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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333
한자 上洞里
영어음역 Sangd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복효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1.33㎢
총인구(남, 여) 236명(남자 121명, 여자 115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07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상동리는 행정리인 부동리를 포함하고 있다.

[명칭유래]

본래 남원군 이언면 지역으로 이언면의 위쪽이 된다 하여 웃몰, 또는 상동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부동리상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동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상동리는 조선 전기인 성종 때 옥천조씨가 제일 먼저 정착하였으며, 백여 년 후 경주김씨, 남원양씨, 서씨, 송씨, 장씨가 차례로 정착하여 지금과 같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예종 때 두사춘(杜士春)이란 중국의 지사가 지당고개에서 잠시 쉬다가 교룡산 줄기 뒤의 산세를 보고 “아! 이런.” 하고 감탄을 연발하여 마을이름을 ‘이런’이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쓰면서 이언(伊彦)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풍수리지에 의하면 남원의 다섯 명당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며, 돈학당(敦學堂)과 서당 등이 있어 많은 인재를 낳았고, 부자가 많아 지난날 남원 48방 고을 중 가장 부귀를 누린 곳이다.

부동리는 이언방(伊彦坊)에 속하여 망골이라 불렀다. 망골은 한문으로 망동(望洞)이었는데 ‘망할 망(亡)’자와 비슷하게 들리므로 폐가의 인상을 준다 하여 1930년경 망(望)과 의미가 비슷한 부할 부(富)자로 바꿔 부동(富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 통합 때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주생면 면소재지로부터 동쪽 방향으로 3.5㎞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전라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다. 거의 송림으로 덮여 있는 산이 총 면적의 1.1%을 차지하고 있으며, 임야의 인공 조림 지역 산림정책에 힘입어 사방 사업이 잘 되어 있다. 토질은 비옥하며 곡창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신정천이 흐르고 있다.

[현황]

상동리의 면적은 1.33㎢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07세대, 236명(남자 121명, 여자 11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농업이다. 전형적인 반촌답게 아직도 옛 풍물이 많고, 조선시대 때 세워진 건물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용장서원과 돈학당(敦學堂)·부자충의문(父子忠義門) 등이다.

마을 앞에는 여순반란사건 때 공비를 토벌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군사기지와 비행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종교 단체로는 대경사가 있고, 한국기독교 장로회 상동교회가 있다. 산업 시설로는 남원농업협동조합 미곡종합처리장과 선일도정공장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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