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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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에 은거한 오계종의 시문집. 오계종(吳繼宗)[1407~1459]은 자가 백종(伯宗), 호는 귀은(歸隱)인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1658년에 한양 명례방(明禮坊)에서 났으나, 1455년 단종(端宗)의 손위 소식을 듣자 마침내 방장산의 북쪽 운봉산 덕지리에 조그만 정자를 짓고 귀은(歸隱)이란 편액을 걸고 지냈다. 『귀은집(歸隱集)』은 오계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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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부안. 자는 제옹(濟翁), 호는 명은(明隱). 1734년(영조 10) 남원 진전방(현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에서 김계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민은 과거에 뜻을 버리고 평생 동안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지조와 절개를 가진 그는 평생 동안 우암 송시열을 존경하며 노론적 세계관에서 살다 간 인물이다. 기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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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자연 마을. 낙현마을은 요천수와 산줄기로 막혀 있어 아늑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누적촌(累績村)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전주이씨 종친이 세조에게 쫓겨 이 곳까지 오는 동안 쌓이고 쌓인 원한을 표현한 것이다. 그 후 마을 주위를 살펴보니 동쪽은 요천강 줄기와 고개가 있어, 물과 고개로 막힌 셈이어서 개강이름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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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과 이백을 경계로 하는 요천교를 지나 좌우측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마을 뒤를, 24번 국도가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평야부의 마을이다. 2007년 2월에 요천 권역 농촌 마을 종합개발 사업이 확정되었다. 계산(鷄山)마을은 마을의 대나무 곁에 단풍나무들이 있어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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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맹례를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동계 혈족. 태씨는 중국 주나라의 태전(太顚)의 후예라는 설과 발해왕 대조영(大祚榮)의 10세손 대광현(大光顯)이 발해 멸망 후 고려에 망명하여 태조로부터 사성(賜姓)된 것이라는 설이 전래되고 있다. 본관도 『조선씨족통보』 등에서 협계, 영순, 남원, 밀양, 통천 등 23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협계(浹溪)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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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신리는 2개의 행정리, 즉 대산리(大山里)·상신리(上新里)로 나뉘어 있다. 혼불의 고장인 사매면의 면소재지로부터 남동쪽 3㎞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보절면과 광치동의 경계이다. 대신리는 원매안(元梅岸)·여의(如意)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매안은 당초 ‘구내방(丘內坊)’이었는데, 약 300년 전 공자(孔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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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년 마을 앞 섬진강의 홍수로 넓은 백사장이 새로 생겨나곤 했기 때문에 ‘날 생(生)’자에 ‘사(沙)’자를 써 생사(生沙)’라 하였다. 직동은 남원윤씨 들이 후손들을 위해 사욕을 버리고 정직하게 모범적인 처세를 하며 살자는 뜻으로 정직(正直)의 직(直)자를 넣어 지은 것이라 한다. 광동은 마을 터가 양지바른 산 밑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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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사람들의 성(姓)을 이르는 명칭.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거니와 전해지는 자료도 많은 부분 소실되어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으로 고조선부터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성씨(姓氏)가 이미 단군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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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아호는 청암(靑巖). 고려 상호군(上護軍)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다. 고조는 소을생(蘇乙生), 증조는 소패(蘇覇), 할아버지는 소윤무(蘇允武), 아버지는 소찬(蘇贊)이다. 그의 처부는 종묘령(宗廟令)을 역임한 남원(南原) 양도(梁度)이다. 아들로는 성균생원 소석지(蘇錫智), 노성현감(魯城縣監) 소연(蘇沿), 사헌부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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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에 있는 단종 폐위에 반대한 이윤철을 비롯한 10명의 현인들의 절의를 기리고자 위패를 모신 사당. 십로사는 10명의 현인을 모셨다는 의미로 쓰인 명칭이다. 십로(十老)란 이윤철, 김박, 설산옥, 오유경, 조윤옥, 안정, 한승유, 설존의, 신말주, 장조평을 가리킨다. 이들은 단종의 신하였거나 당시의 명사들로서 직책과 업무는 달랐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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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동리는 영촌리와 손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손동리와 영촌리, 오산리, 장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손동의 이름을 따서 영동리라 하였다.영촌리는 정착조인 김수은이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잿말, 재마을로 부르다 영촌(嶺村)으로 바뀌었다. 손동리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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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월락동은 월미마을과 낙현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미마을의 명칭은 처음엔 미륵생기라 불렀는데, 전설에 따르면 마을 앞산 모퉁이에 있던 사찰에 미륵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샘을 팠더니 땅 속에서 미륵불이 나와 미륵이 저절로 생겼다는 데서 이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한편 낙현마을의 유래는 1455년(세조 1)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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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단종의 충신인 정흥덕의 7세손이며, 감찰 정훈(鄭勳)의 아들이다. 정원형은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예의범절을 잘 지켰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하자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모의청에 가서 종사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국왕이 남한산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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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죽재(竹齋). 병조판서와 세자빈객을 역임하고, 단종의 충신인 정흥덕의 7세손이며, 감찰 정훈(鄭勳)의 아들이다. 정원훤은 효우가 돈독하고 옛 법도를 잘 지켰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아버지의 명으로 형 정원형(鄭元炯)과 함께 군량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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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동생 정효종(鄭孝終)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경연사경(經筵司經)으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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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내심(乃心), 호는 동량(㠉梁). 한성부 우윤 최연(崔葕)이 손자이며, 최휘지(崔徽之)의 아들이다. 최계옹은 1681년(숙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設書)를 지냈다. 1695년 지평으로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그 후 정언을 지냈다. 1704년 장령으로서 앞서 단종이 폐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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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왕족.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示+甫)[1396~1486]는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모두에게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 또한 효령대군은 불교를 숭상하고 선가(禪家)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한 까닭에 유학자들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본관은 전주. 초명은 이호(李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