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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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모습을 그린 지도. 「남원관부도(南原官府圖)」는 1699년(숙종 25)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의 범례 뒤에 실려 있는 지도이다. 초간본 『용성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기초로 만들어져 너무 간략하여, 내용을 보완한 다음 1752년(영조 28)에 다시 간행되었다. 현재 남원향교에 전해지고 있는 『용성지』는 초간본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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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이 편찬한 전라도 남원읍지(邑誌)의 증보판. 1699년에 이도와 최여천이 편찬한 『용성지』에 보유(補遺)편을 추가하여 1725년 이후에 다시 편찬한 것이다. 방두천(房斗天)이 발문을 지었으나, 보유편을 누가 짓고, 언제 누가 편찬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용성지』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이구징(李耈徵)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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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까지의 한국의 유명 문인들의 시를 모아 1964년 남원향교에서 편찬한 시집. 『한국풍아집(韓國風雅集)』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詩)」에서부터 순종조까지 1031명의 한시를 편찬한 시집이다. 비교적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지역 문인들의 시가 많은 편이다. 월성(月城) 김종가(金種嘉)는 서문에서, “(개략하여)공자가 시(詩)를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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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전통시대의 교육은 주로 향교, 서원, 서당에서 실시되었다. 특히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재정에 의해 설치 운영된 지방의 중등 교육 기관이다. 향교의 목적은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의 유생들에게 유학을 강의하고 아울러 지역 문화의 향상과 유교를 진흥시키기 위함이었다. 남원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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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관. 조선시대 남원의 교육기관으로 대표적인 것이 향교였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재정으로 설치, 운영된 지방의 중등 교육기관으로, 일명 교궁·재궁이라고도 하였다. 남원 지역에는 현재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남원향교와 운봉면에 있는 운봉향교가 있다. 남원향교는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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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구암마을은 구등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행정구역인 48방 중 서봉방(捿鳳坊) 지역(지금의 향교동 일대)을 근거지로 한다. ‘구암’은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 축천(丑川)과 어울리는 거북 등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는 일명 ‘구등바위’라고도 하였다. 1700년경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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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향교리는 4개의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을 비롯하여 우리 마을 위쪽 마을이 향교마을, 아래쪽 마을이 장승마을[장승백이], 그리고 그 아래 마을이 현재 사직단이 있는 곳인 용정마을이지요. 이것이 옛날로 말하면 소위 향교리, 지금의 향교동이에요. 다른 마을은 차치하고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이 왜 ‘구암’이냐 하면, 풍수지리학상 금구몰리 즉, 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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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시. 동남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전라북도 임실군과 장수군에 접한다. 인구는 2009년 말 현재 88,496명,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고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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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남원 유생들을 위한 국립 중등 교육 기관. 남원향교는 조선시대 숭유정책에 따라 전국 모든 행정 구역에 설립된 교육 기관 중의 하나로, 공자를 비롯한 4성(四聖 :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나라 때의 6현(六賢 :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대 18현인에게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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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향교 건물. 남원향교는1410년(태종 10)에 창건하였다가 1428년(세종 10)에 덕음암 부근으로 옮겼으나, 홍수를 만나 요천이 범람할 때면 유생들이 물을 건너올 수가 없어 통행이 불편하자 1443년(세종 25)에 지금의 자리로 향교를 옮겼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향교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599년 지방 부호 진사 유인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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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유교 단체. 1945년에 남원향교 유림들이 유교 정신을 기본으로 윤리관을 바르게 세우고, 도의(道義)를 천양하고, 사회봉사 정신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초·중·고 학생 80명을 대상으로 한문, 윤리, 서예, 향토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명륜학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원 60명 규모의 주부를 대상으로 기초 한문, 생활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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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세운 사학 위주의 학문 기관. 서원은 최초 중국 당나라 궁중에 설치된 집현전 서원(서재)을 모태로 한 사학(私學)으로 출발한 학문연구 집단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부터 국가의 학문 중추기관으로 운영되면서부터는, 관학기관(성균관, 향교)의 부진과 학문적 고착화를 극복하는 향촌 교육기관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전국에서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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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남원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군사상의 요충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한이 달궁(達宮) 지방에 별궁을 두고 정장군(鄭將軍)과 황장군(黃將軍)을 파견해 진한·변한의 침략을 막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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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향촌 사회에 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 용호서원(龍湖書院)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원동 향약계를 주축으로 하여 남원 유림 김종사 및 여러 유림 선비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1974년 서원의 시설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설립 당시 처음에는 주자영을 봉안하여 배향하였다. 