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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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餘村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정재윤 |
개정 시기/일시 | 757년 12월 - 여촌현에서 여읍현으로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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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407년 - 여미현과 정해현을 통합하여 해미현으로 개정 |
관할 지역 | 여촌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 |
[정의]
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당진군 일대를 관할하는 혜군(槥郡) 예하에 여촌현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촌현 성립 이전 시기에도 서산 지역에는 강력한 토착 세력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해미면 기지리 유적에 보이는 분구묘를 조성한 세력이 그것이다. 기지리 분구묘에서는 환두대도를 비롯하여 동경, 흑색마연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는 기지리 세력이 4세기 초·중엽에 백제 중앙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였음을 보여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는 사비 천도 직후인 6세기 중반 무렵 기존의 담로제를 개편하여 방·군·성[현] 체제를 실시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운산면(雲山面) 일대에는 유력한 세력이 존재하였으며, 이를 여촌현으로 편제하며 중앙의 통치를 구현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혜성군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혜성군(槥城郡)은 본시 백제의 혜군으로, 경덕왕이 [혜성(槥城)으로] 이름을 고쳐 지금도 그대로 하니, 영현(領縣)이 셋이다. 당진현(唐津縣)은 본시 백제의 벌수지현(伐首只縣)으로, 경덕왕이 [당진(唐津)으로] 이름을 고쳐 지금도 그대로 한다. 여읍현(餘邑縣)은 본시 백제의 여촌현(餘村縣)으로, 경덕왕이 [여읍(餘邑)으로]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여미현(餘美縣)이다. 신평현(新平縣)은 본시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으로, 경덕왕이 [신평(新平)으로] 이름을 고쳐 지금도 그대로 한다.”
[내용]
여촌현의 치소(治所)나 통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여촌현을 관할하는 혜군이 당진군 면천면 일대에 있었다면, 여촌현은 혜군 남쪽의 서산시 운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삼국 시대 백제의 여촌현에서 757년(경덕왕 16)에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웅주(熊州) 혜성군의 속현으로 여읍현을 두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광도(楊廣道) 홍주(洪州)의 영현인, 여미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시대인 1407년(태종 7)에 정해현과 통합하여 서산군 해미현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운산면이 설치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여촌현은 지금의 서산시 일대에 존재한 기군과는 별도로 운산면 일대에 또 다른 토착 세력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혜군의 관할임을 볼 때 당진 일대를 매개로 한 해상 활동과 관련된 세력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