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12 |
---|---|
한자 | 普願寺地出土高麗時代鐵造如來坐像 |
이칭/별칭 | 보원사지 장륙철불좌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93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여성민 |
이전 시기/일시 | 1918년 3월 - 보원사지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김[조선총독부 박물관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 변경] |
---|---|
현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불교 전시실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 6가 168-6] |
출토|발견지 | 서산 보원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93 |
성격 | 불상|철조 여래 좌상 |
재질 | 철제 |
크기(높이) | 257㎝ |
소유자 | 국립중앙박물관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에서 출토된 고려 시대 철조 여래 좌상.
[개설]
보원사지 출토 고려시대 철조여래좌상(普願寺地出土高麗時代鐵造如來坐像)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서산 보원사지에서 1918년 3월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겼고, 반출 직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 회랑에 봉안되었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불교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인 11세기에 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비(普願寺法印國師寶乘塔碑)에 950년(광종 1) 법인국사(法印國師)가 발원해 석가 삼존 금상을 봉안한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조성하였던 본존불이라는 견해에 따라 조성 연대를 광종 원년인 95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만 그때에는 금상(金像)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철불에 금박을 입혔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높이 257㎝, 무릎 너비 217㎝의 거대한 철조 불좌상으로, 경기도 광주의 대철불 좌상보다 약간 작은 상이지만 당당하고 우람한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몸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훨씬 커진 비례를 보여 주고 있어서 얼굴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낮고 넓적한 육계(肉髻)와 나발(螺髮)의 머리카락을 가진 머리와 함께 직사각형의 대형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얼굴은 가늘고 긴 눈에 좁은 콧날, 입꼬리는 아래를 향해 약간 처지게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옷 주름이 굵게 묘사되어 있다. 두 손은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쪽 손목의 위치로 보아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보원사지 출토 고려시대 철조여래좌상은 큰 규모에 비해, 전체적으로 조형미는 떨어진다. 몸체에 비해 불두가 큰데다가 목이 굵고 어깨는 좁아서 안정감이 떨어진다. 장신의 상체와 아랫배가 불룩한 점은 나말 여초(羅末麗初)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으며, 특히 우견편단한 얇은 대의가 넓은 폭으로 주름 잡혔고, 선들도 도식적으로 묘사된 것 등은 고려 시대 철불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강원도 원주에서 출토된 철불 3구와 비교할 때 얼굴 모습, 왼쪽 어깨에서 한 번 접혀져 있는 우견편단, 왼팔이 접히는 곳에 표현된 리본 형태의 옷 주름, 항마촉지인의 수인 등에서 거의 동일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서로 관련된 조각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보원사지 출토 고려시대 철조여래좌상은 추상화되어 가는 네모꼴의 얼굴과 납작한 머리 형태 및 직선을 이루고 있는 눈과 입 등 그 형태에서 고려 시대에 들어 지방화하고 개성화해 가는 철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비에 기록된 949년(정종 4) 작 석가 삼존상의 본존상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정확한 연대를 가지고서 고려 초기 철불의 특징 및 형식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