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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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 출신 오상귀의 시문집. 오상귀(吳相龜)[1791~1857]는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 아곡리에서 살았다. 자는 태숙(台淑), 호는 계거(溪居)이고,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학행으로 알려졌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서문에 이윤덕이 행장을 짓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이 묘갈명을 지어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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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에 은거한 오계종의 시문집. 오계종(吳繼宗)[1407~1459]은 자가 백종(伯宗), 호는 귀은(歸隱)인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1658년에 한양 명례방(明禮坊)에서 났으나, 1455년 단종(端宗)의 손위 소식을 듣자 마침내 방장산의 북쪽 운봉산 덕지리에 조그만 정자를 짓고 귀은(歸隱)이란 편액을 걸고 지냈다. 『귀은집(歸隱集)』은 오계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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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황위(黃暐)[1605~1664]의 유고 시문집. 황위는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명성이 자자한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후손이다. 사마(司馬) 문과(文科)를 거쳐 기성서윤(箕城庶尹)에 이르렀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원에서 창의한 지사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남원 풍계사(楓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역대 충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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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 오도형의 유고 시문집. 남원에서 주로 활동한 오도형(吳道炯)의 시문집으로, 유진찬(兪鎭贊)의 서(序)와 후손 오석용(吳錫容)·오민수(吳民銖)의 발(跋)을 붙여 1941년 간행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941년 목활자로 간행된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2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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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간행된 화순최씨(和順崔氏) 7인의 시문집. 『오성세고(烏城世稿)』는 남원군 대산면(大山面) 죽곡(竹谷)에 살았던 최상문(崔象汶), 최항(崔迒), 최봉의(崔鳳儀), 최현(崔玹), 최강(崔綱), 최식(崔湜), 최경(崔逕) 등 화순최씨 일가 7인의 시문을 합철한 책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서(序)와 후손 최익호(崔翼浩), 최중섭(崔重燮)의 발(跋)을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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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여(用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김약려는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따라서 사촌 동생 김용려(金用礪)와 함께 행동하지 못하였다. 김약려는 눈물을 흘리며 “은(殷)이 망하니 백이(伯夷)는 수양산에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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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사설 초등 교육기관. 서당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 교육기관으로 마을마다 설치되어 어린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서당의 기원은 멀리는 고구려의 경당(扃堂)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그 존재가 확인되지만 크게 번창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였다. 서당은 처음에는 양반 가문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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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있던 서당 터. 1920년에 임모상과 마을 유지들이 뜻을 모아 대강면 사석리 마을 뒤편에 서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훈장으로는 당시 호남의 거유(巨儒)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초빙하였는데, 그는 이 마을에 기거하면서 20여 년간 후학을 양성하였다. 서당 개설이후 1970년까지 많은 제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으며, 고명한 후학들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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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양동서당은 1903년(고종 40) 남원진씨(南原晉氏) 가문 내의 시설로서, 당시 진기완에 의해 설립되었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친 지역 사회 초등 교육의 요람이었다. 양동서당은 오랜 전통의 촌합형 서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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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석여(錫汝), 호는 운계(雲溪), 무민공(武敏公) 황진(黃進)의 증손이며, 당촌(塘村) 황위(黃暐)의 아들이다. 황신구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탁월했고, 소년이 되자 이미 옛 선인들의 학문을 이해하였다. 벼슬에 뜻이 없어 은거하여 후진을 교육하였는데 많은 선비가 모였고, 고관대작들이 그의 높은 절의를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