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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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간행된 일제강점기의 문인 김교준의 유고 시문집. 김교준(金敎俊)[1883~1944]은 송병선(宋秉璿)과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학문적 재능이 뛰어나 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경암집(敬菴集)』은 저자가 죽고 20여 년 뒤인 1961년에 제자인 황갑주(黃甲周)와 오구영(吳龜泳) 등이 계(稧)를 만들어 자금을 마련하여 비석도 세우고 문집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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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 출신 양성지의 시문집.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자는 순부(純夫)이고 호는 눌재(訥齋) 또는 송파(松坡)라고도 한다.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정조가 1791년에 각신 서영보로 하여금 유고를 모아 정유자로 간행하게 하였다. 《초간본》 저자의 시문은 원래 주의(奏議) 10권·가집(家集) 6권이 있었다고 하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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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양주익의 시문집과 행록(行錄)을 엮은 책. 『무극집(无極集)』은 남원 출신으로 문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양주익(梁周翊)[1722~1802]의 필사본 시문집 16권 8책과 그의 행록을 기록한 『무극선생행록(无極先生行錄)』 1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필사 연대를 확인할 수 없다. 본서의 저본은 1929년에 후사(後寫)된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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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사람들의 성(姓)을 이르는 명칭.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거니와 전해지는 자료도 많은 부분 소실되어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으로 고조선부터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성씨(姓氏)가 이미 단군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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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평(正平), 호는 주봉재(住蓬齋)이다. 노성현감 소연(蘇沿)의 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소만길(蘇萬吉)이고 할아버지는 소협(蘇莢)이다. 아버지는 소미로(蘇眉老)이며 어머니는 평강채씨로 채지문(蔡之文)의 딸이다. 소권은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국상(國喪)에도 지성으로 상복을 입었다. 1728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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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경즙(景楫), 호는 적은(迪隱)이다. 상호군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인세(蘇仁世)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유만달(柳晩達)의 딸이다. 소제는 성품이 충직하고 성실하였으며 힘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세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형 소황(蘇滉)과 함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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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의 터. 신포서원(新布書院)은 조선 후기 정조 때 남원도호부 48방 중 주포방에서 최초 설립된 서원으로, 이후 대곡방으로 근거지를 이전하여 향촌 사회 교육을 목적으로 재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이다. 신포서원은 원래 조선 중기 남원도호부의 48방 중 주포방에서 창건되었다고 해서 초창기에는 주포서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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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寥汀)·태암(泰巖). 아버지는 충장공 양대박(梁大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하자, 아우 양형우(梁亨遇)와 함께 아버지를 보필하였다. 양경우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경명(高敬命)에게 갔는데, 고경명은 양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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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사진(士眞), 호는 청계(靑溪)·송암(松巖)·죽암(竹巖)·하곡(荷谷). 아버지는 목사 양의(梁艤)이다. 양대박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배웠다. 1572년(선조 5)에는 학관(學官)에서 제술관(製述官)으로 기용되고 이어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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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송파(松坡). 시조 병부공 양능양(梁能讓)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우찬성(贈右贊成) 양구주(梁九疇)이다. 양성지[1415~1482]는 1441년(세종 23)에 생진문과(生進文科)에 합격하여 경창부승(慶昌府丞)과 성균전적(成均典績)을 역임하였다. 훈구파(勳舊派) 중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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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 양주익(梁周翊)[1722~1802]은 주로 영조와 정조 연간에 활약한 문신이다. 정치의 폐단을 개혁하는 데 관심이 많았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군한(君翰), 호는 무극(无極). 조부(祖父)는 양우하(梁宇夏)이고, 부친은 생원 양명진(梁命辰)이다.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175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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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길부(吉夫), 호는 모정(慕亭). 대제학 양이시(楊以時)의 후손이며 둔재 양사(楊泗)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팽로·양대박 등과 함께 고경명을 찾아가서 창의하였다. 그들은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리고 담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고경명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양희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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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고려 충신 양능양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용장서원은 고려 목종 때 김치양 일파의 난으로 은거한 절의의 충신 양능양(梁能讓)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고려 때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양주운(梁朱雲)과 고려 후기에 대사성을 지낸 김구용(金九容), 임진왜란 때의 공신 양대박(梁大樸)을 봉안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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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사중(思中), 호는 율계(栗渓). 아버지는 경력(経歴) 장응규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장급(張伋)[1522~1589]은 품성이 뛰어나고 대의(大義)를 중시해 불의(不義)를 보면 그 자리에서 문책하였다고 한다. 1558년(명종 13) 아버지가 죽자 서울에서 남원까지 운구하고 여묘(廬墓) 3년 동안 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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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하동(河東). 한림 정임(鄭霖)의 7세손이다. 정기남은 1592년(선조 25)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봉에 서서 적병을 크게 무찔렀다. 선조의 어가(御駕)가 의주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호위하였다. 그 공으로 감찰이 되었으며, 내금위장, 별군직 등을 역임하였다. 김해부사(金海府使)·부령부사(副寧府使)·창성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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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은 「춘향가」와 「춘향전」을 배경으로 판소리와 고전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랑의 도시이다. 남원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문화로 대표될 수 있는 춘향 문화를 간직한 고장이기에 국민적 트랜드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전 국민이 애국가 다음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춘향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이라는 시대적 테마를 제공하고 있기에 충분하다. 이미 춘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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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대강면 평촌리는 평촌과 새터로 나뉘어 있다. 옛날에 ‘견바실’로 부른 것은 견소곡(見所谷)의 새김말에서 유래했다. ‘점바실’로 부른 것은 덕동(새터)에 점(店)이 있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후에 마을 앞뜰이 넓다고 하여 평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새터 뒤에는 옛 도요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1506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