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73
한자 寧海面
영어공식명칭 Yeonghae-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영해면 동을 리로 개칭
성격 법정면
면적 63.98㎢
가구수 3,462가구
인구[남/여] 6,321명[남 2,927명|여 3,394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속하는 법정면.

[개설]

영해면은 영덕군의 중앙부에 자리하며, 성내리에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법정리는 성내리, 괴시리, 대진리, 사진리, 연평리, 벌영리, 원구리, 묘곡리, 대리로 총 9개의 법정리와 24개의 행정리 그리고 자연마을 32개와 115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영해면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영해부(寧海府)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라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영해면은 고대 우시군국(于尸郡國)의 근거지가 있던 곳으로 역사가 오래된 고장이다. 『삼국사기』에는 우시군국이 ‘유린(有隣)’으로 바뀌는 757년(신라 경덕왕 16)부터 관련 기록이 확인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940년(태조 23) 유린군을 ‘예주(禮州)’로 고쳤으며, 1018년(현종 9)에 방어사를 두었고, 1259년(고종 46)에는 위사공신 박송비(朴松庇)의 고향으로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영해부사영(寧海府使營)’을 두었다. 또한 성종 때부터 영해를 ‘단양(丹陽)’이라 불렀으며, 오늘날도 단양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397년(태조 6)에 첨절제사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에 다시 도호부사를 두었다. 이후 1895년(고종 32)에 이르러 칙령 제98호에 의거 ‘영해부’는 ‘영해군’으로 되었다. 한편 영해부 소속이던 영양은 1683년(숙종 9) 영양현으로 분리되어 갔으나 석보면은 계속 영해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1906년 영양군으로 이속되어 갔다.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호에 의하여 부군면이 통폐합되면서 영해부 시절의 읍내면(邑內面)과 영해군 때의 묘곡면, 그리고 북초면(北初面)의 일부가 합쳐서 새로이 영해면이 신설되었다. 괴시동[괴시·교동·운당·북천·어대], 성내동[지동·로상·서문·시문·송계·성내·사미·로하·제언·허문], 원구동[원구·오금], 벌영동[벌영·갈마물], 묘곡동[묘곡·백일], 대동[대동], 연평동[연평·역리·신기], 사진동[사진·마을[흘]진·건달], 대진동[대진·건리진·공수진]으로 9개 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에 의해 ‘동’을 ‘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영해면은 남북 방향에 비해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이다. 서쪽 지역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낙동정맥의 영향으로 명동산[813.1m], 형제봉[702.7m], 봉화산[452m], 포대산[444.9m] 등 해발고도가 높은 산지가 분포한다. 동쪽으로 갈수록 용당산[182.1m], 망월봉[225.5m], 대소산[282m], 상대산[183.7m] 등 해발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을 가진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합쳐진 남천은 영해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동쪽으로 흘러 깊은 골짜기를 만들고 묘곡저수지에 모였다가 송천(松川)에 합류하면서 원구리벌영리 일대에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였다. 송천은 동해로 유입하는 중 성내리연평리 등의 지역에 넓은 범람원을 만들었다. 송천이 동해로 유입하는 하구에는 사주가 발달하여 사빈이 퇴적되어 있지만, 대체로 해안선은 산지가 인접하고 있어 경사가 급한 암빈해안(巖濱海岸)이다.

[현황]

2020년 말 기준으로 면적은 63.98㎢이며, 2021년 5월 기준으로 총 3,462가구에 6,321명[외국인 제외]으로 남자 2,927명, 여자 3,394명이다. 지계는 동쪽으로 동해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에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축산면지품면이, 북쪽으로 병곡면창수면이 면계를 이루고 있다. 주요 교통로는 면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부산에서부터 고성까지 이어지는 국도 제7호선이 지나가고, 영해와 영양을 이어주는 지방도 제918호선이 포장되어 있으며, 영해·축산·강구를 이어주는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대체로 교통이 편리하다.

송천의 하류에 자리한 대진해수욕장은 전국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바닷물로 이름이 높으며, 대진해수욕장에서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명사이십리의 백사장은 전국에 유명하여 여름 피서철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영해면 내에는 영해시장, 예주문화예술회관, 목은이색기념관, 3.1의거탑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괴시리의 전통마을, 축산면 도곡리의 신돌석 의병장 출신지를 한데 묶는 유교문화권 성역화 지역이 개발되어 있다. 이에 영해면은 전통문화와 충절을 배우는 산교육의 장(場)으로, 현대문화와 전통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문화의 고장으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상업작물 재배로 전환하면서 벼농사 경지면적이 줄어들었고 보리, 옥수수, 메밀, 콩, 팥, 고구마, 감자, 배추, 시금치, 참깨, 담배 등의 밭농사 작물과 사과, 배, 복숭아, 감 등의 과실류가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농촌에는 사과, 배, 복숭아, 단감 등과 가을 한철 송이버섯이 생산되고, 어촌에는 멍게, 미역, 해산물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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