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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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동 |
[정의]
강원도 영월의 전근대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역사와 현황.
[개설]
전근대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영월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을 전통 교육, 학교교육, 평생교육, 유아교육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영월의 전통 교육]
조선왕조가 개국하면서 각 지방에 관립 학교인 향교를 설치하였다. 강원도 각지에도 향교가 건립되면서 1398년(태조 7) 영월향교(寧越鄕校)가 창건되었다. 향교는 봉안하는 선현의 위패 수에 따라 대설위, 중설위, 소설위로 나뉘는데 영월향교는 중설위 향교이다. 영월향교의 건물 배치는 강학 공간이 전면에 배치되고 뒤로 제향(祭享) 공간이 놓이는 전학후묘형(前學後廟形)에 해당한다.
영월향교 대성전의 규모는 5칸이며 강릉향교, 삼척향교, 춘천향교 등과 같은 규모였다. 강학 공간은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앞에 배치되는 형식인 전재후당형(前齋後堂形)이다. 조선 시대 영월향교는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다. 1950년 6·25전쟁 때 대성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973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서원은 조선 전기에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기구의 기능을 하였다. 영월군에는 1685년(숙종 11) 창절서원(彰節書院)이 세워졌다. 1685년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을 개수하면서 강원도관찰사 홍만종(洪萬鍾)과 영월군수 조이한(趙爾翰)이 도내에 통문을 돌려 기금을 모아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9년(숙종 25) ‘창절(彰節)’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791년(정조 15)에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낸 호장 엄흥도(嚴興道)와 금성대군(錦城大君)을 추가 배향하고, 그 뒤 화의군(和義君)을 추가 배향하였다. 창절서원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13년 10월 개수하였으며 경내의 건물로는 창절사(彰節祠), 강당, 동재, 서재 등이 있다.
서당은 향교에 들어가는 준비를 시키는 것과 동몽 교육(童蒙敎育)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서당은 글방, 서방, 책방, 서재 등으로도 불렸다. 서당에서는 한문의 기초와 유학의 기초 지식, 행동 규범을 익혔다. 서민의 자제들도 많이 수학하였던 서당은 근대적 교육의 전개와 일제의 식민지 교육 하에서 변화가 있었다. 과거 형태를 유지한 재래 서당과 새로운 변화에 적응한 개량 서당으로 나뉜 것이다.
학교가 부족하였던 시기에 서당은 초등교육을 담당하면서 지속되었다. 영월군에서 서당 교육을 수학한 고령자들의 경험을 1990년대에 조사한 전태규의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10명 이하의 학생이 다닌 규모가 많았고 큰 곳도 15명 남짓이어서 영세한 편이었다. 학생들의 연령 분포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서당에 다니는 경우도 있고 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다니는 경우까지 있어서 다양하였다. 교재는 『천자문』은 필수교과였고 그다음으로 『동몽선습』, 『명심보감』, 『자치통감』 등을 배웠다. 이상이 초급 과정이며 2년~3년이 걸렸다. 그다음으로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읽는 수준은 5년 내지 6년 정도를 교육받아야 하였다.
사설 교육기관인 서당은 마을마다 자유롭게 설치되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따서 부른 경우가 많았다.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던 법흥서당, 주천면 신일리 큰골에 있던 큰골서당 등이 대표적이었다. 서면 북쌍리에는 상평 마을과 하평 마을이 있었는데 각각 상평서당, 하평서당이라 불렀다. 개량 서당은 주천면 도천리에 ‘도천심상소학교’라는 간판을 걸고 교육을 한 곳도 있었다. 영월군의 서당으로 장기간 존속된 곳은 하원서당[남면], 정양서당[영월읍], 전운서당[주천면], 하평서당[서면] 등이었는데, 이 중에서 전운서당은 1975년까지 학생들이 있었다.
[영월의 학교 교육]
한국의 근대 학교교육의 시작은 1883년 원산학사의 설립, 1886년 배재학당의 설립에서 찾기도 하지만 1894년 갑오년에 학무아문을 설립하고 1895년에 고종이 「교육에 관한 조칙」[교육입국조서]를 발표하면서 각종 학교 관제가 제정되어 근대 학교의 체제가 법제화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한성과 각 지역에 관공립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영월군에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는 근대적인 학교가 세워지지 않았다. 영월군에 설립된 근대적인 초등 교육기관은 1911년 8월 제1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된 이후 1912년 7월 2일 향교를 모태로 하여 개교한 영월공립보통학교가 시초였다. 뒤이어 1919년 7월 주천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였다.
일제는 1919년부터 1926년까지 3면 1교 정책, 1929년부터 1936년까지 1면 1교 정책, 1934년부터 간이학교제, 1937년부터 1942년까지 제2차 조선인 초등교육 보급 확충 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취학률을 높여 가고 있었다. 학교 명칭도 1906년부터 보통학교라고 하였다가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부터 심상소학교라고 하였고, 1941년부터는 「국민학교령」에 의하여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1943년 기준 영월 지역 국민학교는 옥동국민학교, 연하국민학교, 문곡국민학교, 거운국민학교, 토교국민학교, 운학국민학교, 연덕국민학교, 연당국민학교, 녹전국민학교, 신천국민학교, 판운국민학교, 법흥국민학교, 구래국민학교, 흥월국민학교, 직동국민학교, 각동국민학교, 마차국민학교, 쌍룡국민학교 등이 있었다. 1943년 기준 간이학교는 흥월간이학교, 연하간이학교, 직전간이학교간이학교, 각동간이학교, 우목간이학교, 정양간이학교, 거운간이학교, 조제간이학교, 연덕간이학교, 토교간이학교, 법흥간이학교 등이 있었다.
