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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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軒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관수 |
[정의]
조선 중기 문신인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문집.
[간행경위]
이경석의 손자인 이우성(李羽成)이 이경석의 시문을 모아서 좌의정 최석정(崔錫鼎)에게 편차와 산정을 부탁했는데, 이우성이 죽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우성의 아들 이진양(李眞養)과 이진망(李眞望)이 1700년(숙종 26)에 간행하였다. 서문은 최석정이 쓰고, 발문은 신완(申琓)이 썼다.
[구성/내용]
문집은 원집 53권, 부록 3권, 합 18책이다. 권1~14는 시, 권15~50는 문, 권51~53는 별고(別稿)이며, 권말에 신완의 발문, 부록으로 연보 3권이 실려 있다.
저자의 작품 가운데 성남과 관련된 것을 살펴보면, 어느 해 그의 형인 이경직(李景稷)[1577~1640]이 병든 몸으로 가마를 타고 가다가 머문 판교 근처에 있는 어느 집에서 형을 그리며 쓴 시 「판교인가(板橋人家)」가 있다. 여기서 그는 “舁疾懷當日 新阡草色深 獨來成一宿 秋月亂蛩音(병들어 가마 타고 가시던 그날에도 길가에는 풀빛이 짙었었지. 나 이제 홀로 여기서 잠을 자려니 가을 달빛 아래 귀뚜라미 소리만 슬프구나)”라고 하여 판교의 한 촌가에서 묵은 집에서 자신이 혼자 다시 묵게 된 일을 통해 지금은 죽고 없는 형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으로 남한산성 아래에 있는 6대조 할아버지인 종실(宗室) 덕천군(德泉君)의 무덤에 성묘 못한 채 멀리서만 바라보고 쓴 작품 「육대조묘산(六代祖墓山)」에서 “天人讓王子 先祖德泉君 木拱山城下 雲連漢水濆 往年躬自掃 今日望徒勤 積慶叨餘澤 慙違數薦芬(천인(天人)이 왕자를 주시니 그분이 바로 할아버지 덕천군이시다. 나무들은 산성 아래로 절을 하듯 서 있고 구름은 한강의 물가와 이어졌구나. 지난해에는 몸소 가서 묘를 손질했건만 오늘은 삼가 멀리서 바라볼 뿐이로구나. 쌓으신 복으로 외람되이 은덕 받고 사는데 때때로 제사 올리는 일 어길까 부끄럽네)”라고 하여 직접 가서 성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또한 같은 때에 쓴 듯한 작품 「광릉유감(廣陵有感)」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치욕과 삼전도비를 지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고자 하는 뜻을 “山城直北廣陵津 丁丑年中屬上春 忍復追言當日事 秖今空泣舊時臣 遙瞻金粟悲秋柏 誰挽銀河洗戰塵 終日雨霑成獨坐 百憂纏繞膽輪囷(산성의 북쪽 광릉 나루터에서 쳐들어 온 일 바로 정축년에 초봄이었네. 어찌 차마 그때의 일을 되새기리오? 다만 지금 헛되이 눈물 뿌리는 옛 신하인걸! 멀리 보이는 산은 금속산(金粟山)[당나라 현종의 무덤이 있는 곳]인 듯 구슬픈 가을 속에 잣나무만 보일 뿐이니 그 누가 은하수를 끌어다가 전쟁의 티끌 씻어줄거나. 온종일 빗속에 홀로 앉아서 온갖 근심에 가슴 속이 뒤틀어지네)” 라고 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