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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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敎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철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개설]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불교문화는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 불교의 중흥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고구려는 북조 전진의 아도로부터 372년(소수림왕 원년)에 받아들였고, 백제는 남조 동진의 마라난타로부터 384년(침류왕 원년)에 받아들였고, 신라는 527년(법흥왕 14)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받아들였다.
[백제 시대]
백제에 처음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는 호승으로 인도 혹은 서역 출신으로 추정된다. 6세기 전반 겸익(謙益)은 인도에 가서 범본 율종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렇듯 백제는 중국 불교는 물론 불교의 본 고장인 인도 불교도 일찍이 접했으며, 552년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 불교계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백제 부흥 운동기에는 북부 수덕사를 중심으로 서산 인근의 불교계가 부흥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서산 지역은 백제와 중국의 문화 교류의 중심 지역이기도 하였다. 당시 백제는 도읍인 웅진과 부여에서 예산~서산~태안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길을 중시하였다. 이 길을 따라 백제 불교도 융성하였다. 예산의 수덕사는 백제의 혜현(慧顯)이 법화신앙을 유포한 곳이고, 서산에는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서산 마애삼존불이 있으며, 태안에는 태안 마애삼존불이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봉보주보살은 중국 남조와 일본에만 보이는 형식으로 서산 지역은 한국·중국·일본 불교 교류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서산은 태안과 더불어 백제 불교의 독창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앙에 보살을 배치하고 부처를 양협시로 배치하였고, 서산 마애삼존불은 왼쪽의 협시보살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백제만의 특징이다.
서산 마애삼존불 본존은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데 당시 백제인의 온화한 품성과 자신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왼쪽 협시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백제의 미륵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삼존불의 구도는 과거-현재-미래로 파악되기도 하는데 오른쪽 협시는 과거의 제화갈라보살, 본존은 현재의 석가불, 왼쪽 협시는 미래의 미륵보살로 보기도 한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수기사상(受記思想)에 의해 부처님의 가피(加被)가 이 세상에 충만하기를 바라는 백제인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일 신라~조선 시대]
서산은 백제뿐만 아니라 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도 불교가 성행하였다. 서산 마애삼존불 인근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에서는 7세기 백제의 금동불입상이 발견되었으며 통일 신라기 의상(義湘)이 세웠다고 전하는 화엄 10찰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고려 광종 때는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이곳에 주석하고 입적하기도 하였다. 현재 서산 보원사지에는 법인국사의 탑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 시대에는 불교가 침체되기도 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한여현(韓汝賢)의 『호산록(湖山錄)』에 보원사 등 여러 사찰이 보이고 있다.
[근현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 불교의 전통이 끊어지는 듯 했는데 경허(鏡虛)와 경허의 제자인 만공(滿空)에 의해 근현대 불교의 중흥기를 맡게 된다. 특히 이들은 개심사, 간월암, 천장사 등 서산 지역의 여러 절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 특히 천장사는 경허와 만공이 머무르며 사제 관계를 맺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만공은 일제의 불교 탄압에 앞장 선 총독의 면전에서 그 부당함을 논박했으며 탄압에 대응하기 위한 중심 기구인 선학원 창설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서산의 불교는 단순히 불교 포교에 머물지 않고 서산불교환경연대의 창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생태와 환경을 보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개심사, 문수사, 부석사, 간월암, 천장사 등은 역사와 풍광이 잘 어우러진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