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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92
한자 檜淵書院所藏典籍
영어공식명칭 Publications, Collection of Hoeyeonseo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258]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회연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258]지도보기
성격 전적|고서|고문서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회연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 일체.

[개설]

회연서원(檜淵書院)은 경상북도 성주 출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회연서원 숭모각에는 정구와 관련된 고문헌과 고문서, 그리고 책판과 현판 등 다양한 유적들이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소장된 주요 고문헌은 대체로 정구와 관련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태극문변(太極問辨)』[1667, 목판본]은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천명한 태극설(太極說)에 관한 견해를 선양 및 보존하기 위해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와 주희(朱熹)의 관련 학설을 수집·보충하여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은 처음 이언적이 손숙돈(孫叔暾)·조한보(曺漢輔) 두 사람과 태극에 대하여 논한 5편의 글에 대해 그의 손자인 이준(李浚)이 이황(李滉)에게 질정하자 이황이 크게 찬탄하였고, 그 후 이준이 다시 그것을 정구에게 비평을 청하자 정구는 주희와 육구소(陸九韶) 형제가 태극에 대하여 논변한 글과 한데 합하여 간행하게 되었다. 초간은 김지남(金止男)[1559~1631]의 주선으로 화산부(花山府)에서 간행되었고, 중간은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이루어졌으며, 초·중간본의 오류를 바로 잡아 개간본으로 간행한 것이 바로 회연서원에 소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강선생봉산욕행록(寒岡先生蓬山浴行錄)』[1912, 목활자본]은 정구의 제자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가 스승의 동래 온천행에 동행하면서 작성한 원본에다 일정 부분 보완하여 1912년에 정구의 13세손 정재기(鄭在夔)가 간행한 것이다. 정재기가 노상직(盧相稷)의 집에서 이본을 발견한 후 두 본을 비교·대조하여 기존의 원본을 대폭 보완하여 회연서원에서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 봉산욕행(蓬山浴行)은 1617년 7월 20일부터 같은 해 9월 4일까지 총 45일간 이루어졌으며, 이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한강선생봉산욕행록』은 정구의 만년의 사제 관계와 한강학파 내부의 결속과 유대 등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아울러 동래 온정(溫井)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한강선생사례문답휘류(寒岡先生四禮問答彙類)』[1929, 석판본]는 정구의 예와 관련된 문답을 수록한 것으로, 정구의 7세손 모암(慕庵) 정엽(鄭熀)이 정구상례(喪禮)제례(祭禮) 관련 문답을 수집하다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졸수(拙叟) 정완(鄭垸)이 계승하여 관례(冠禮)와 혼례(婚禮), 방상(方喪) 등을 보완 완성함으로써 이름을 ‘사례휘류(四禮彙類)’라 하여 사례 체재의 예문 답서로 구성하였고, 그 뒤 정완의 손자 신재(新齋) 정원영(鄭元永)이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에게 목차의 교감을 받아서 4권 2책의 석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한강선생사례문답휘류』는 정구『한강집(寒岡集)』에 수록된 사례(四禮) 관련 문답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에서 정구의 예설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수 있고, 관혼상제뿐 아니라 방상, 잡의(雜儀), 사전(祠典)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어 정구가 예학 연구의 범위를 확대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심경발휘(心經發揮)』1798, 목판본]는 정구가 『심경(心經)』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해석을 덧붙여 1603년에 간행한 주석서를 1798년 정구의 8세손 정위(鄭煒)가 오탈자를 수정하여 재간한 것이다. 정민정(程敏政)의 『심경부주(心經附註)』의 주(註)가 명료하지 못한 점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1629]는 정구가 오복(五服) 제도에 관한 연혁도(沿革圖)를 작성한 예서(禮書)이다. 정구가 1617년에 문인 이윤우와 봉산욕행을 갔을 때 한가한 틈을 타 의례(儀禮)의 오복도(五服圖)를 보충하고 역대 연혁의 제도를 참고하여 이윤우에게 서사(書寫)하게 하였고, 이윤우가 이를 표로 작성하여 20첩(帖) 35목(目)으로 완성한 것이다.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는 북송 및 남송의 유학자 정호(程顥), 정이(程頤), 사마광(司馬光), 장재(張載), 주희(朱熹) 등 다섯 선생의 예설을 정리한 것이다. 전집 8권 3책, 후집 12권 4책으로 합 20권 7책의 목판본이다. 1629년 담양부사 이윤우의 주선과 관찰사 권태일(權泰一)의 도움으로 간행되었으며, 권두에 1611년에 작성한 편저자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1629년 장현광(張顯光)과 이윤우가 쓴 발문이 있다. 전집은 주로 천자와 제후에 관한 예, 후집은 일반 사대부의 예를 다루고 있다.

회연서원에는 이외에도 90여 건의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으며 이는 대부분 정구를 비롯하여 정창지(鄭昌旨), 정동리(鄭東里), 정규석(鄭奎錫), 정위(鄭煒), 정사용(鄭思容) 등과 관련한 교지(敎旨), 교첩(敎牒), 시권(試券), 유지(諭旨) 등에 해당한다. 책판 또한 소장되어 있는데, 정구의 문집 『한강선생문집(寒岡先生文集)』을 비롯해 그의 저서 『심경발휘』, 『태극문변』, 『오선생예설분류』 등과 『상곡선생문집(相谷先生文集)』, 『백곡선생문집(栢谷先生文集)』, 『만오선생문집(晩悟先生文集)』, 『지애선생문집(芝厓先生文集)』 등 총 1,343장이다. 소장 현판으로는 ‘회연서원(檜淵書院)’, ‘견도루(見道樓)’, ‘숭모각(崇慕閣)’, ‘옥설헌(玉雪軒)’, ‘망운암(望雲庵)’ 등 14개가 있는데, 이 중 ‘회연서원’은 조선 중기의 명필로 이름난 한호(韓濩)의 글씨이고, ‘옥설헌’과 ‘망운암’ 은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글씨이다. 이외에도 회연서원 숭모각에는 심의(深衣)와 관복(冠服), 죽서(竹筮), 「무흘구곡도(武屹九曲圖)」 9점 등 총 12점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무흘구곡도」정구가 생전에 심성 수양을 했던 무흘구곡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의의와 평가]

정구와 관련된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있으며 영남 지역 남명학파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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