덤 211여 기와 옹관묘 1기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10여 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돌방 무덤은 돌방의 형태·연도의 위치·벽석의 축조 방법 등에 의해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1유형은 돌방은 장방형이고, 연도는 동쪽에 편재되어 있으며, 네 벽은 크기가 다른 할석을 사용하였고 상단부를 약간 내경되게 축조하였다. 2유형은 돌방은 장방형이고, 연도는 서쪽에 편재되어 있으며, 네 벽은 바닥에 판석형 할석을 세우고 장벽의 상단부는 약간 내경시키고 북벽은 수직으로 축조하였다.

3유형은 돌방의 폭이 약간 넓은 장방형이고, 연도는 길이가 짧으며 장방형의 할석을 수직으로 축조하였다. 장벽은 바닥에 판석형 할석을 놓은 후 그 위에 장방형의 자연석 또는 할석을 약간 내경되게 올려놓았으며, 북벽은 거의 수직으로 축조하였다. 4유형은 전형적인 앞트기식 돌방 무덤으로 장벽은 크기가 다른 할석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 내경되게 축조한 반면, 북벽은 수직으로 쌓았고, 남벽은 천석을 이용하여 폐쇄하였다.

유물은 토기와 철제 무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초촌리 고분군은 남원 지역뿐만 아니라 섬진강 수계권에서 조사된 고분군 가운데 최대 규모의 백제 고분군이다.

3) 척문리 고분군: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척동 마을에 위치한다. 1963년 이 일대의 임야를 개간하던 노출된 석실에 대해 수습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를 통해 굴식 돌방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확인되었다.

돌방의 벽석은 노출된 상황으로 볼 때, 약간 다듬은 할석을 이용하였다. 유물은 은제 화형 관식 1점·백제 토기 3점·관고리 3점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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