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70 |
---|---|
한자 | 八一五光復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철 |
[정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한국이 광복을 맞이한 사건.
[개설]
8·15광복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치열한 독립운동과 일제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선언으로 말미암아 1945년 8월 15일 이루어졌다. 강원도 주요 도시에서는 광복을 맞아 각종 변화가 일어났다. 자치위원회 또는 치안대가 결성되어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고 나섰으며, 또 ‘독립’, ‘건국’ 등의 이름을 내세운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영월군에서의 광복절]
영월군에서는 일제 식민지 체제가 잔존하고 있었지만, 일제가 임명한 관리들은 무기력 상태에 빠져 모든 기능을 상실하였다. 이 같은 배경에서 1945년 8월 20일경 영월자치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청년들이 나서 치안대를 구성하고 치안 유지에 나섰다. 치안대 대부분은 목총과 방망이 등으로 무장하였으며, 팔에는 검은 글씨로 ‘치안대’라고 쓴 완장을 두르고 일본인과 한국인, 또는 한국인과 한국인 간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충돌을 막고자 하였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 38선 이남 지역에는 미군이 들어왔다. 1945년 9월 20일 제7사단 제32연대의 1개 중대가 춘천에 진주하였고, 이후 9월 29일 삼척, 10월 6일, 10월 10일 횡성, 평창, 영월 등지에 진주하였다. 1946년 10월 6일에는 제32연대가 원주에 이어 10월 10일까지 횡성, 평창, 영월 등에 진주하면서, 10월 12일까지 강원도 전역을 장악하였다. 미군 제7사단은 일본군의 항복 및 무장해제와 일본 군인 및 민간인의 본국 송환을 처리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고, 아울러 치안 유지의 임무도 맡고 있었다. 따라서 영월군 지역 내 일본군과 일본인에 대한 전후 처리 역시 미군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1945년 10월 28일 강원도에 도착한 제100군정단과 제46-52군정중대는 도청본부 및 영월 지역을 비롯한 춘천, 홍천, 원주, 평창, 횡성, 정선을 관할하였고, 10월 29일 도착한 제66군정중대는 삼척, 울진, 강릉을 관할하였다. 1946년 1월, 미군정은 다른 도와 달리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춘천에 제100군정청[서부군정청]과 강릉에 제38군정청[동부군정청]을 설치하였다. 제100군정청은 영월 지역을 비롯한 춘천, 홍천, 원주, 평창, 횡성을 관할하였으며, 38군정청은 정선, 강릉[양양 일부 포함], 삼척, 울진을 관할하였다.
지방 군정청의 조직을 보면 대개 1개 소대 30여 명 정도가 주둔하였으며, 사상과 적산을 담당하는 법무과, 휘발유와 식량을 담당하는 산업과, 시설을 담당하는 관재과, 병원과 약품을 담당하는 의무과, 무기와 범죄 및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과 등으로 조직되었다. 또 산하에 조직된 CIC첩보부대는 사상과 정당들의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