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항일 의병과 3·1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 1894년 청일전쟁 이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과 더불어 시행된 단발령은 조선 민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가평 지역에서도 1895년 의병이 봉기하였다. 가평군 북면을 근거지로 한 약 380여명의 가평 지역 의병들은 강원도 의병과 연합하여 전투하였다. 의병 전투에서 의병장 이충응(李忠應)[...
-
1876년 개항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경기도 가평군의 역사. 경기도에 소속된 가평군은 1888년(고종 25)에 강원도 춘성부(春城府)에 편제되었다. 1894년에 이르러 다시 경기도로 환속되면서 포천군(抱川郡) 소속으로 바뀌었다. 1895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국을 23부로 337군으로 개편되었을 때, 가평군은 5월 26일 한성부에 편제되었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경달(金敬達)[1849~1896]은 1849년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팔미리 70[현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에서 태어났다. 김경달은 춘천부의 포군으로, 평소 ‘김효자’로 불릴 정도로 효도와 우애가 극진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제의 내정 간섭으로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
-
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민영환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민단현(閔端顯)이며, 할아버지는 증영의정(贈領議政)이자 고종의 외할아버지인 민치구(閔致久)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한 민겸호(閔謙鎬)이며, 어머니는 대구 서씨 서경순(徐庚淳)...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박문익(朴文翼)은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박문익은 일찍부터 사서(四書)를 공부하고 학문을 배워 서당 훈장을 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斷髮令)의 시행으로 인해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1896년 춘천의병에 합류하여 활동한 이충응(李忠應) 의병장이 같은 해 2...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활동한 의병. 박현성(朴賢成)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斷髮令)이 시행되자 이로 인해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이충응(李忠應)은 이러한 상황에서 1896년 1월 20일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春川義兵)에 합류하여 아장(亞將)으로 활동하였...
-
1896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보납산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시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쳐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표명하고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토벌대를 파견하여 사전 봉쇄를 기도하여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가평 인접 지역인 춘천과 화천 등지에서 1896년 1월 20일 의병이...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신관휴(申觀休)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신관휴는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진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 등을 벌일 때, 신관휴는 신재욱(申在旭),...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 신석범(申錫範)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재현(申在玄)이며, 아들은 독립운동가 신숙(申肅)이다. 1895년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로 인해 을미의병이 봉기하였다. 가평 지역의 이충응(李忠應)은 1896년 1월 20일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春川義兵)에 합류하여 아장(亞將)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신재희(申在熹)[1850~1895]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이다. 이명(異名)은 신재가(申在嘉)이다. 신재희는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895년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재직 중이던 낭천현감 관직을 버리고 조카사위 이충응(李忠...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심능욱(沈能昱)은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진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 등을 벌일 때, 신관휴(申觀休), 신재욱(申在旭) 등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여 항전하였지만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유중락(柳重洛)[1842~1922]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사원(士原), 호는 오천(午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원(柳瑗), 할아버지는 유영택(柳榮澤), 아버지는 유호(柳昈)이며,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 박헌규(朴憲圭)의 딸이다. 형은 유중렴(柳重濂)이다. 18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유중락은 유년...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6년 이후 가평의 의병활동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인근 지역인 춘천 및 이천 의병과 연합하여 펼쳐나갔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이어 단발령까지 시행되자 전국의 의병항쟁은 본격화되었다. 의병항쟁 초기에 경기도 북동부 지역의 가평군은 춘천·화천과 함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가평의 의병은 1896년 1월...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관구(李觀九)[1852~1922]의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직(仕直)이다. 아버지는 이국용(李國用), 부인은 영암 박씨이다. 이관구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에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의병. 이근화(李近和)는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본관과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시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치기 위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근화는 1896년 춘천과 가평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이근화는 1896년 2월 보납산에 진을 치...
-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두응(李斗應)의 본관은 전주이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기식(李杞植)이다. 1872년 12월 3일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났다. 이두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발표되자 이에 반발한 양반유생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896년 가평군에서 신재희(申在熹)...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이범구(李範九)의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겸 오위장 이상용(李商用)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충응(李忠應)은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의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하였다. 이범구는 이충응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고종의 강제...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진응(李晋應)[1847~1896]의 본관은 전주, 자는 경재(敬哉), 호는 직헌(直軒)이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9남인 경창군(慶昌君) 이주(李珘)의 후손이며, 을미의병장 습재 이소응(李昭應)의 종형(從兄)이다. 강원도 춘천군 남면 하방곡리 출신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춘천에...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임찬옥(任燦玉)은 1895년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조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병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를 벌일 때 함께 참가하여 항전하였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하여 패하면서 가평 북면 방향으로 일시 이...
-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정응수(鄭應壽)의 본관은 봉화이며 자는 헌기(憲箕)이다. 아버지는 정동혁(鄭東爀)으로 1855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정응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에서 이충응(李忠應) 등이 의병을 일으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