일제에 의하여 억제되었던 교육열은 광복과 더불어 급팽창하였다. 미군정기에는 영월·홍천·횡성 등 영서 지방의 학교 신설이 활발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 영월의 국민학교는 모두 24개교였다. 이후 조전국민학교, 봉래국민학교, 무릉국민학교, 내덕국민학교, 백운분교, 연상분교, 와석분교, 금룡국민학교, 공기분교, 광전분교, 광천분교, 두산분교, 금마분교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1955년에는 본교 40개 교, 분교 8개 교에 이르렀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 사이에 19개 교의 국민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국민학교는 더 이상 설립되지 않았다. 1996년 3월 1일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초등학교로 변경되었고 2022년 현재 영월 지역 초등학교는 분교 1개 교를 포함해서 14개 교가 있으며 학생 수는 1,198명이다. 학교당 평균 학생 수는 약 86명이며 대부분 소규모 학교에 해당한다.
광복 직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지 않고 6년제 중학교와 함께 3년제 초급중학교가 있었다. 1951년 3월 20일 「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현행 학제와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이 되면서 초등학교가 팽창하다가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 이루어지면서 중학교가 증가하였다. 중학교 학생 수는 197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다가 1985년을 고비로 점차 감소하였다.
영월군의 중학교를 설립순으로 살펴보면 영월중학교[1946], 마차중학교[1949], 주천중학교[1951], 상동중학교[1953], 석정여자중학교[1961], 쌍룡중학교[1969], 녹전중학교[1970], 옥동중학교[1971], 연당중학교[1971], 신천중학교[1975], 봉래중학교[1982] 등이 있다.
영월군의 중학교는 사립인 석정여자중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공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2년 현재 영월군의 중학교는 신천중학교가 2022년 3월 1일 폐교되어 10개 교이며 학생 수는 647명이다. 학교당 평균 학생 수는 약 65명이며 소규모 학교가 많은 편이다.
영월군의 고등학교를 설립순으로 살펴보면 영월공업고등학교[1946], 주천고등학교[1951], 상동고등학교[1953], 마차고등학교[1958], 석정여자고등학교[1964], 영월고등학교[1972] 등이 있다. 영월공업고등학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2020년 3월 1일 한국소방마이스터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영월군의 고등학교는 사립인 석정여자고등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공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2년 현재 6개 교이며 학생 수는 880명이다.
1993년 사립 전문대학인 영월공업전문대학이 설립되어 영월군에 고등교육기관이 탄생하였다. 영월공업전문대학은 2012년 세경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영월의 평생 교육]
평생교육은 ‘정규 학교교육 이외의 조직적인 교육활동’을 의미한다. 평생학습 도시 사업은 종합적으로 평생학습을 촉진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6월 13일 평생학습 도시로 선정된 영월군은 군민이 주도하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이 실현될 수 있도록 ‘배움+배움 창조 학습 도시 영월’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배움+배움으로 하나되는 젊은 학습 도시 영월’, ‘박물관으로 하나되는 테마 학습 도시 영월’,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휴먼 학습도시 영월’을 목표로 평생학습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월군 자치행정과가 중심이 되어 평생학습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평생교육협의회와 실무협의회를 구성하여 영월군 관내 평생학습 운영기관과의 유기적인 네크워크를 통하여 운영하고 있다. ‘학습 디딤돌 조성 SNS 프로젝트’, ‘테마별 특화 프로젝트’, ‘권역별 특화 프로젝트’를 추진 전략으로 ‘학습 도시 조성 디딤돌 System(시스템) 프로젝트’, ‘학습 도시 조성 디딤돌 Network(네트워크) 프로젝트’, ‘학습 도시 조성 디딤돌 Six-types(식스 타입스) 프로젝트’, ‘박물관 특화 행복 학습 센터 운영’, ‘테마가 있는 박물관 학습 투어 운영’, ‘박물관 학습 네트워크’, ‘창조 학습의 심장부 영월권’, ‘웰빙힐링 히스토리 ZONE(존) 주천권’, ‘인문자연 체험학습 ZONE(존) 김삿갓권’ 등을 추진 과제로 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월의 유아 교육]
영월군의 유아교육은 구래유치원[1948년 인가]을 비롯하여 영월유치원[1956년 인가], 성모유치원[1967년 인가], 에덴유치원[1978년 인가] 등 사립 유치원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81년에는 관내 각 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 20곳이 설립되었고, 이와 함께 새마을 유아원도 설립되면서 유아 교육기관이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현재는 인구 감소에 따라 유치원 수도 감소하고 있다.
2022년 현재 영월군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녹전초병설유치원, 무릉초병설유치원, 봉래초병설유치원, 신천초병설유치원, 연당초병설유치원, 옥동초병설유치원, 주천초병설유치원, 청령포초병설유치원, 마차초병설유치원, 내성초병설유치원, 쌍룡초병설유치원, 구래초병설유치원 등 12개이며 사립 유치원은 영월유치원과 보덕유치원이 있다. 총 유치원생 수는 221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