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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339
한자 生岩里
영어음역 Saenga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길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3.06㎢
총인구(남, 여) 123명(남자 55명, 여자 68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58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매년 마을 앞 섬진강의 홍수로 넓은 백사장이 새로 생겨나곤 했기 때문에 ‘날 생(生)’자에 ‘사(沙)’자를 써 생사(生沙)’라 하였다. 직동은 남원윤씨 들이 후손들을 위해 사욕을 버리고 정직하게 모범적인 처세를 하며 살자는 뜻으로 정직(正直)의 직(直)자를 넣어 지은 것이라 한다.

광동은 마을 터가 양지바른 산 밑이긴 하나 터가 좁은지라 이곳에 살면서 개척정신으로 시야가 넓어야 하겠다는 뜻으로 ‘광(廣)’자를 넣어 광동(廣洞)이라 하였다. 제암(濟岩)은 옛날 마을의 서북쪽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마을의 재앙을 제거해 준다는 설에 따라 동네의 한 여인이 바위를 치마로 감싸다가 마을 앞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위가 이 마을로 건너왔다는 뜻으로 ‘제(濟)’자를 넣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생사에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흥덕장씨 일부가 피난처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 후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吉地)를 찾아 나섰던 양씨(梁氏)들이 이곳에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

광암에는 1824년 남원윤씨가 선산을 관리하고자 지금의 직동에 정착한 이래 그 후손들이 계속 거주해왔다고 한다. 1829년(순조 24)에 흥덕장씨가 광동에 은거하였고, 1826년에는 경주김씨가 제암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견소곡면 지역이었우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동리와 제암리의 일부와 초량면의 생사리를 병합하여 생암리라 하여 대강면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로는 1960년대에 직동·광동·제암을 합해서 광암리, 생사마을은 생사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순창군 풍산면이 섬진강을 사이로 연접해 있다. 강 건너에는 곡성군으로 가장 높은 산을 옥출산(玉出山)이라 하는데, 강물과 잘 어울려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현황]

대강면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7년 9월 기준 면적은 3.06㎢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58세대에 123명(남자 55명, 여자 6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총 면적은 306㏊로, 경지 면적은 93㏊이며, 밭이 28㏊, 논이 65㏊이고, 임야가 132㏊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쌀 농업이 주를 이루며, 예전에는 미나리와 완초(돗자리 원료) 재배를 많이 하였다. 야산 개발로 조성된 곳에서 재배되는 수박·고추·밤고구마·잎담배 등과 묘목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특히 인삼과 오가피는 특산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유리 온실에서 재배된 파프리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1862년(철종 13)에 세워진 십노사가 있는데 남원, 순창, 곡성 지역의 옛 노인 10명을 모신 곳이다. 이들은 1455년 단종을 섬겼던 신하들이 낙향하여 은거하였는데,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이 사당을 세워 매년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마을회관과 모정이 있다. 1995년에 경지 정리와 1997년에 밭기반 정비 사업을 하였다. 교육 기관으로는 1958년부터 1998년 2월까지 광덕초등학교가 이 지역의 초등교육에 기여하다가 폐교되었다. 주요 기관으로는 생암보건지소가 문을 열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해오고 있으며, 2004년에는 광덕요양원이 문을 열었다.

또한 오지 개발 사업으로 마을 진입도로(시도 2호선)가 포장되었다. 2003년에는 광암~생사 구간의 도로를 확, 포장하였다. 1988년부터 시내버스가 1일 3회 왕복 운행하는 종점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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