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79
한자 閥榮里
영어공식명칭 Beoryeong-ri
이칭/별칭 버렁,지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95년 5월 26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해군 읍내면 소속으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영해군 읍내면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동으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5.34㎢
가구수 490세대
인구[남/여] 907명[남 432명|여 475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벌영리영덕군 영해면 중앙의 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벌영1리·벌영2리로 분리되어 있다.

[명칭 유래]

벌영리(閥榮里) 동명의 유래는 마을이 넓은 버렁[둘레, 범위]에 있으므로 버렁·벌영 또는 지산(芝山)이라 하였다. 벌영1리는 1540년(중종 35)경 평산신씨(平山申氏)가 개척하여 지산이라 칭하다가 뒷날 사인공(舍人公) 신자성(申自誠)의 후손들이 벌영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지며, 관리(官吏)가 세거(世居)하였다. 벌영2리는 순흥안씨(順興安氏)가 개척하였으며, 풍수지리상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갈마음수(渴馬飮水)라 하여 갈마물(葛馬勿) 또는 갈매물(葛梅勿)·갈마물(葛麻勿)·갈물동(葛勿洞) 등 다양하게 불렸다.

[형성 및 변천]

벌영리는 조선시대에는 영해부 읍내면(邑內面)에 속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영해군 읍내면 지역이 되었다. 그 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갈물동(葛勿洞)·송계동 일부와 묘곡면의 임두정을 병합하여 벌영동이라 하고 영덕군 영해면에 편입하였다. 1949년 8월에 지방자치제가 공포되어 벌영1구·벌영2구라 하였으며, 1961년에 벌영1동·벌영2동이 되었다.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벌영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벌영리 남쪽은 높이 약 100m 이하의 산지가 분포하고, 북쪽은 송천(松川)이 만든 충적평야인 용당들(龍塘坪)이 형성되어 있어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남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북류하면서 바람골·백구장골·서대실골·우수골·땅골[唐谷]·바른골[正谷] 등의 크고 작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현황]

벌영리의 2020년 말 면적은 5.34㎢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490가구[벌영1리 411가구, 벌영2리 79가구]에 907명[남 432명, 여 47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성내리, 서쪽으로는 원구리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축산면 도곡리부곡리, 북쪽으로는 병곡면 신평리사천리가 면계(面界)를 이루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대한통의부 대원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인 이겸호 의사의 기념비가 있다. 주요 교통로는 벌영리의 동쪽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부산에서부터 고성까지 이어지는 국도 제7호선이 지나며, 북동쪽에서 국도 제7호선 아래로 지방도 제918호선이 지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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