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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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花亭 |
영어음역 | Wolhwajeong Pavilion |
이칭/별칭 | 명주각(溟州閣)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호민 |
성격 | 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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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30년|2004년 |
관련인물 | 무월랑|연화부인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
소유자 | 강릉김씨 대종회 |
[정의]
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개설]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강릉에서 벼슬을 하던 무월랑은 연화(蓮花)라는 아가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연화 아가씨를 보고 말하기를 “만일 그대와 전생에 인연이 있다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남대천 부근의 연화의 집 북쪽에는 깊은 연못이 있었다. 연화는 늘 연못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곤 하였는데 그중 신통하게 생긴 고기 한 쌍이 물 위에서 놀고 있었다. 이 때 연화의 부모는 딸을 다른 곳에 혼인 시키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자 연화는 그 물고기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무월랑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물고기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3일 동안 연못에 나타나지 않던 물고기는 동해를 헤엄쳐 신라 무월랑이 낚시를 하던 곳에 도착하였다. 무월랑이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를 잡자 물고기는 편지를 토해냈다. 무월랑은 즉시 답장을 써서 물고기에게 주었다. 후에 무월랑은 연화 아가씨를 맞아들여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연화의 본 집은 지금의 남대천 남쪽 별연사(別淵寺)였다고 한다.
신라 때 명주에 연화사(蓮花寺)를 처음 지었다고 하였다. 김주원이 부득이 명주군왕에 오르면서 말하기를 “명주는 나의 어머니의 본향(本鄕)이라 하고 하천 북쪽마을 사람들을 함께 거느리고 돌아와 이곳 영주(領主)가 되었다.”고 하니 이로써 명주가 김주원 어머니의 본향임을 알 수 있다.
[명칭유래]
연화부인과 관련된 설화로 인하여 연화정(蓮花亭)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예전에는 명주각(溟州閣)이라고도 하였다.
[건립경위]
월화정은 강릉 남대천 가에 있던 연화봉(蓮花峯) 옛 자리에 있었으며, 신라 때 연화부인(蓮花夫人)이 물고기를 길렀는데, 그 물고기가 김무월랑(金無月郞)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다는 옛 자취가 있으므로 이에 그 후손들이 양어지(養魚池) 바위 위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정자를 지었다.
[위치]
강릉시 노암동 노암1주공아파트 재건축 인근 철길 옆 연화봉(蓮花峰) 위에 있다.
[변천]
1930년 강릉김씨 종인들이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을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신축하였는데, 영동선 철도 부설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명주성 내로 이건하였다가 1961년에 철거되었다. 2004년 옛터 인근에 관리사 1동과 함께 월화정을 복원하였다.
[형태]
2004년에 복원된 월화정은 돌기둥 위에 누각을 올렸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사방이 확 트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며 바닥은 나무마루로 만들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