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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황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503
한자 下黃里
영어음역 Hahwang Maeul
영어의미역 Hahwang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하황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행정리
면적 62.9㏊
총인구(남, 여) 100명(남자 53명, 여자 47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48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명칭유래]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뒷산 백운산(白雲山)[902.7m]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라는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6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이 있어 황강사와 복치혈을 따서 황치(黃雉)라 하였다. 하황리는 황치의 제일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황리·중황리·하황리를 통틀어 황치골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600년경 참판을 지낸 김인배(金寅培)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함양에서 임진왜란을 피하여 지리산을 찾았다가 이서구(李書九) 선생이 말한 황강동천(黃岡洞天: 살기 좋은 곳)이 이곳이라 믿고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상황리(上黃里)하황리(下黃里) 일부가 병합되어 중황리라 하고 산내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남원시·남원군 통합으로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관개사업으로 소류지를 신설하여 수리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1970년에는 2㎞의 산업도로를 개설하여 우마차가 마을까지 통행하게 되었으며 1972년 마을 안길 400m가 확장되었다. 1974년 12월에는 전기 시설이 개설되었다.

1977년부터 1978년 2년에 걸쳐 마을 옆 소하천 300m를 정비하여 수해를 예방케 되었고, 1978년에는 99㎡ 규모의 공동 창고를 건립하였으며 1979년에는 간이급수 시설을 완료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하황교량 2개소를 가설하였다. 1992년 모정을 신축하였으며 마을 안길 재포장이 추진되었다.

한봉 사육은 1980년대 초반 전 주민이 시작하여 일부 대규모 사육자는 자력 기반을 다지기도 하였으나 1990년대 중반 과잉 생산으로 한봉 생산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93년부터 5개년 사업인 농어민 자율 사업을 추진하여 유기 농업, 토종 축산업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1997년에는 배수지 30톤을 신설하여 급수 시설을 확대하였다.

[자연환경]

하황리 뒤로는 삼봉산(三峰山)[1186.7m]이 솟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백운산이 우뚝 솟은 준령의 산악 지대이다.

[현황]

남원시 산내면 소재지로부터 함양군 마천면 방면으로 2㎞ 지점에 있는 삼봉산을 분기점으로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룬다. 도로로부터 1㎞쯤 떨어져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2007년 기준 면적은 62.9㏊로 산내면 전체 면적의 2.4%를 차지한다. 경지 면적 31.4㏊ 중 밭이 14㏊, 논이 17.4㏊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48세대에 100명(남자 53명, 여자 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산물로 유기 농업의 산란계, 토종 축산업, 소량의 한지와 감이 생산되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최고 5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발생하여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도로와 가옥, 농경지가 침수 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하황리에는 1902년 김봉문(金鳳文)이 창건한 백운암(白雲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태고종에 속하며 신도는 250여 명 정도이다. 하황리 앞에는 황강동천(黃岡洞天)이라 새겨진 황강대(黃岡臺)라는 기암괴석이 있다. 황강동천이란 전설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비슷한 말로, 신선들이 산다는 살기 좋은 낙원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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