용호서원은 서원 시설로 경양사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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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설립한 공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읍성내관서당은 1830년(순조 30)에 남원부청의 발기로 관내의 하급 관원들의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다. 남원성(南原城) 안 동쪽에 위치하였다 해서 일명 ‘성동재(城東齋)’라 하였다. 다른 서당과 마찬가지로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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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설립된 공립 초등 교육 기관. 읍성외관서당은 조선 후기인 1875년 남원부청의 발기로 관내의 하급 관원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다. 남원성 남쪽에 위치한 서당이라는 뜻에서 일명 ‘성남재(城南齋)’로 불리다가 ‘남성재(南城齋)’로 개칭하였다. 일반 다른 서당처럼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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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시민 운동가. 보절초등학교를 나온 후 한학에 전념하여 유가적 식견과 학식이 뛰어났다. 유교적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품성과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남달라 젊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해방이 되자 곧바로 남원청년회를 결성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했으나 좌익 세력이 남원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를 만들어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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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익성(益成), 호는 도산(道山). 참판 장숙(張叔)의 후손이며, 장절의 아들이다. 장우정은 무신란, 즉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향교의 장의(掌議)로서 유생·교복들을 이끌고 밤낮으로 문묘를 지켰다. 그리고 동지 최제현 등과 함께 백성을 회유하는 글을 지어 돌렸다. 그렇게 하여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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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동에 위치한 주요 문화재로는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비롯하여 남원향교(지방유형문화재 49호), 남원향교 대성전(지방유형문화재 8호), 경주 김씨 보판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 교룡산성(지방기념물 9호) 그리고 남원 사직단(지방기념물 79호) 등이 있다. 교룡산성 안에는 685년에 창건한 선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는 대북(민속자료 5호), 대웅전(지방유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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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동 마을에서 유명한 곳으로는 무엇보다도 남원향교를 들 수 있다. 향교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봐도 그렇다. 원래 향교가 있던 마을의 이름이 교동 등으로도 불리어지나 남원의 향교동은 직접 향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호남 지역에는 4대 향교가 있었는데 남원향교를 비롯하여 전주향교, 광주향교, 나주향교가 그것이다. 남원향교는 조선 시대 전체를 통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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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당. 충렬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전라병사 이복남을 비롯하여 접반사 정기원, 남원부사 임현, 조방장 김경노 4충신을 봉안하고 제사드릴 목적으로 1612년에 설립되었다. 곧이어 별장 신호, 통판 이덕회, 구례현감 이원춘 3충신이 추가 봉안되어 7충신의 위패를 봉안하며 제사드리는 사당으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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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 우리나라 각 지방에 관학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 이후이다. 고려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3경(京) 12목(牧)을 비롯한 군현에 박사와 교수를 파견하여 생도를 교육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향학(鄕學)의 시초이다. 남원 지역에 향교가 들어선 것은 조선 초기인 1410년(태종 10)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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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원향교(南原鄕校)가 위치한 데서 향교동(鄕校洞)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향교동 교촌은 1443년(세종 25) 남원향교가 덕음봉(관덕정 부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후에 향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향교가 있어 교촌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용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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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동에 위치한 주요 문화재로는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비롯하여 남원향교(지방유형문화재 49호), 남원향교 대성전(지방유형문화재 8호), 경주 김씨 보판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 교룡산성(지방기념물 9호) 그리고 남원 사직단(지방기념물 79호) 등이 있다. 교룡산성 안에는 685년에 창건한 선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는 대북(민속자료 5호), 대웅전(지방유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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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동은 원래 남원 서봉면(捿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서봉면 구암(九岩), 교촌(校村), 장승(長承), 정치(正峙)와 통한면(通汗面) 용정(龍井), 왕지전면(王之田面)[왕치면] 응곡(鷹谷) 일부를 병합하여 이곳에 향교(鄕校)가 있기에 향교리라 하고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리가 동으로 되었다. 용정(龍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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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49호인 남원향교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전국 향교 설치령에 따라 태종 10년(1410년)에 세워진 것으로 처음에는 남원부의 서쪽에 세워졌다. 그러나 매년 석전제를 드릴 때마다 호랑이의 훼방이 심해 세종 10년(1428년) 요천 위 현 덕음암(德蔭庵)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 뒤 남원향교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세종 25년(1443)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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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동은 남원시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88고속도로와 전주간 국도를 연결하는 남원시의 관문이며, 전라선 철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산성역, 광치 농공단지, 서남대학교가 있다. 동으로 도통동, 서로 왕정동, 남으로 동충동, 북으로 사매면이 인접하는 도·농 복합형의 다분화된 지역으로 남원시에서 대동(大洞)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 도시의 전형적인 도심 형태와 아파트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