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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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樓亭 |
영어음역 | nujeong |
영어의미역 | tower pavili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조현범 |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 소재한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의 총칭.
[개설]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곳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경포대(鏡浦臺)가 대표적인 예이다. 누각에 비하여 정자는 작은 건물로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다. 정자는 일반적으로 유희를 즐길 수 있고 휴식을 할 수 있는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운다.
누정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속의 살림집들과는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 공간을 목적으로 특별히 지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이 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건립한 것이 특색이다. 강릉 지방에는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 많고 일찍부터 유학을 숭상하여 빼어난 정취를 갖춘 장소에 누정 건축이 많이 건립되었다.
[현황]
강릉 지역의 전통 누정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포대(鏡浦臺), 보진당(葆眞堂), 금란정(金蘭亭), 계련당(桂蓮堂), 방해정(放海亭), 호해정(湖海亭), 오성정(五星亭)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누정 가운데 경포대, 금란정, 방해정, 호해정 네 곳은 모두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위치해 있으며 경포호수와 접하고 있다. 산을 등지고 경포호수를 직접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 경관이 대단히 뛰어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경포대는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65[저동 94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경포호수로 향하는 도로 좌측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다. 경포대는 1326년(충숙왕 13)에 강릉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해 지금의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터에 처음으로 지어졌다. 1508년(중종 3)에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위치로 옮긴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1873년(고종 10)에는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다시 세운 후에 1962년까지 세 번에 걸쳐 보수를 하였다. 경포호수와 주위의 넓은 들을 감상할 수 있는 높은 장소에 지어진 경포대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보진당은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66번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 시대에 호조 참의(戶曹參義)를 지낸 권사균(權士均)이 세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된 별당 건축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인 1868년에 재건한 것이다. 기둥은 둥근기둥으로 기둥마다 주련이 있으며, 내부는 우측에 방이 1칸 있으며 나머지 3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보진당은 벽을 세워 방을 만든 구조로 되어 있어, 정확히 말하면 누각이나 정자라기보다는 당우(堂宇)에 가깝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금란정은 조선 말기에 강릉의 선비 김형진(金衡鎭)이 경포대의 북쪽 시루봉 아래에 건물을 짓고, 주변에 매화를 심어 학과 더불어 노닐던 곳이라 하여 매학정이라고 불렸다. 그 후 금란계원으로 주인이 바뀌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금란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면에서 오른쪽으로는 누마루가 있고, 왼쪽의 전면 칸은 툇간마루, 그 뒷부분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구조로 볼 때 금란정은 누정과 당우의 기능을 절충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계련당은 강원도 강릉시 교동 238번지에 있으며, 조선 개국 초에 창건되었으나 지금의 건물은 1810년(순조 10)에 중건된 것이다. 계련당은 과거에 급제한 강릉 지역 출신들이 고장의 발전과 미풍양속의 진작을 위하여 모임을 갖고 의논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방 하나와 대청으로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다. 1894년(고종 31)에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계련당에서의 모임은 없어졌으나, 그 후손들이 선조들을 추모하는 모선계(慕先契)를 조직하여 건물을 관리하고 있다.
경포호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방해정의 소재지는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449[저동 8번지]인데, 본래는 삼국시대의 인월사가 있던 자리였다. 1859년(철종 10)에 통천 군수를 지냈던 이봉구(李鳳九)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 강릉객사를 해체할 때 자재의 일부를 옮겨 지금의 자리에 정자를 건립하고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증손인 이근우(李根宇)가 1940년에 방해정을 크게 수리하였고, 1975년과 1990년 두 번에 걸쳐 보수를 하였다.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방해정은 누마루가 있는 별당 형식의 정자이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433번지에 있는 호해정은 본래 조선 명종 때 장호(張昊)가 자신의 호를 따서 태허정(太虛亭)이라고 이름붙인 정자를 지어 사위 김몽호(金夢虎)에게 주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 후 김창흡(金昌翕)이 이곳에 약 1년 동안 머물면서 학문을 가르치자 신성하(辛聖河)가 김창흡을 위하여 초가를 짓고 거처하였다고 한다. 이 초가가 불에 타 버리자, 1754년(영조 30)에 신정복(辛正復)이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던 자기 집 별당인 안포당을 헐어 이곳에 옮겨 짓고 호해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성정은 강원도 강릉시 강변로 224-12[노암동 740-4번지]를 소재지로 하고 있는데, 남산의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정상부에서 강릉 시내를 볼 수 있는 곳에 오성정이 위치하고 있다. 1627년(인조 5)에 이곳에 지어졌던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강릉객사의 일부를 옮겨지은 것으로 1867년에 태어난 동갑 계원들이 회갑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구한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의병들이 집결하여 일본군과 싸운 곳으로,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항거하여 순국한 한국청년단원의 충혼탑이 있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현재 강릉 지역에는 1530년(중종 25)에 심언광(沈彦光)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었다는 경포호수 서쪽의 별당 건축인 해운정(海雲亭), 그리고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소재한 상임경당(上臨鏡堂)과 임경당(臨鏡堂) 등 많은 누정들이 남아 있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서도 마을의 유지들이 사재를 들여 다양한 누정들을 건축하였는데, 1980년에 세워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 있는 석남정(石南亭)이 대표적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