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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596
한자 邑城外官書堂
영어음역 Eupseongoegwan Seodang
영어의미역 Eupseongoegwan Village School
이칭/별칭 남성재(南城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당
건립시기/일시 1875년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
소유자 관서당 남성장학회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문화재 지정일 2000년 6월 23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설립된 공립 초등 교육 기관.

[개설]

읍성외관서당은 조선 후기인 1875년 남원부청의 발기로 관내의 하급 관원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다. 남원성 남쪽에 위치한 서당이라는 뜻에서 일명 ‘성남재(城南齋)’로 불리다가 ‘남성재(南城齋)’로 개칭하였다. 일반 다른 서당처럼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주로 가르쳤다.

[변천]

읍성외관서당은 남원부청의 이방 이순식(李舜植)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1945년 8·15해방 이후까지 남원 지역의 한문 서당으로 운영되었다. 근처에 중등 교육 관학 시설인 남원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읍성외관서당은 주로 하급 관리나 서민들의 자제가 교육을 받았다.

읍성외관서당 성남재(城南齋)는 광복 이후에 지금의 명칭인 남성재(南城齋)로 바뀌었다. 조선시대 남원부청에 관서당은 남성재, 성동재, 운봉관서당 등 모두 세 곳이 있었으나 지금은 유일하게 남성재만이 남아 있다.

[형태]

남성재 건물은 목조 기와 형태의 학습 공간으로,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와 두리기둥을 사용하여 건축되었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이 인상적이다.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방이 자리하는 배치 형태를 띠고 있다. 방과 대청 사이에는 띠살문이 있다. 건물 전체적인 형태는 정면 4칸과 측면 2칸으로 모두 8칸 규모이다.

동쪽 방 앞에는 마루를 깔아 툇마루를 구성하였고, 뒷벽에는 벽장을 달아 사용하였다. 현재 교직사로 활용되었을 법한 서쪽 방은 3칸 집의 형태로 동향이다. 남성재의 가구는 3량 구조로, 앞뒤 평주 위에 대량을 걸고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는 구조이며, 장혀 밑에는 1875년에 건립되었다는 상량문이 남아 있다.

[현황]

읍성외관서당은 강화노씨와 영천이씨, 옥천조씨 세 가문에서 공동으로 관리하였으나 현재 거의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채로 쇠락해 있는 상태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성재를 다시 복원하여 ‘전통 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 진행 중이다. 또한 남성재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장학답을 이용하여 현재 ‘남성장학회’가 운영되고 있어 매년 청소년 장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읍성외관서당은 일반적인 한문 서당으로서 강당 형태의 공간이었다. 관서당으로서 남성재는 많은 남원의 후학을 배출하였다. 서당은 보통 1월 15일에서 12월 20일까지 운영되었다. 관서당의 성격상 훈장의 학채는 남원부청에서 부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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