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322 |
---|---|
영어공식명칭 | Ferry |
이칭/별칭 | 포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배가 건너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개설]
가평군에는 강원도의 산간 지방과 연결된 명지산·칼봉산·대금산·불기산·주발봉·호명산 등이 위치해 있으면서, 높이 솟은 산간 아래 계곡과 연결된 하천들이 남동쪽을 따라 흐르는 북한강으로 유입된다.
북한강은 설악면 일대에서 홍천강을 만나 남서쪽으로 물길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조종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수로를 활용한 교통의 발달을 가져왔고, 마을 곳곳에는 배들이 드나들기 위한 나루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나루를 중심으로 진·주·포·도 등으로 불리는 도진 취락이 형성되었다.
[운영]
조선 전기 가평의 나루로는 안판탄(按板灘)이 확인된다. 이후 북한강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연결하는 수로가 발달하면서 여러 포구들이 생겨났는데,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가평군읍지』에는 안반진(安盤津)·금대진(金垈津)·양진(兩津)·청평천(淸平川)·대승진(大升津) 등 5곳의 진(津)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읍창(邑倉)이나 사창(社倉) 등이 위치한 지역에 자리하였고, 각 곳마다 진선(津船) 1척이 운영되고 있었다. 안반진은 현재 가평읍에 해당하는 군내면에 있었으며 읍창과 연계되어 있었다. 현재의 달전리나루인데, 안반진 앞을 흐르는 북한강은 ‘안반강’으로도 불렸다.
남면에는 금대진과 양진이 있었는데, 금대진은 비령대나루로, 양진은 호명리나루로 비정된다. 또 금대진에는 남사창(南社倉)이 있었다. 이곳을 흐르는 북한강은 ‘금대강’, ‘양진강’으로도 불렸다.
서면에는 청평천과 대승진이 있었으며, 청평천은 외서사창(外西社倉), 대승진은 남창(南倉) 가까이에 있었다. 현재의 배나들이나루와 화랑포로 비정된다. 이들 앞에 흐르는 북한강도 ‘청평강’, ‘대승강’으로 불렸다.
[변화]
조선 초기 강원도의 목재를 한양으로 수송할 적지로 가평 앞의 강가를 지정하여 가평은 포구와 나루가 발전하였다. 강원도에서 생산된 건축목재들은 뗏목으로 엮어져 북한강 수로를 따라 한양에 공급되었고, 18세기 후반부터 한강 변의 상인들은 수로를 따라 가평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가평의 포구와 나루는 활발해졌다.
이외에 가평읍의 염창나루, 산유리나루, 복장리나루, 설악면에 용문천나루, 자잠나루가 있었다.
[현황]
1937년 양수교 건설, 1939년 경춘선 개통, 1943년 청평댐 완공, 1944년 화천댐 완공, 1973년 팔당댐 완공은 가평 지역의 나루 운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댐 건설로 일부 나루는 수몰되었고, 일부는 기능을 잃었다. 또 교량과 철도, 도로의 개통으로 선박을 이용한 수로는 위축되었고 최근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직 나룻배가 운영되고 여객선 선착장으로 사용되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 기능은 완전히 변하여 몇몇 나루들이 수상 레저를 위한 선착장으로 활용되거나 미미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