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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국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756
한자 邢國胤
영어음역 Hyeong Gukyun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화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1773년연표보기
몰년 1832년연표보기
본관 진양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양(晋陽), 형억동(邢億東)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형국윤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다르고 학문에 뛰어나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8세에 이르러 청주한씨(淸州韓氏) 청원군(淸原君)의 후손인 지평(持平) 한상기(韓尙箕)의 증손녀를 아내로 맞았다.

부부가 함께 지성으로 부모를 봉양했는데, 아버지가 40세에 이르러 눈이 멀어 출입조차 어렵게 되었다. 이에 형국윤은 앞을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이 되어 방안의 냉온을 날마다 살피고 세상의 일을 하루하루 설명하였다. 또한 식사할 때는 반찬을 일일이 설명하고 음식을 떠넣어 주었다.

이렇게 아버지를 50년간 섬기는 사이, 어머니도 연로하여 80세에 이르자 아버지처럼 앞을 못 보게 되었다. 그러자 형국윤은 두 부모님을 더욱 지성으로 돌보아드려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이 소문이 알려져 이교영(李敎英)이 암행 시찰을 나왔는데, 때마침 이웃집에 상가가 있어 돼지를 잡았다. 돼지소리가 시끄럽게 나자 아버지가 저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는데, ‘이웃집 상가에서 돼지 잡는 소리’라고 답했음에도 아버지가 같은 소리를 세 번을 다그쳐 물었다.

그럴 때마다 형국윤이 더욱 자상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이교영은 감탄하여 “삼문저성(三問猪聲)에 삼답익공(三答益恭)하니 그 성효(誠孝)를 가히 알 만하다.”라고 말하고 그의 효행을 조정에 상세히 보고하였다. 그 후 1년 간격으로 부모가 세상을 뜨자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상훈과 추모]

1854년(철종 5)에 조정에서 명을 내려 효자각(孝子閣)을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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