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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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有慶旌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건립 시기/일시 | 1751년 - 명정을 받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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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75년 -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3년 -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8년 - 김유경의 7세손 김동구가 편액을 고침 |
현 소재지 | 김유경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 |
성격 | 정려 |
양식 | 팔작지붕|이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유경(金有慶)의 정려.
[개설]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0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나 예법대로 복을 입지 못한 것을 늘 애통히 여겼다. 그러던 중 71세가 되던 해, 즉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되는 해에 이르자 드디어 복을 입고 시묘(侍墓)를 살았다. 한편 상이 끝난 후 김유경은 관직을 제수받기도 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오히려 복을 마친 후에도 묘소 아래에 살면서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살폈다. 1751년(영조 27)에 명정을 받아 정려를 세웠으며, 1754년(영조 30)에 효정(孝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묘소와 신도비는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위치한다.
[위치]
김유경 정려(金有慶旌閭)는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마을 회관의 건너편 약 50m 전방에 남동향으로 위치한다. 김홍익 정려(金弘翼旌閭)와 같은 권역 안에 자리한다.
[변천]
김유경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51년에 명정을 받아 세웠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 의하면 1751년 12월 11일 충청도 유생 유원명(柳垣明) 등 수백 명이 김유경의 정려에 관해 논의를 펼쳤다고 한다. 원래 취령봉 남쪽 기슭 정순왕후 생가(定純王后生家) 옆에 있던 것을 1975년 이건하였다. 이건 당시 ‘이건찬조방명록(移建贊助芳名錄)’ 현판을 만들어 걸어 놓았다. 정면에 걸려 있는 ‘정효각(旌孝閣)’이라는 편액은 처음 김유경 정려 건립 시 만들어졌던 것을 7세손 김동구(金東九)가 1978년에 고쳐 썼다.
[형태]
장방형의 시멘트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8각의 주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올렸다. 전면과 측면은 홍살로 처리하였고, 후면은 회사벽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에 이익공 양식의 건물이다. 김유경 정려 정면에는 ‘정효각’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명정 현판이 중앙에 위치한다. 현판에는 ‘효자숭록대부행의정부좌참찬겸지경연사오위도총부도총관세자좌빈객치사봉조하증시효정공김유경지문(孝子崇祿大夫行議政府左參贊兼知經筵五衛都摠府都摠管世子左賓客致仕奉朝賀贈諡孝貞公金有慶之門)’이라고 새겨져 있고, 추기(追記)로 1973년에 중건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현황]
김유경 정려를 보호하기 위하여 주변에는 시멘트 담이 둘러져 있고, 출입문으로 철대문이 만들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는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서산 지역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세거지이다. 김유경 정려 바로 옆에는 1741년(영조 17)에 세운 김홍익 충신문도 함께 있는데, 병자호란에 활약한 행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김유경 정려와 김홍익 정려는 10년 정도를 간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는데, 이로써 당시 서산 일대 경주 김씨의 사회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